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서울의 달 20년… 그리고 유나의 거리
본문 바로가기

대중문화 생각꺼리

[문화비평]서울의 달 20년… 그리고 유나의 거리

1994년 MBC 드라마 <서울의 달>은 서울의 한 달동네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간군상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작품이 그리는 세상은 가난하지만 선하고 희망의 꿈으로 가득한 동화의 풍경이 아니라, 밑바닥을 벗어나려는 인물들이 이전투구를 벌이는 생생한 통속의 세계다. 그 어둠 속에는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계속해서 주변부로 밀려나는 도시 빈민들의 절망과 애환이 서려 있었다. 특히 주인공 홍식(한석규)은 온갖 배신과 얕은 술수로 신분상승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끝내 죽어서야 달동네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20년 뒤, 같은 작가에 의해 마치 <서울의 달> 속편처럼 보이는 작품이 탄생했다. JTBC 50부작 드라마 <유나의 거리>다. 이 드라마는 <서울의 달>이 걸음을 멈춘 바로 그 폐허의 자리에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주인공 유나(김옥빈)는 소매치기 집단이 훔친 지갑을 다시 가로채다가 쫓기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하고, 남자주인공 창만(이희준)은 폐업한 식당에서 노숙자처럼 살다가 유나와 마주친다. 둘이 같은 다세대주택에서 살게 된 계기도 이전 세입자의 비관 자살 때문이었다. 창만은 남들이 꺼리는 죽은 여인의 방에 싼값으로 짐을 푼다.

<서울의 달>과 <유나의 거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더 밑바닥으로 내려온 서민들의 삶이다. 얼핏 배경만 보면 <서울의 달>의 촌스러운 하숙집보다 <유나의 거리>의 다세대주택이 번듯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세월의 시차에 의한 착시효과에 불과하다. 이를 증명하듯 인간군상의 면면은 더 비관적이다. 이들은 대부분 한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근본적인 떠돌이들이며, 더 나가 감옥까지 수시로 드나든다.

유나는 전설의 소매치기 왕이었던 아버지의 기질을 물려받은 전과 3범 출신이고, 창만은 탄광 도시 태백에서 부모를 모두 잃고 ‘노가다판’을 옮겨 다니며 자란 고아 출신이다. 유나의 룸메이트 미선(서유정)은 한때 간통으로 구치소에 들어간 경험이 있는 꽃뱀이고, 문간방에서 돈도 없이 살아가는 장노인(정종준)은 퇴물 건달이다. 이 밖에도 폭력 남편을 피해 도주한 혜숙(김은수), 그녀의 동거남인 ‘노가다꾼’ 칠복(김영웅) 등이 함께 살아간다. 이들 중 누구도 안정된 거주지에서 살아온 역사가 없으며, 지금도 여전히 임시 거주자다.

MBC 주말드라마 <서울의 달>에 출연한 최민식,채시라,한석규의 모습 (출처 : 경향DB)


<서울의 달>에서도 제비족이나 꽃뱀, 사기꾼이 등장하지만 대다수는 아니었고 적어도 ‘강남’이나 ‘아파트’ 등이 성공의 지표로 등장하는 것과 달리, <유나의 거리>에서는 아예 ‘바닥식구들’이 주를 이루며 처음부터 삶의 다른 가능성과 기회가 차단된 세계를 보여준다. 유나가 소매치기 아버지에게 보고 배운 기술이 그것밖에 없어서 여전히 소매치기 시절과 완전히 결별하지 못하고, 그녀의 소매치기 동료 남수(강신효)가 대안으로 찾은 것이 기껏해야 보도방인 것처럼. 그 안에서 인물들은 성공의 욕망은커녕 하루하루 생존하는 데 여념이 없다.

두 드라마 사이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결정적 차이점도 거기에서 비롯된다. 욕망에 따른 공동체의 변화가 그것이다. 가령 <서울의 달>에는 도심 재개발 열풍 안에서 찬반 대립으로 분열되고 인간관계가 파괴된 공동체의 징후가 드러나 있다. 재개발에서도 소외된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인물들의 이전투구는 한정된 기회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그 시대의 욕망을 반영한다. 여기에는 이 작품과 같은 시기를 다룬 SBS <황금의 제국>이 5대 신도시 개발 문제를 놓고 “돈 생기면 땅 사고 대출받아 건물 사서 없는 놈들 몰아내고 지 뱃속 채운 놈들 전부 다 책임자야”라고 비판한 일성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런데 <유나의 거리>는 이 공동체와 인간관계에 다시금 주목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 작품의 핵심 서사는 개인주의적이던 다세대주택 주민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상부상조하는 공동체를 구축해가는 이야기다. 이것은 아마도 다른 세계로의 진입 기회를 아예 차단당한 욕망 불가능의 시대가 역으로 열어준 희망인지도 모른다.


김선영 | 드라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