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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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보기=====/김제동의 똑똑똑

(25)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

“좁은 독방에 해가 삐뚤게 들어오기 시작한다. 처음엔 점 하나 찍어놓은 크기였지만 그것이 점점 커지기 시작해 나중엔 신문지 크기로 커진다. 신문지크기만 한 햇빛을 맞을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2시간 정도다. 그러나 이 한 점의 햇살만으로도, 그 햇빛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게 손해는 아니다. 그 햇살이 없었으면 나도 숨을 끊었을지 모른다.”

수년 전 신영복 선생의 강연회에서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정수리에서 뭔가가 자르르 흘러내렸다. 당시 선생의 말씀은 나에게 당신을 살아가게 했던 ‘신문지만 한 크기의 햇살’ 이상이었다.

선생은 나에게 시대를 살아가는 힘이었고, 삶을 견뎌내는 원동력이었다. 아니 선생은 당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도 큰 선물이다.


공부라면 담쌓고 살던 내가 2년 전 큰 맘먹고 성공회대에 편입한 것도 순전히 선생 때문이었다. 물론 권총(F학점)을 수십개 차서, 얼마를 더 다녀야 할지 모르겠지만. 뭐 대수인가? 난 전문대도 11년이나 다녔는데…. 여하튼 막 봄이 움트는 교정에서 선생과 마주 앉았다.



신-김창남 교수가 좀 있다 온대요. 제동씨가 수강신청을 안했다고. 

김-흑. 어제 뵈었는데. 최근에 이사를 했어요. 선생님 한번 모셔야 하는데.

신-방배동이랬죠? 그 집 ‘안가’라고 소문 나서 많이 모인다고 하던데요. 

김-많이 옵니다.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이 워낙 많아가지고요. 

신-많이 오면 좋지요. 

김-다들 와서 선생님 글씨를 훔쳐갑니다. 다른 건 안가져가고 말예요. 예전엔 승엽이 사인볼을 가져갔는데 이젠 별로 인기가 없고 주로 선생님 글씨를 가져가죠. 현정이 누나한테는 제가 선물했고, 전에 선생님이 재석이형이랑 승엽이한테는 축사를 써주셨잖아요. 선생님 글 받고 완전 감동해서 어쩔 줄 몰라하던데요. 재석이형은 예전에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 하면서 선생님 뵌 적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여튼 훔쳐가는 인간들이 몇 있어요. 길, 하하…. 이 인간들이 글씨의 값어치는 모르면서 돈은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라서요. 참, 선생님 이번에 인문학 강좌도 하시잖아요. 

신-그래요. 이번에 강좌 수료생이 150명정도 되잖아요. 지난 1월엔 공개특강을 했는데 80명이 모여서 한달동안 결석도 안하고 성황리에 끝났어요. 제동씨도 인문학 공부해서 분위기 잘 알잖아요.

김-전 강좌도 강좌지만 선생님과 엠티갈 때가 좋았습니다. 솔아솔아 노래도 부르시고. 노래 정말 잘하시던데요. 

신-제가 노래 없는 세월 20년을 살았잖아요. 독방에서 허밍하는 수준이었죠.

김-아... 그 20년, 노래없는 세월 20년. 그 말씀이 마음에 와서 쿵쾅쿵쾅 합니다. 그때는 감옥 안에도, 밖에도 노래가 없었어요. 노래가 있어도 부를 수 없던 시절이죠.

신-그런가요? 그래도 출소하고 보니까 그래도 많은 성과를 이룬 분야가 노래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부지런히 배우기도 했어요. 앞으로도 더 배워야하지만. 

김-요즘 노래 좀 아세요?

신-못 따라가겠어요. 그룹 노래는 노래보다 춤이 우선이기도 하고. 가사를 들어보면 대부분 인간관계가 파탄된 것 같아요. 뭐더라, 네가 떠나갔을 때 내가 울고 있을 줄 알았지, 착각하지마.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공감은 잘 안돼요. 

김-예전 노래에는 감정이입이 그대로 됐잖아요. 

신-노래 없는 세월을 살면서 팝, 재즈 가사집만 봤어요. 비틀즈 노래만 해도 엄청나잖아요. 변혁적이고 좋은 의미를 담고 있는 노래가 많아요. 그런데 지금 우리 노래는 깊이가 많이 떨어진 것 같아요. 

김-비틀즈의 이메진은 사실 혁명이죠. 정말 대단합니다. 

신-제가 가끔 감옥에서 불렀던 노래 중에서 엘 콘도르 파사라고 사이먼&가펑클이 부른 노래가 있어요. 아주 서정적이고 좋아요. 내가 언젠가 해외 기행을 하면서 마추피추 산꼭대기에 올랐는데 원주민이 자기들 악기로 그 노래를 부르더라구요. 원주민들이 피사로 일당에게 쫓기다가 최후를 맞았던 자리로 알려져 있잖아요. 아주 감동적이었어요. 

