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취재현장은 압도적이어서 기사로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와 여운을 남긴다. 반면, 기사로 쓰기엔 어쩐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돼 쓰지 못하고 남겨지는 이야기들도 있다. 기사라는 틀거리에 담지 못해 흘러 넘쳐버린 이야기가 아니라, 다소 부적절해 보이는 이야기. 지금 쓰게 될 글은 후자에 속해 미처 다 쓰지 못한 이야기다.
지난 8일, 2년을 끌고 온 국립한국문학관 부지 선정이 최종 발표됐다. 서울 은평구 옛 기자촌 터에 자리잡게 될 문학관은 608억원의 예산을 들여 한국 최초로 건립되는 국립문학관이 될 터였다. 하지만 기자간담회장의 분위기는 어쩐지 무거웠다. 염무웅 국립한국문학관 설립추진위원장은 “저희가 원한 곳은 은평구보다 더 중심적인 곳”이라고 말했고, 이시영 부위원장은 “저희로서도 양에 차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쁨보다는 울분에 가까운 분위기가 간담회장을 채웠다. 이 부위원장은 앞서 페이스북에 감회를 밝히기도 했다. “현장답사자의 전언에 의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옛 기자촌 부지에 건국 이후 최초의 국립문학관을 지어야 하는 궁핍한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무엇이 이들을 ‘화’나게 했을까. 국립한국문학관은 건립 계획이 시작된 이후 2년 동안 부지 선정을 두고 치른 홍역을 보면 이들의 울분이 일견 이해가 간다. 문학계는 일찌감치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옆 문화체육관광부 부지를 낙점했지만, 서울시는 미군기지 반환 이후 만들어질 용산공원에 대한 종합적 계획이 우선이라며 반대했다. 문학계는 이외에 정부과천종합청사부지 등도 물망에 올렸지만, 이 역시 정부에서 난색을 표했다. 남은 것은 “양에 차지 않는” 곳들이었는데, 파주 출판도시, 헤이리, 은평구 기자촌 등이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은평구 기자촌이 문학관 부지로 선정됐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추진위로서는 해방 70년 만에 처음으로 지어지는 국립문학관을 접근성과 상징성이 있는 서울 중심부에 짓고 싶었을 것이다. 한편 문체부가 문학관 부지 선정 공모를 시작하자 지자체의 입찰 경쟁이 과열되어 공모가 중단되는 일도 있었다. 문학계가 ‘양에 차지 않는’ 서운함을 표할 때, 은평구에는 국립한국문학관 유치를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서울 중심부로 들어가고자 하는 문학계, 문학관을 유치해 지역개발의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지자체의 욕망의 대비는 기이했다. 이건 어떤 문학적 메타포도 아닌 부동산을 둘러싼 적나라한 욕망의 전시에 가까워 보였다.
2년 동안 부지를 둘러싸고 겪은 갈등을 감안하더라도, 이제 막 본격화될 문학관 건립을 알리는 간담회에서 건립추진위 고위인사들이 내보인 반응은 부적절해 보였다. 예산 608억원을 들여 추진되는 사업의 시작에 앞서 서운함과 울분을 먼저 토로하는 것은 과연 적절한 일인가. 더구나 그것이 문학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면.
문학은 시대적 아픔과 사회적 약자들의 분노를 예술로 승화시켰을 때 생명력을 획득한다.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아직도 읽히는 것은 개발주의 시대 밀려난 철거민들의 아픔과 분노를 그려냈기 때문이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한국 소설로는 근 10년 만에 100만부 돌파를 코앞에 둔 것도 그동안 발화되지 못하고 주변부에 머물렀던 여성의 삶에 온전한 목소리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문학의 힘은 현실을 전복시키는 분노에 있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표출하는 역정에 있지 않다. 문학관 부지를 둔 문학계 인사들의 반응은 ‘분노’가 아닌 ‘역정’에 가깝게 느껴졌다.
문학은 기념관 안에 머물지 않는다. 살아 숨쉬는 문학관을 만들기 위해선 문학의 공공성을 넓히고, 문학관이 대중과 호흡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문학관이 세워질 땅의 중요성에 따라 문학관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내용보다 건물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비문학적인 태도가 아닌가.
<이영경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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