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탈북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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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보기=====/김제동의 똑똑똑

(42) 탈북 청년들


 
ㆍ“주민등록증도 나왔고 대한민국 국민인데 투명인간 취급 받죠”


서울 남산 기슭의 여명학교 지하 2층 미술실. 들어서자마자 나를 맞이하는 여러 그림들은 이내 숨을 옥죄며 가슴을 짓눌러왔다. 감옥, 창살, 총칼 그리고 절망스럽게 묶여 있는 자신의 몸. “아이들이 이곳에 왔던 초기에 그린 그림들이에요. 시점은 각기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하죠.” 여명학교 조명숙 교감의 설명은 그림에서 배어나오던 어렴풋한 공포를 현실적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탈북한 학생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은 그들에게 잡을 손이, 기댈 어깨가 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절한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그들에게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이라도 하루빨리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안전 때문에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이현실 “북한 사투리 쓰니까 이상한 눈으로 봐요. 전화도 못 받고 자꾸 움츠러들어요.” 김제동 “경상도 사투리 쓰는 나도 처음엔 지하철에서 말 한마디 못했어. 엄마, 아빠 때부터 해왔던 말이잖아. 자부심을 가져.” 




김제동 = 와, 헤어스타일 멋있는데? 어디서 했어? 


강현수(20) = 미용실에서요.


제동 = 그런데 너무 잘생겨지진 마라. 이 아저씬 태생적으로 잘생긴 것들을 싫어해.


정재석(21) = 아저씨도 괜찮아요. 


제동 = 됐어. 그렇게 위로 안해도 돼. 그런데 내가 나온 프로그램 많이 봤냐? 요즘 별로 안 많아서 보기 힘들었을 텐데. 


재석 = 웬만한 건 다 봤어요. <무한도전>에서 재판하는 것도 봤고. 


제동 = 쓸데없이 그런 걸 보고…. 여자친구는 있냐? 


재석 = 네. 있어요. 


제동 = 어라. 이러면 나보다 훨씬 나은데? 남한 사회에서 넌 나보다 훨씬 적응을 잘한 거야. 어떠냐? 힘든 것 많지? 


재석 = 없다고는 할 수 없죠. 두렵고 사회 진출하는 것도 걱정되고. 특히 실력이 많이 모자라니까요.


제동 = 뭘 하고 싶어? 


재석 = 외교관요. 


제동 = 좋아. 그런데 왜?


재석 = 통일된 뒤에 특히 의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제동 = 혹시 외국에 가본 적은 있니? 


재석 = 중국이랑 태국요. 감방에 있어서 구경은 못했습니다. 하하하.


제동 = 웃지마. 짠하다. 여기 온 지는 얼마나 됐어? 


재석 = 5년요. 이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어요. 여기 와서 중학교 다녔는데 처음엔 좋은 선생님 만나 괜찮았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올라간 뒤 환경이 바뀌고 공부도 어렵고 친구 사귀는 것도 힘들었어요. 열등감이랑 자괴심도 생기고. 투명인간 같은 취급 받고. 난 누군가 싶고 그랬어요. 결국 학교생활 못 버티고 자퇴했어요. 주민등록증도 나왔고 대한민국 국민인데 그 대열에 끼지 못한다는 자괴감이죠. 어떤 분들은 나라에서 돈 다 대줘서 공부시키고 먹이고 재워주는데 왜 열심히 안하냐고 해요. 그래서 더 힘들어요. 내 편도 없고.


제동 = 여기 와선 어때?


재석 = 처음엔 기대 안했어요. 고등학교 과정이라도 마치자는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이젠 대학 진학을 꿈꾸게 됐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깡촌에서 대구로 전학을 갔다. 저들과는 비교도 안되겠지만 당시 촌놈이 대구에서 적응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몇 개월 동안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기죽기 싫어서 매일 입었던 옷은 체육관 도복. 힘들어도 누군가와 같이하면 좀 낫지만. 하지만 힘든 일은 그 자체보다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그 사실이 더 큰 상처를 준다. 


