[문화비평]‘개그콘서트’ 새 코너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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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개그콘서트’ 새 코너에 대한 단상

한동안 침체기라는 평가를 받았던 KBS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가 대폭적인 코너 물갈이를 통해 활기를 되찾고자 노력 중이다. 지난 두 달간 새로 시작한 코너만 해도 열 개가 넘고 그사이에 등장했다가 빠르게 폐지된 코너도 벌써 여러 개다. 몇 주 전부터는 신규 코너들이 연속으로 프로그램 내 코너 시청률 상위권을 독식하며 전체적인 흥행지수 상승을 이끌고 있다.

화제의 새 코너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결과가 왜 나왔는지 짐작이 간다. 직장인의 애환을 노래하는 ‘렛잇비’, 파산 가족의 위기를 그리는 ‘참 좋은 시절’, 세계 최고 부호 만수르를 패러디한 ‘억수르’, 멘털 강화를 위한 안내서 ‘멘탈갑’, 닭들이 다니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정치에 대한 촌철살인적 언어유희를 보여주는 ‘닭치고’ 등이 상승세의 주역들이다. 이들은 모두 우리 사회에 대한 풍자를 통해 현실적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원래 세태 풍자는 <개그콘서트>의 전통적 강점이었다. 다시 말해 사회의 트렌드를 재빠르게 읽어내고 그 안의 불합리나 모순을 날카롭게 짚어 웃음을 자아내는 능력이야말로 이 프로그램의 장수 비결로 호평 받았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강용석 전 국회의원의 고소 언급으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마귀 유치원’이나 관료주의의 병폐를 비꼰 ‘비상대책위원회’ 등 대표적인 풍자 개그 코너들이 위용을 발휘했다. 그러던 것이 2012년 선거의 해를 기점으로 하나둘 폐지되더니 그 빈자리가 연애 위주의 소소한 일상담으로 채워진 것이 결과적으로 프로그램의 침체기를 불러온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세태 풍자의 힘으로 <개그콘서트>의 부흥을 이끄는 새 코너들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 트렌드에 민감한 <개그콘서트>가 다시금 풍자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은 결국 지금 이 시대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새 코너들에서 먼저 두드러지는 특징은 세태 풍자가 사회 전반에 걸쳐 있다는 점이다. ‘참 좋은 시절’의 가정, ‘닭치고’의 교육과 정치, ‘렛잇비’의 직장 등 사회의 전 영역에 대한 풍자는 총체적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개그콘서트' 출연자들 (출처 : 경향DB)

가령 ‘참 좋은 시절’은 아버지의 빚보증 때문에 단칸방에 모여 살게 된 한 가족의 이야기다. 그들의 한 칸 좁은 방 안에는 가계부채, 청년실업, 캥거루족 등 현재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족 문제가 압축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렛잇비’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워킹 푸어의 현실을 보여주고, ‘닭치고’교육이 실종된 학교와 허언 증인 정치인들을 동시에 풍자한다.

의미심장한 것은 이 코너들에 공통적으로 드리워진 구원 없는 사회의 징후다. ‘참 좋은 시절’의 비좁은 방이나, ‘렛잇비’의 탈출하고 싶은 직장이나, ‘닭치고’의 나갔다가도 다시 돌아오고 마는 무한 회전문의 교실 모두 바깥과 해답의 가능성이 차단된 현실을 폐쇄적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들은 기껏해야 ‘렛잇비’의 직장인들처럼 무한 돌림노래를 부르거나 ‘닭치고’처럼 망각증에 빠져야만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회의 생존법을 가장 잘 알려주는 것은 ‘멘탈갑’이라는 코너다. 지난해 “사람이 아니므니다”라는 유행어를 낳았던 ‘멘붕스쿨’이 보여준 무의미의 시대적 징후는 세월호 참사에서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결코 응답받을 수 없는 질문을 통해 명백해졌다. 그 이후 등장한 ‘멘탈갑’은 다시 한 번 확인된 답 없는 시대의 생존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멘탈이 약하면 살아남기 힘든 요즘, 멘탈이 약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온 교주 멘탈갑(박성광)은 결코 바뀌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법을 우격다짐으로 세뇌시킨다. 구원 없는 시대에선 정신승리라도 해야 버틸 수 있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들이 보여주는 세태 풍자는 시원하기보다는 씁쓸하다. 비판을 통해 세상이 나아지리라는 믿음이 존재했던 과거와 달리, 해답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김선영 | 드라마 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