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 방송? 너무 낯 뜨겁거나 재미없을까 봐 성인 인증을 패스하고 채널을 돌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사이 tvN의 ‘SNL 코리아’는 세 번의 시즌이 지났고, 김슬기 열풍이 부는데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김슬기는 ‘이유 없는 대세는 없다’라는 것을 보란 듯이 증명했지만, 그의 매력은 아직 온전히 발휘되지 않았다. 고작 20대 초반의 배우가 이토록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본 적이 있었나 싶다. 네 번째 시즌을 앞두고서야 슬그머니 김슬기를 ‘배우 즐겨찾기’ 목록에 올려두었다. |
김슬기(22)의 연기 동영상 몇 개를 봤을 뿐인데 입이 벌어졌다. 입에 찰싹 달라붙는 욕쟁이 캐릭터, 망가지는 것을 밥 먹듯 하는 연기는 20대 초반의 ‘여배우’가 쉬이 도전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물불 가리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를 넘나들며, 자칫하다 오해나 비난을 사는 유명 정치인 패러디도 거침없이 해낸다. 본디 타고난 얼굴이 궁금해지게 하는 이야말로 ‘진짜 배우’라는 평소 생각대로 기자는 그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리하여 그가 그간 출연해온 프로그램들을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더욱 강력해진 19금 코미디, SNL 코리아
‘SNL 코리아’는 1975년 시작한 미국의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NBC의 SNL(Saturday Night Live Show)의 형식을 빌려 한국판으로 만든 것이다. 얼마 전 미국 방송에 가수 싸이가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비단 노출 수위가 높아 야한 것뿐 아니라, 신랄한 정치 풍자는 물론이고 다루는 주제에 경계나 성역이 없어 장수하고 있다. ‘찧고 신랄하게 비트는’ 어른들을 위한 코미디가 바로 SNL의 본질. 이를 한국적으로 변형해 공감대를 모으는 것이 지금껏 제작진과 시즌3까지 연출을 맡은 장진 감독의 최우선 과제이자 가장 어려운 점이었다.
제작진이 밝히는 프로그램의 핵심도 야한 농담이 아닌 ‘성역 없는 풍자’다. 안상휘 PD는 “요즘 ‘개그콘서트’나 오락 프로그램에 시니컬한 유머, 풍자는 없는 것 같다”라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성역이 없고, 금기를 깨고, 정곡을 찔러야 통쾌함이 크기 때문에 19세 이상으로 가야 했어요. 풍자와 성적인 유머 두 개의 코드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가식적이지 않은 코미디를 하려고 합니다. 시즌2에서는 섹시 코드로 성인 코미디를 표방했고 시즌3에서는 정치 풍자의 새 장을 열었다고 봅니다. 이번 시즌에 사회적인 이슈를 더 강화해 시사 풍자의 진수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재미는 기본이고요.”
시즌1에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 배우가 바로 김슬기다. 한 주 방송 분량 내 4, 5개 코너를 종횡무진하며 변신해야 하는 프로그램에서 연기 경력이 훨씬 많은 선배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만드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애초 좀 맹해 보이는 섹시 캐릭터로 각광받던 김슬기는 천연덕스러운 연기와 존재감이 도드라지면서 보다 다양한 캐릭터로 진화했다. 대신 이번 시즌에 새로 투입된 개그우먼 안영미와 기상캐스터 박은지가 본격적인 섹시 캐릭터 경쟁을 보여줄 예정이다.
김슬기는 지난해 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 풍자 콩트 ‘여의도 텔레토비’로 ‘대박’을 쳤다. 대선 후보 4인과 현 대통령 캐릭터가 각각 텔레토비로 분해 반장 선거를 앞두고 신랄한 ‘애들 싸움’을 벌인다는 컨셉트. 문재니(문재인), 또(박근혜), 안쳤어(안철수), 앰비(이명박), 구라돌이(이정희) 사이에서 욕설이 난무한다. 김슬기는 ‘또’로 분해 신들린 욕설 연기를 선보였다. 유난히 차진 욕 덕분에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지만, 현역 정치인들을 이렇게 대놓고 비꼬는 패기야말로 ‘SNL 코리아’의 미덕이랄 수밖에. 그녀가 통합진보당의 대통령 후보로, TV 토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의 저격수 역할을 자처했던 이정희로 분한 ‘베이비시터 면접’은 또 어땠는가!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이라는 임재범의 노래 구절만 들으면 김슬기의 서늘한 눈빛이 떠올라 배꼽을 잡아야 했다.
