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1인 가구 시대의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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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1인 가구 시대의 TV

금요일 밤이 되면 TV 속에서는 흥미로운 전쟁이 펼쳐진다. 가족의 해체와 복원이 반복되는 이야기와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이야기의 대결. 금요일 심야 예능의 두 강자인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과 MBC <나 혼자 산다>의 시청률 경쟁 얘기다. 두 프로그램은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자리를 놓고 매주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다.


가족 막장극과 독거 라이프의 팽팽한 대결은 핵가족마저 파편화되는 1인 가구 시대의 징후를 잘 말해준다. 통계청의 최근 ‘인구주택 총 조사’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1인 가구 수는 전체 가구의 약 25%에 달한다. 이 수치도 해마다 급증하고 있어 약 20년 뒤에는 1인 가구가 4인 가구를 제치고 표준 가구 유형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잇따른다.


<나 혼자 산다>의 인기는 이와 같은 사회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실제 이 방송은 본격 1인 가구 프로그램을 표방한 첫 TV 콘텐츠다. 지난해 초 방영과 동시에 화제를 모으며 1인 가구 콘텐츠가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하는 데 물꼬를 텄다. 본격 1인 가구 드라마 tvN <식샤를 합시다>가 그 뒤를 이었고, <SBS 스페셜>에선 ‘싱글턴, 혼자 살아서 좋다!?’ 편을 통해 1인 가구 시대를 조명했으며, 최근에는 채널A의 싱글녀 토크쇼 <혼자 사는 여자>가 방영을 시작했다.


본격 1인 가구 방송은 아니지만 싱글라이프를 겨냥한 맞춤형 프로그램들도 등장하고 있다. 가공식품 재가공 노하우를 알려주는 올리브 채널의 푸드 프로그램 <마트를 헤매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나 반려동물과의 생활을 그린 온스타일 <펫토리얼리스트> 등이 대표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1인 가구 급증에 따른 ‘개인의 시청습관이나 선호도 등을 고려한 개인 맞춤형 콘텐츠’를 올해 문화예술 주요 트렌드 중 하나로 예측하고 있어, 앞으로 더 많은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



MBC '나혼자 산다' (경향DB)



이러한 1인 가구 콘텐츠는 혼자 사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한 소수나 비주류의 삶이 아니라 보편적인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수많은 ‘싱글턴’을 위한 공감과 위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가령 2000년대 ‘칙릿’ 속 화려한 싱글판타지에 비해, “혼자 살기는 숨 쉬는 일 빼고 다 돈”이라는 <식샤를 합시다> 속 1인 가구 묘사는 얼마나 현실적인가. 기러기 아빠, 이혼남, 성소수자 등이 등장하는 <나 혼자 산다> 역시 싱글라이프가 젊은 비혼자만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다양한 층위의 싱글턴을 포섭한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에 내재된 문제점도 분명하다. 그 안에 그려지는 싱글라이프가 주로 소비생활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1인 가구 콘텐츠 중 그나마 제일 다채롭고 사실적인 일상을 그리는 <나 혼자 산다>만 봐도 이는 뚜렷하게 드러난다. 단적으로, ‘홈쇼핑 중독자’ 김광규, ‘먹방’의 신 데프콘, 인테리어의 대가 노홍철, 중년 패셔니스타 김용건 등 출연자들 캐릭터는 대부분 그들의 소비 패턴과 직결되어 설명된다.


방송이 강조하는 자기계발 또한 내면 성찰보다는 운동, 다이어트, 어학 공부 등의 외적 관리에 치중되어 있고, 간간이 즐기는 여행이나 문화생활도 성장의 측면이 아니라 버킷리스트 실행 차원에 그친다. <식샤를 합시다>, <마트를 헤매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 <펫토리얼리스트> 등의 경우엔 더 노골적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태생부터 해당 방송사 모기업인 CJ의 푸드 산업과 반려동물 산업을 위한 고급 PPL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요컨대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지켜보다 보면 싱글턴은 새로운 자아라기보다 과거의 X세대나 ‘골드미스’처럼 또 하나의 소비 주체에 머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콘텐츠들이 묘사하는 1인 가구 시대란 결국 ‘솔로 이코노미’(1인 가구 경제)’ 시대이며, 1인 가구를 위한 공감과 힐링의 콘텐츠라는 건 그 안의 위로 산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김선영 | 드라마 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