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빈센트 반 고흐가 아니라, 내 친구 김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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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내 친구 빈센트 반 고흐가 아니라, 내 친구 김기덕

안녕하세요. 책 편집을 하는 서정순입니다. 김기덕 영화감독이 동료한테 배신을 당하고 꼭꼭 숨어버렸다는 기사를 읽고 너무도 가슴이 아파, 붓가는대로 썼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악어부터 비몽까지 전부 다 봤지요. 벌써 새벽입니다. 진심이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박홍규 영남대 교수가 내 친구 빈센트 반 고흐 란 책을 썼지요. 그런 심정으로 내친구 김기덕 감독이란 글을 썼습니다.

- 김기덕 감독님, 상처 훌훌 털고 그만 세상 밖으로 나와주세요!

정오쯤에 전화를 받았다. “김기덕 감독을 배신한 사람이 장훈 맞냐?” 형제의 전화였다. 나는 자고 있다가 전화를 받은 거라 어리둥절했다. 김기덕이라니? 그리고 배신이라니? 나는 무슨 말이냐고 웅얼거렸고, 형제는 다소 김이 샌 목소리로 “김기덕이 동료감독한테 배신을 당해 폐인 신세가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잠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설마, 라는 생각에 다시 쿨쿨 잠을 잤다. 오후 늦게야 눈 비비고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김기덕 배신’이란 검색어가 제일 눈에 띄었다. 기사를 읽었다. 〈영화는 영화다〉, 〈의형제〉를 연출한 장훈 감독과 장원석 PD가 김기덕을 배신하여 김기덕이 은둔 비슷하게 칩거생활에 들어갔다는 기사였다. 나는 숨이 턱 막히면서 못내 가슴이 답답해졌다. 언젠가 나는 김기덕한테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비교적 그의 최근작인 〈비몽〉에 관해, 이 작품은 당신의 전작보다 더 난해하지만 외려 깊이가 덜한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두고두고 마음이 아팠는데 그분은 지금 세상에 환멸과 절망을 느끼고 숨어버린 것이다.


연합뉴스 제공.



나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전부 다 봤다. 학생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니었던 시절, 그의 첫 작품인 〈악어〉를 보고 얼마나 감동과 충격을 받았던가. 얼마나 위로를 받았던가. 나는  ‘한국에 이런 감독이 있다니!’ 하고 놀랐다가  ‘세상에 이런 예술가가 있다니!’ 하고 다시 또 한 번 놀랐다. 그만큼 김기덕 감독은 여느 감독과는 다른 감수성과 상상력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그 뒤 〈야생동물보호구역〉, 〈파란대문〉, 〈섬〉,〈실제상황〉, 〈사마리아〉,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활〉, 〈빈집〉, 〈시간〉, 〈숨〉, 〈비몽〉까지 나는 그의 영화를 다 챙겨보았다. 작품 하나하나에 김기덕의 색깔과 철학이 담겨 있었다. 물론  노인의 사랑과 욕망을 다룬〈활〉이나 사랑의 오해와 진실을 다룬 〈비몽〉은 개인적으로 덜 좋아하지만 그건 이 두 작품이 다른 작품보다 김기덕만의 야성적인 감성, 순수성, 철학적 성정이 덜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고 신뢰하는 감독이 폭력적인 세상한테 상처를 입고 홀로 은둔해 있다니! 나는 눈물이 날 정도로 마음이 아프고 슬퍼서 원통할 지경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친구라 믿었던 사람들이 등을 치고 시시덕거리며 재미를 보다니! 자기네한테 여러 모로 가르침을 준 선생한테 이토록 잔인하게 몹쓸 짓을 하다니! 이게 정말 사실일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 사람들은 정말 나쁜 종자지 않나? 

 

연합뉴스 제공.



그런데 나는 김기덕 감독의 은둔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비주류의 슬픔, 약자의 고독을 본다. 맨주먹 하나만 가지고 영화판에 뛰어들어 자기만의 확고한 예술영역을 다진 김기덕 감독을 스승으로 받들기는커녕 뒤통수를 갈기며 모욕하는 사람들한테서, 나는 ‘있는 자’들의 횡포와 패거리의식, 비도덕성, 다수의 폭력을 본다. 만약 이들이 김기덕을 진정 스승으로 생각했다면, 그렇게 저열한 방식으로 스승의 시나리오와 일거리를 훔쳐가진 않았을 것이다. (요즘 훔치기가 유행인가. 이명박과 이상득 형제-이들이 의형제 아닌가-는 서민복지 예산을 훔치더니.)

알다시피 김기덕에겐 학연이 없다. 지연도 없다. 그에게는 선배작가도 후배작가도 없다. 4년 전 그가 ‘괴물’ 발언으로 다소 곤혹스러운 내면의 슬픔을 드러냈을 때, 과연 어느 동료감독이 그를 감싸고 보듬어주었던가. 내 기억으론 없다. 사적인 자리에서 그를 위로한 사람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공적인 자리에서 그를 위로하고 감싼 동료감독은 없었다.

그는 맨몸으로 영화 일에 뛰어든 사람이다. 오직 영화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빛나는 감수성, 교육에 때 묻지 않은 순수성으로 세계적인 영화를 만든 사람이다. 그는 상처받은 영혼을 구원하고픈 성자였고(사마리아), 밑바닥 군상들의 따뜻한 인간성을 사랑한 휴머니스트(악어)였다. 물론 그의 영화에는 선정적인 장면이 간혹 등장한다. 하지만 그건 내용의 본질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물며 평론가란 작자들까지도 그 선정적인 장면만을 문제삼으며, 엽기적인 감독이니 형편없는 감독이니 하며 물어뜯었던 것이다. ‘정신과 환자의 비극적인 복수충동’이라고 싸잡아 비난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섬〉(2000년작)은 그 어디에도 구원을 청할 길 없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위로를 얻고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린 역작이라 생각한다. (심영섭 씨가〈섬〉을 두고 한 평론 가운데)


연합뉴스 제공.



게다가 김기덕 감독을 호의적으로 보는 쪽도 이상한 관점을 가지고 김기덕을 평가하기 일쑤다. 가령 그들은 김기덕을 이단아로 본다. 천재적인 이단아로 말이다. ‘이단아’라는 말이 주류적 관점에서 나온 것이니만큼 그보다는, ‘다르게 보는 예술가’라고 하는 게 더 맞지 싶다. (김기덕 감독도 자기는 남들과 다르게 보는 것일 뿐, 엽기적인 건 아니란 의견을 밝힌 적 있다.)

나는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도, 영화를 평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편집 일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내가 쓴 글이 실릴지 안 실릴지는 모르겠다. 상관없다. 바라는 것은 부디 김기덕 감독님이 세상을 이겼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속물적이고, 끼리끼리 권력 만들어가면서 우르르 패를 지어 돌아다니는 저열한 인간들 때문에 구석으로 숨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만만해보이는(실은 위대한) 사람을 깔아뭉개고 짓밟는 사람들, 그런 쓰레기들 때문에 김 감독이 은둔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김기덕 감독은 누구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천상,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복귀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