김-전 인문학 강좌 끝난 후에 공연하시는 더 숲 트리오가 더 좋아요. 성공회대 교수님끼리 만든 트리오 말예요. 전원 박사학위 소지자시고. 열심히 하시고 음악 수준도 높잖아요. 전 하여튼 엠티가서 모닥불을 피워놓은 자리에서 선생님 뒤에 앉아있었는데 솔아솔아 푸른 솔아를 부르시는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신-그 노래를 내가 주문을 받긴 하는데 노래가 너무 비장해요. 창살 아래 내가 묶인 곳... 주문하는 사람도 아주 짖궂죠. 난 이제 피하고 싶어요. 

김-예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선생님 책을 읽다 보면 저같으면 이런 오랜 세월을 못 견뎠을 것 같아요. 억울해서 어떻게 살지 싶어요.

신-책을 읽은 독자들이 저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있어요. 그런데 그건 나로서는 부담이에요. 그 글은 주로 편지글이잖아요. 이중의 검열을 전제로 했지요. 교도소에서, 또 최종 독자인 가족들이 보잖아요. 교도소의 검열도 신경써야 하고 가족들에게도 걱정을 덜어줘야 하고. 그래서 반듯하고 무너지지 않는 모습을 글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실제 내 삶은 그렇지 않아요.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무서움도 많이 느꼈어요. 힘들었고. 앞날도 보이지 않고. 그래서 저는 독자들을 만나는 걸 피하고 싶어요. 계속 반듯한 모습, 쓰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까요. 저를 그렇게 보시는 모습이 부담스럽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나와서도 감옥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김-하하. 그래서 선생님이 인간적이세요. 사람들이 선생님을 글의 모습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럽다고 하시는 모습 말예요. 
그런데 선생님. 20년하고도 20일입니다. 억울하고 분하지 않으셨나요?

신-그런 질문도 들어봤어요. 그런데 어느 시기를 보더라도 그런 역사적 격랑속에 희생된 사람이 상당히 많아요. 지금도 이집트, 리비아에서 희생되고 있고. 크게 보면 민족의 운명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민족, 특정인에 대한 분노를 갖는 것은 큰 틀에서 온당치 않게 보고 있어요. 20년을 견디는 힘이었다고 한다면 하루하루가 많은 것을 깨닫는 나날이었어요. 그래서 나의 대학시절이었다고 술회하지요. 뭔가 깨닫는 삶은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단기수들이 더 괴로워해요. 수업시간에도 이야기했지만 빨리 나가는 날만 기다리는데 우리같은 무기수는 빨리 간다고 나가는게 아니니까 하루하루가 의미가 있어요. 그런 면에서 우리 삶도 그래야 해요. 성과, 속도, 효율. 잔혹하고 비인간적이고 뭔가 도달하려고 하는게 삶과 인생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김-도로보다 길 위에서 라는 말씀이시네요. 

신-그렇죠. 도로는 목적에 도달하는 수단, 그 이상의 의미가 아니잖아요. 길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고 의미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길의 정서를 갖고 살자는 거죠. 

김-도로는 빨리 가야 하지만 길은 함께 가는 거네요.

신-그렇죠. 지나가는 사람 발자국도 보고, 코스모스도 보고. 

김-발자국 전체가 의미가 있는거죠. 도로는 무조건 가는 거니까요. 

신-모든 동물은 직진하지 않아요. 길의 특성을 공부하면서 가죠. 자기 것을, 자기 표시를 남기잖아요. 그 어느 하나 의미없는게 없어요. 우리 삶도 그래야 하고. 그런데 모든게 청산되고 오로지 물적인 성과에만 매달리는 것이 오늘날의 삶이 아닌지 싶어요.

김-물적인 성과에만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죠.

신-세계의 모든 질서가 그렇지요.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있고 그 중하위권에 우리나라가 매달려 있는 형국이기 때문에 여기서 떨어져나오면 우리 삶이 정지되는 구조속에 살고 있어요. 서서히, 중장기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패권에 올인하는 것을 삼가면서 우리 나름의 계획을 갖고 가야 하는데. 

김-저희도 그래요. 비인간적이고 패륜적인 톱니바퀴 속에서 빠져나가고 싶지만, 용감하게 도로에서 기수를 틀어 차문을 열고 길위에 서고 싶지만 두렵기도 하고 방법도 모르겠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가야하는 건 알겠지만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신-서울 사람 70%가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는데 현실적으로는 못하잖아요. 달리는 열차에 타고 있지만 이 열차가 좋은 곳으로 질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뛰어내리지 못하는 상황에 살고 있어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중장기적인 정책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데 사실 쉽지 않아요. 그러나 많은 사람이 고민하고 있고, 고민이 깊은 공감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잖아요. 그럼 가능성은 있죠. 국내외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파탄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난맥상을 보여주는 것이 사실인데 이것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막연하죠. 그러나 굉장히 비싼 학비를 치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공자는 학이지지 공이지지라고 했어요. 태어나서 아는게 아니고 곤이지지 곤이 부지. 곤경을 겪고도 그 곤경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이런 상태죠. 

