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호 솔로, 2010, 도쿄 시어터카이. ⓒ 사사키 히카루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도 봄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소한 봄기운마저 이리도 소중하게 감동을 주고 있다고 할까. 불안과 함께 사는 가운데 가정의달은 어김없이 다가왔고 평소에 무덤덤하게 지낸 가족에게 의미를 두는 기회가 왔는데 그 마음을 실행할 수 있는 가족과 함께 있는 이들이 새삼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어버이날이라고 하지만 어머니날로 기억되던 그날이 오면 나는 세상을 떠난 지금의 나보다 더 젊은 엄마를 여전히 그리워한다.
엄마를 떠올리기 위해 뒤를 돌아보면 어느 봄날에 엄마가 춘 춤이 따라온다. 사실 엄마는 언제나 나를 앞서가고 있었기 때문에 뒤돌아본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이 기억도 해마다 조금씩 수정되는 것을 보면 내가 상상 속에서 만든 오해 투성이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엄마의 봄나들이에 나는 아이로서는 유일하게 동반한다. 함께한 인원은 예닐곱 명. 모두 엄마 또래의 여자들인데 고운 빛깔의 한복을 입고 있다. 성당 소속의 성모회 모임일 수도 있겠다. 불편한 다리로 북을 둘러멘 이가 유일한 남자다. 야외에서 돗자리를 크게 깔고 모두 앉아 식사한 후에 아마 막걸리를 한잔씩 한 것 같은데 유독 엄마만 몸을 사린다. 옆에 있는 어린 딸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고, 고지식한 충청도 출신 공직자의 아내로 처신하는 것이 몸에 밴 탓일 수도 있다.
남자가 치는 북소리가 흥을 돋우면서 그 소리가 공간을 확장시켜 넓은 초원이 드러난다. 앉은 이들이 하나씩 어깨를 들썩이다가 어느새 다 일어나 원형을 만들어 전진하면서 어깨를 들썩이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보지 말아야 하는 것을 보는 황당함과 호기심이 교차한다. 엄마도 못이기는 척 일어서서 조금씩 움직이다가 점점 춤으로 빠져드는데 그 모습이 술을 마신 누구보다 더 취한 듯이 보인다.
한복 치마가 밟히니 치마를 벗어던져 하얀 속치마 차림이 된다. 다른 부인들도 덩달아 치마를 벗어던지고 합세한다. 초록빛 언덕 위에 벗어 던진 분홍, 주황, 노랑, 연두색 등의 치마들이 파란 하늘 아래 현기증이 날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춤에 취한 엄마의 홍조 어린 얼굴은 일상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얼굴이다. 40세 정도의 엄마 얼굴에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와 고달픈 인생을 겪은 노인이 교차하고 있다.
햇빛과 바람에 숨을 맡기고 공기의 냄새를 맡으면서 몸이 가는 대로, 땅을 지그시 밟으며 북장단에 맞추어 추는 엄마의 춤! 이 춤은 살로메의 춤보다 더 강력하고, 이사도라의 춤보다 더 자연스러워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춤이다. 내가 무용가라는 직업을 수행할 때마다 이 춤은 나를 따라다닌다. 나는 그 춤보다 더 강렬하고 자연스러운 춤을 추고 만들고 싶지만 그 춤은 항상 더 앞에 서서 나를 부르고 있다.
<남정호 국립현대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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