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정 문화부 차장 yjhan@kyunghyang.com
세대론은 항상 사람들의 구미를 당긴다. 전후세대니, 4·19세대니, 7080이니, 486이니(이들은 386에서 486으로, 유일하게 진화하는 세대다), X세대니, Y세대니, 88만원세대니 하는 구분들이 계속 이어져 왔다. 자연 세대는 30년이지만 압축 성장과 빠른 변화를 겪어온 우리 사회에서 문화적 세대 단위는 보통 10년이다.
지난해 ‘세시봉’ 바람이 불면서 7080 통기타 세대가 화려하게 부상하더니, 그 정도는 아니지만 요즘은 4·19세대와 X세대의 문화가 관심권에 진입했다. 전자는 1960년대, 후자는 199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낸 세대여서 그들의 문화적 감각을 60년대식이라거나 90년대식이라고 해도 좋겠다.
60년대식의 대표 주자는 여전히 소설가 김승옥이다. 절필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문단 후배들은 그의 등단 50주년을 기억해 최근 대표작인 <서울, 1964년 겨울>을 재출간하고 낭독회까지 마련했다. 그가 일으킨 ‘감수성의 혁명’을 여전히 높이 사는 분위기다. 4·19 직후 혜성처럼 등장한 김승옥은 전후의 무력감을 떨친 생동감 있는 한글 문체로, 기성의 관념체계나 일상의 질서를 벗어나려는 아웃사이더의 모습을 그렸다. 그의 주인공은 혁명과 반혁명, 경제개발 같은 당대 상황에서 동떨어진 개인의 꿈과 내면, 일탈의 욕망을 좇는다.
자아에 집착하는 인물이 젊은 날의 낭만과 치기를 지나쳐 현실에 대한 환멸과 무기력으로 향하는 여정은 김승옥 문학에도 적용돼 그의 작가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자신의 작품 ‘무진기행’을 영화 <안개>로 개작하는 작업을 시작으로 70년대에는 <겨울여자> 등의 시나리오를 썼고, 81년 일간지 연재소설 <먼지의 방>을 쓰던 중 신군부의 검열에 맞서 절필했다. 절필 직후 하느님의 계시를 체험하면서 종교에 귀의했으며 10여년 전 뇌졸중 후유증으로 말을 잃었다.
그런 그의 문학이 60년대의 아이콘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외형으로 보이지 않는 젊은이들의 처절한 심경, 심층의 역사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김승옥의 주인공은 싸우고 건설하는 인간이 아니라 고독하고 퇴폐적인 인간, 역사의 흐름에서 비켜서서 자신의 정신성을 추구하는 인간이다. 그런 제스처를 통해 그가 강조하고 싶었던 건 개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김승옥의 개인이 현실에서 존재하기 시작한 건 90년대에 들어온 뒤였다. 소위 X세대는 이전 선배들이 짊어졌던 정치·사회적 부채감을 떨쳐내고 욕망에 충실했다.
이제훈과 수지가 출연한 영화 ‘건축학 개론’ l 출처:경향DB
최근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성공한 한국 영화 <건축학개론>은 90년대 세대의 자기회고가 시작됐다는 의미를 갖는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지만 영화 속의 90년대식 패션과 대중문화, 언어습관과 감성은 독자적인 것이다. 한 영화잡지는 90년대식 문화의 표지로 심은하의 이미지와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에 열광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와 왕가위를 좋아했으며 게스 청바지를 입고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를 드나들었던 세대로 정리했다. 자유롭고 천진했던 이들은, 그러나 두 차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취업난과 중산층 진입 실패를 겪었고 이제는 30대 후반 내지 40대 초반에 이르러 지나간 좋은 시절을 돌아본다.
2010년대에 회고하는 60년대식, 90년대식 문화는 결국 사회체제나 외부상황에서 자유롭고 싶은 개인의 욕망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와 변화를 말하든, 나눔과 배려를 말하든, 현재 우리 사회는 조용하고 소박한 일상을 꾸려가고 싶은 소망을 방해한다. 긍정하고 도전하고 소통하고 공동선에 관심을 갖기를, 나아가 분노하고 역동하기를 권유하는 사회 속에서 침착하고 사색적인 내면이 자리잡을 여유가 없다. 소설과 영화가 꿈이라면, 그 꿈은 고독하게 침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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