▲ 과거

“중국에서 공안이 다가올 때 그 공포는 말도 못해요…

다시 생각하기 싫죠”


▲ 현재

“명동에 갔는데 우리 보고 조선족은 설치지 말래요

울면서 돌아왔어요”


▲ 미래

“남다른 경험 글로 쓸래요… 저처럼 상처받은 이 보살피는

사회복지사 되고 싶어요”



“남한 사람·북한 사람에서

남한·북한 떼면 결국 사람 문제

그걸 잊지 않고 사는 게 중요”



현수 = 전 적응은 비교적 괜찮았는데 학교 공부를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고등학교까지는 그럭저럭 마치고 싶었지만 중간에 그만뒀어요. 시간은 지나고 성인은 되어가는데 어느 순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리로 왔어요. 막상 해보니 대학도 가고 싶어요. 


제동 = 뭘 하고 싶어? 


현수 = 헤어디자이너요. 


제동 = 너 보니 딱이다. 남이 깎아줘도 머리 이렇게 손질하고 정리하기는 쉽지 않아. 간지 난다. 친구는 뭐 하고 싶어? 


박혜정(20) = 전 소설가가 되고 싶어요. 실력이 부족한 게 고민이긴 하지만. 


제동 = 고민할 것 없어. 좋아하는 것 하면 돼. 아저씨는 돈 많이 벌었어. 이런 이야기 들으면 짜증나지? 아저씨도 반지하에 살았고 열여덟 살부터 내가 학비 벌었어. 지금도 생각나. 그때도 아저씨는 사회 보는 게 좋았고 남 앞에서 말하는 게 좋았어. 그런데 그게 꿈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그때 하고 싶은 건 관광가이드였어. 전문대 관광과를 간 것도 그 때문이지. 내가 보기에 너희들이 하는 고민은 스무 살 또래의 남한 아이들이 하는 고민과 전혀 다르지 않아. 중요한 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야. 돈을 많이 못 벌어도 이 일을 하면 행복할 수 있겠다 싶은 것. 그 일을 찾아가다 보면 돈은 따라와. 돈을 앞세우면 행복은 뒤에 안 따라와. 남들이 원하는 인생을 살면 마지막에 행복하지 않아. 자기 가슴이 뛰고 좋은 일 있지? 그걸 해야 돼. 


혜정 = 주변에 꿈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굶어야 된대요. 배고픈 직업이라고. 전 그냥 제 실력이 고민인 건데. 


재석 = 얘 엄청 먹어요. 


제동 = 하하하. 배고픈 직업인데 엄청 먹어서 고민인 건 아니잖아. 배부른 직업 가지고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 많아. 세계가 다 그래. 글쓰고 싶은 게 돈 벌고 싶은 건 아니잖아? 누가 내 글을 읽어주길 바라는 거지. 그걸로 충분해. 간절하게 쓰고 싶고 읽히고 싶고. 그럼 글은 나와. 


혜정 = 저쪽에서 살던 경험도 있고 여기 경험도 있으니까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또 북에선 내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이젠 자유롭게 내 생각을 표현해보고 싶기도 해요. 가슴 아팠던 경험들, 남한으로 넘어올 때 힘들었던 과정들. 


제동 = 뭐가 제일 힘들었니? 


혜정 = 위험했던 모든 순간들이죠. 밤에 아슬아슬한 벼랑길을 건너다녀야 했고 이리저리 빠지고 뒹굴며 수도 없이 다쳤어요. 중국에선 신분증 검열하는 공안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들이 다가올 때 그 공포는 말도 못해요. 탄로나면 북송되는 거거든요. 제가 하나님을 전혀 몰랐는데 나도 모르게 속으로 “하나님 살려주세요” 하고 외쳤어요. 


제동 = 그때를 생각하기도 싫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다녀야했겠다.


혜정 = 다시 생각하기 싫죠. 그리고 거의 굶었어요. 짐이 무거우면 이동이 불편하니까요. 올 6월이면 만 2년이 돼요. 


제동 = 애썼다. 그런 힘든 일이 안 일어났더라면, 그런 끔찍한 경험을 할 필요없이 살 수 있었다면 가장 좋은 일인 건데. 그렇지만 작가를 꿈꾸는 혜정이 너에겐 이 아픔도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어떻게 너희들이 겪은 고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니.