‘SNL 코리아’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었던 연출가 장진이 없는 이번 시즌에 대해 우려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세 번의 시즌을 거치며 탄탄해진 크루들의 호흡에 쟁쟁한 출연진들의 면면이 기대를 모으는 중이다. 장진 감독과 김슬기는 서울예대 창작극 동아리 ‘만남의 시도’ 선후배 사이. 장진이 연출한 연극에 출연한 덕분에 ‘SNL 코리아’ 무대에 서게 됐다.
더 강력해진 여의도 텔레토비 ‘또’가 돌아왔다
어떤 역을 해도 곧잘 소화할 것 같지만 그래도 몸에 잘 맞는 역할이 있게 마련이다. 김슬기에게는 여의도 텔레토비의 ‘또’가 효자 캐릭터였던 반면 섹시 캐릭터는 시간이 갈수록 부담이 커졌다.
“귀여우면서도 독특한 못된 악동 같은 느낌이 잘 맞았어요. 시즌2 때 섹스 심벌이란 별명으로 불렸는데, 감사한 한편으로 섹시하지 않은데 섹스 심벌로 불리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노출이 없는 19금은 괜찮지만 좀 부담스럽기는 해요.”
사실 19금을 표방하는 ‘SNL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노출 연기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김슬기는 지난해 여름 방송된 ‘SNL 코리아 시즌2’ 호스트 신동엽 편의 코너 ‘골프 아카데미’에서 파인 의상을 입고 가슴 라인을 노출하는 등 초반에는 귀여운 얼굴과 대조적인 섹시 이미지로 어필했다. 하지만 은근한 볼륨으로 화제에 오른 것이 부담스러웠던지, 그 후로 노출 연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제작발표회에도 노출이 전혀 없는 핫 핑크 앙고라 스웨터와 재킷에 블랙 가죽 팬츠 차림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페이스북 ‘좋아요’가 1만 개를 넘으면 섹시 댄스를 추기로 한 ‘공약’은 지키겠다며 대신 “준비할 시간을 달라”라고 읍소도 했다.
하지만 신동엽은 “(제작진의) 사기 저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닌가”라며 다시 그의 섹시 댄스 공약이 못마땅한 듯 ‘심사숙고’하라며 제지하기에 바빴다.
“사랑을 받다 보니 예뻐졌다고들 해요. 그런데 여의도 텔레토비 출연 이후로 연애를 못하고 있습니다(웃음). ‘또’가 저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준 캐릭터이긴 한데….”
현장의 거침없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짐작할 만하다. 8주간 쉬면서 MBC-TV ‘무한도전’과 tvN ‘이웃집 꽃미남’에 출연한 그녀에게 이런 분위기가 ‘친정’처럼 편안한 것은 당연하다. 찾는 이가 많아 바쁘긴 하지만 아직 학자금 대출을 다 못 갚았단다. 그러자 옆에서 또 “씀씀이가 헤프다”라며 퉁을 놓는다.
“대출이 아직 좀 남아서, 일을 많이 해야 되는데…(웃음). 이번 시즌에는 ‘또’가 주인공이니 잘하도록 하겠습니다.”
15세 이상 관람가로 시작했던 ‘여의도 텔레토비’는 시즌3부터 19세 이상 관람가로 수위를 높였다. 시즌4에서 더 강력해진 풍자를 기대해도 될 것 같다. 여의도 텔레토비는 ‘또’가 주인공이 되고, 남북한 정상은 물론 아베 총리 등이 나오는 ‘글로벌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된다. 김슬기는 붉은 의상을 입고 거친 언행을 일삼는 ‘또’ 캐릭터로 다시 한번 변신.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돼 원톱 주인공으로 등극할 예정이다.