혜정 =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위로가 되고 힘이 돼요. 


제동 = 좋아하는 작가는 있니? 


혜정 = 다양하게 읽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신경숙씨의 <엄마를 부탁해>도 감동적이었고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열심히 봤어요. 


이현실(19) =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하는데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습관이 안돼서 힘들어요. 어릴 때부터 많이 읽었어야 하는데 갑자기 한국에 와서 읽으려니까요. 


제동 = 억지로 읽으려고는 하지 마. 재미있어 보이는 것, 마음이 당기는 것부터 시작하면 돼. 야한 책이나 연애소설도 보고 그래야지. 현실이도 진로 문제가 고민이니?


현실 = 고3이니까 아무래도 그렇죠. 대학도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고, 남한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힘들어요. 


제동 = 어떤 부분이 힘들어? 


현실 = 말투요. 북한 사투리 쓰니까 이상한 눈으로 봐요. 공공장소에서는 전화도 못 받고 자꾸 움츠러들어요. 이어폰 끼고 음악만 듣고요.


제동 = 하긴 경상도 사투리 쓰는 나도 처음엔 지하철에서 말 한마디 못했어. 그런데 내가 태어나서 배운 말이고 엄마·아빠 때부터 해왔던 말이잖아. 그거 자부심 가지고 써도 돼. 


현실 = 어떤 사람들은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신기해하기도 하고 조선족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전에 명동 상가에 갔는데 우리 보고 조선족은 설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해서 나도 모르게 울면서 돌아왔어요. 굉장한 상처였어요. 


제동 = 그때 기분이 어땠니? 


현실 = 북한 사람도 중국 사람도 다 사람인데 왜 차별할까 싶었어요. 


혜정 = 우린 정체성이 불명확하잖아요. 북한도 남한도 아니고요. 


현실 = 자꾸 그러다보니 나는 왜 북한에서 태어났나 싶고…, 자신감이 떨어져요.


제동 =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고 이념으로, 다른 잣대로 가르는 것은 폭력이야. 조선족이니 새터민이니 하며 가르고 종북좌파니 빨갱이니 지칭하고. 정말 폭력이지. 욕을 먹으면 화가 나는 건 괜찮은데 자기도 모르게 자책이 들어. 그런데 그건 잘못도, 부끄러운 일도 아니야. 어떤 사람이 화가 나게 해도 절대 그 말이나 기분에 묻혀 있지 마.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넘겨. 그래야 내가 편한 거야. 욕 해놓고 그 사람은 잊어. 나만 짜증나. 고민하고. 누구 손해니? 이건 내 말 들어도 돼. 나 내년이면 마흔이거든.


쓰리고 아팠다. 이 아이들이 받은 짓밟힘과 상처를 내가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자신들의 친구, 이웃이 강제로 북송되는 아픔을 견디지 못해 거리로 뛰쳐나간 아이들. 사람들 앞에 서서도 목놓아 울지 못하고 숨죽여 흐느꼈던 아이들. 


제동 = 음악은 뭘 듣니? 


현실 = 옛날 노래요. 주로 발라드 들어요. 지금 나오는 댄스는 정신 사나워서. 


제동 = 나도 옛날 노래가 좋아. 우리 엄마는 TV에서 가수들이 랩하는 걸 보면 그러셔. 아이고, 야야. 쟈들 숨은 언제 쉬노? 저러다가 아~들 잡겠다. 가수는 누구를 좋아해? 


현실 = SG워너비랑 나몰라 패밀리요. 


제동 = 언제 왔니? 


현실 = 1년 좀 넘었어요.


제동 = 뭐가 되고 싶어? 


현실 = 사회복지사요. 봉사하고 도와주면서, 내 안에 있는 상처도 치료하고 싶어요. 


제동 = 제일 힘든 건 뭐야? 


현실 = 남한에 전 혼자 있어요. 가족 생각, 고향 생각 많이 나죠. 엄마가 보고 싶고 고향에 가고 싶고. 엄마는 북한에 있거든요. 


제동 = 엄마 소식은 아니? 


현실 = 전에 엄마가 국경에 가서 한 번 통화한 적이 있어요. 엄마 목소리 들으니까 눈물이 쏟아지려는데 엄마가 더 울어요. 그러니 울 수가 없잖아요. 괜찮다고 억지로 씩씩하게 말했죠. 


현실이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는 듯했다. 울음을 꾹꾹 삼키는 그의 입술과 눈물을 찍어내던 그의 손이 계속 애처롭게 떨렸다. 


혜정 = 처음엔 우리 모두 울고 싶어도 울지 못했어요. 감정 표현이 안되더라고요. 


제동 = 그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매순간 위로하고 살자. 이건 명백히, 전적으로 어른들 잘못이야. 그리고 우리가 잘해서 다음 세대엔 이런 거 물려주지 말자. 가장 많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가장 많은 치유를 해줄 수 있어. 현실이는 사회복지사가 되려면 뭐가 필요한 것 같아? 


현실 =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요. 


제동 =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줘. 그러면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어. 현수, 넌 여친 없어? 


현수 = 공부하려고요. 


제동 = 여친 있다고 못하냐? 난 없는데도 공부 못했다. 


재석 = 정말 없어요? 


제동 = 있으면 내가 이 시간에 여기서 차 마시고 있겠냐? 


현수 = 우리 학교 선생님 괜찮은데.


재석 = 저희 때문에 노처녀 되신 것 같아서 저희가 책임져야 할 것 같아요. 만나 보실래요?


제동 = 왜 너희 때문에 청춘을 버려? 너희와 함께 청춘을 보람되게 보내고 계신 건데. 원래 일방적인 관계란 건 없어. 엄마가 애 키울 때 젖 먹이고 똥오줌 기저귀 갈아주면서 희생이라고 생각하겠어? 사실은 아이보다 훨씬 기쁨을 얻는 게 누군데. 방긋방긋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엄마가 큰 기쁨을 얻는 건데. 지금 너희들이 그런 거야. 아프면서 자라는 거라 생각해. 자책하지 말고, 나만 그렇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건 남북 간의 문제가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의 문제다. 미래를 함께 해나갈 이들 또래끼리 도우며 헤쳐나가야 한다. 남한 사람에서 남한 떼고, 북한 사람에서 북한 떼고 남는 것은 사람이다.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이고 그걸 잊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어떤 가치나 이념도 사람에 우선할 수 없다.


제동 = 연예인은 누구 좋아하니? 


현수 = 투애니원 산다라박요. 


재석 = 전 김제동!!


제동 = 넌 유엔 사무총장 될 거야, 하하. 


재석 = 그런데 <오마이텐트>는 왜 그만두셨어요? 


제동 = 그런저런 사정이 있었어. 


재석 = 나중에 다시 하면 같이 데리고 다녀주세요. 그리고 한혜진씨 사인 한 장 받아주세요. 


제동 = 흠. 이제서야 본마음을 드러내는구나. 


현수 = 전 오로지 산다라박이에요. 


혜정 = 전 소녀시대 윤아요. 


현실 = 장근석이랑 소지섭이 좋아요. 


재석 = 혹시 김태희랑은 안 친하세요? 


제동 = 야. 너 점점? 내가 효리 사인은 받아다 줄게.


16세에서 25세까지, 65명의 학생이 몸담고 있는 작은 공간이 여명학교다. 탈북, 남한 정착 과정에서 배움의 시기를 놓치고 일반학교 진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초·중·고 과정을 공부한다. 성장기에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절반 이상이 당뇨와 빈혈을 앓고 있다. 체구가 또래의 남한 아이들보다 대체로 작을 뿐 이들의 관심사는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소년들과 다를 바 없다. “유재석 봤어요?” “이효리랑 진짜로 친한 거 맞아요?”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는 정말로 지나가다가 그냥 나온 거예요?”


볼품없는 내 얼굴에 제 볼을 부벼대며 찍은 사진을 보고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맘 같아선 머리카락 뽑아 내 분신을 여러 개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묻는다. “이효리는 안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