도둑과 친구가 되는 엉뚱 발랄한 여자 서툰 사람들 ‘유화이’
‘서툰 사람들’은 장진 감독이 쓰고 연출한 작품. 이미 2007년부터 거쳐간 배우들을 거론하자면 최근 연기파 배우로 브라운관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장영남, 영화와 연극 무대를 종횡무진 하는 사차원 배우 예지원, 그리고 ‘바비 인형’이라는 애칭을 마다하고 첫 연극 공연으로 이 작품을 선택했던 한채영까지, 모두 작품 속 ‘유화이’ 역을 연기했다. 이번엔 김슬기가 이 역할에 도전한다.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맡았던 배역이라니 부담스러울 만한데, 도무지 그런 기색이 없는 것이 김슬기의 매력이다.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연극 ‘서툰 사람들’은 도둑질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훔칠 물건보다 집주인을 먼저 생각하는 어설픈 도둑과 자기 집에 훔쳐갈 귀중품이 없는 것이 안쓰러워 비상금 위치까지 먼저 털어놓는 순진한 집주인의 하룻밤 소동을 그린 코믹 소란극이다. 엉성한 도둑 ‘장덕배’가 찾아든 집의 주인 ‘유화이’도 그가 입으면 착 붙는 캐릭터가 된다. 상대가 도둑이건 말건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반드시 짚는 여자, 쉴 새 없이 조잘대는 유화이 때문에 도둑질에 지장을 줄 정도라나. 여하튼 티격태격하던 와중 ‘장덕배’와 ‘유화이’는 호감을 느껴 친구가 되기로 한다. 이 와중에 자살 소동이 벌어지고 갖가지 인간 군상이 얽혀든다.
김슬기는 ‘서툰 사람들’의 엉성함을 사랑스럽게 그려내는 장진 감독과 다시 만났다. ‘장덕배’ 역은 ‘SNL 코리아’의 코너 ‘쨕’에서 게이 캐릭터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김민교가 맡아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귀엽고 엉뚱 발랄하게 변신할지 기대가 크다. 김슬기의 변신에는 도무지 브레이크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예감이다. ‘서툰 사람들’은 2월부터 코엑스아트홀에서 공연 중이며, ‘SNL 코리아 시즌4’는 2월 23일 토요일 밤 11시에 첫 방송을 시작한다.
김슬기에게 가장 궁금한 열 가지
(*인터뷰를 바탕으로 가상의 상황을 가미했으니 재미로 봐주시길!)
Q 나이는?
A 1991년생. 이제 갓 스물둘의 꽃다운(?) 처자입니다.
Q 요즘 ‘대세’라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A 글쎄요. 감사한 말씀이긴 한데, 아직 학자금 대출이 남았어요. 얼른 갚게 도와주세요~.
Q 이 기회에 대통령에게 한 말씀하자면?
A 등록금 좀 낮춰주세요.
Q 본인의 연관 검색어 중 ‘노출’에 대한 견해는?
A 제가 실은요. 보기보다 보수적(?)이에요.
Q 오늘 의상 컨셉트도 노출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인가요?
A 음… 글쎄요. ‘미친 존재감’의 표현?(웃음)
그건 스타일리스트에게 물어봐주세요.
Q 키가 어떻게 되죠?
A 168…이 되고 싶어요. 몸무게는 묻지 않으실 거죠?
Q 몸무게…?
A (‘거친 표정’으로 돌변했다)
Q 아, 그냥 넘어가죠. 진짜 직업이 뭐예요?
A 본업은 연극배우. 개그우먼 아니고요.
지금도 틈틈이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어요.
Q 거기다 ‘한 노래’ 한다는 소문도 자자하던데?
A 크크. 제가 좀 그래요. ‘슈퍼스타K 시즌4’에 나온
유승우 패러디도 제 아이디어였어요. 팬인 척하고
승우랑 같이 사진도 찍었답니다.
Q 앞으로 욕심나는 가수 캐릭터가 있다면?
A ‘케이팝스타 시즌2’의 ‘악동뮤지션’이에요.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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