김-지금 있는 여러가지 불합리, 부조리. 사람들이 겪는 곤경을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신-그렇죠. 그렇지만 쉽지 않죠. 다 바쁘게 가니까. 그래서 강연회때도 이야기했지만 곳곳에 숲을 만들자는 거예요. 작은 숲을 만들어 우선 견디고 방어진으로 숲을 만들고. 많은 사람이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가지 수준의 연대를 해 나가면 사회적 역량을 결집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김-선생님 말씀 들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나도 직접적인 단어가 없고 하나도 자극적이지 않아요. 그런데 자세히 듣고 있다 보면 그 어떤 격한 말보다 훨씬 깊이 와 닿을 때가 있어요.


신-아니에요. 김제동씨처럼 행간의 의미를 읽어주는 분이 많지 않아요. 전 제동씨의 그런 점이 돋보인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저는 감옥에서 참 많은 사람과 목욕탕 수준의 적나라한 인간관계를 부대끼며 살아오는 동안 뭔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애정이 있어야 
가능해요. 함께 간다는 것이 중요하죠. 60년대 학생운동 때는 논리적으로 신랄하게 비판하고 상대방의 허점을 공략하고 그랬어요. 그건 애정이 없는 거예요. 같이 가면서 친구되고 강남가면서 친구되고. 이런 방식이 옳지 않은가 싶어요. 

김-적대감 같은 것이 배제된 상황에서 최소한의 애정을 갖고 충고하고요. 같이 살아야 할 대상이니까요. 

신-그래요. 제가 감옥에서 있을 때 북에서 온 정치경제학 교수들도 있었어요. 한방에서 있으면서 논쟁적인 지점에 이르면 그분들은 좌경적 입장에 서요. 왜냐하면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죠. 그때 많은 것을 느껴요. 좌경적 입장에 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우경적 입장에서 그 사람 정서에 맞게 함께 가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느껴요. 해방전후 격동기를 겪어온 나이 많은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고 실천은 우경적으로 하라고 해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에요. 놀던 물을 떠나기 어렵고. 우선 살아야 하니까. 

김-아침 이부자리 박차는 것도 힘들어요. 

신-맞아요. 우린 보수구조가 아주 완고해요. 우회전은 아무대나 할 수 있고 좌회전은 반드시 화살표 신호받아서 하잖아요. 입법사법행정 제 4부 언론까지. 굉장히 보수적이죠. 구조 자체가 매우 보수적이니까 이념같은 날카로운 주장은 깨집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포획돼 있는 정서에 다가가기 위해 이념적인 언어가 아닌 다정한 언어로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갖고 있어요. 

김-보수, 진보의 개념보다 사람 사는 건 마땅히 그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네요.

신-그렇죠.

김-전 토크콘서트 할 때도 선생님 말씀 많이 인용해 씁니다. 허락도 안받고 말이죠. 

신-고맙죠. 그래주면.

김-지금도 제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는 것은 위층에서 뛰는 아이 발자국 소리가 시끄럽거든 올라가서 그 아이 얼굴을 봐라. 그리고 아이스케키 하나라도 나눠 먹어라. 그러면 그 아이의 발자국 소리는 덜 시끄럽다. 그래서 아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것 같아요. 서로 알아야 저쪽의 언어로도 우리 정서를 표현해 줄 수 있는건데. 우린 의견의 소탕을 하고 있잖아요. 소탕이 아니라 소통을 시도해야 하는데.

신-난 토크콘서트 가서 감동받았어요. 내가 하지 못하는 엄청난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구나 싶었어요. 학교 선생이라 논리적이고 개념적인 언어를 벗어나기 힘든데 제동씨는 구애안받고 즐겁고 깊이 있게 소통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토크콘서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선생님하고 전에 했던 것처럼 전국에서 한번 같이 하시죠. 

신-좋죠. 필요하면 더 숲 트리오도 같이하죠. 

김-좋아요. 제가 지금 받는 학점으로 봐선 앞으로 학교에 2년 정도 더 다닐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한번 해 보시죠. 사실 저는 개념적으로 고급 단어는 몰라서 못 쓰는 겁니다. 전에도 선생님과 함게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라는 강연회를 했잖아요. 그게 많이 화제가 됐어요. 

신-그것과 관련돼 꾸준히 이야기하는 게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라는 붓글씨 액자를 찬조출품했는데 누가 그러더라구요. 여럿이 함께는 방법론이고 어디로 지향할까 하는 가치 지향성이 없다고 지적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아래에 붓으로 작게 썼어요.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등 뒤에 생겨난다고. 계몽주의 이후에 진리는 절대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어요. 우리 자신의 주체적 결정권이 없으면서 뭔가 밖에서 와야한다는 것은 우리 역사의 아픈 잔재라고요. 그래서 여럿이 결정해야 돼요. 함께 고민하면 됩니다. 

김-지향점, 목표점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뜻을 모아 가면 그 뒤가 길이다 이거네요. 

신-그렇죠. 역사는 수많은 사건이 부딪히며 흘러가는거지, 목표를 정해놓고 도로의 생리로 가는 것이 아니거든요. 

김-역사의 결정권자는 언제나 민중이라는 거네요. 전 그 말씀도 기억나요. 모든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은 식민주의적 사관이다. 1차적원인은 네 안에서 찾아라. 너의 결정에 의해 일어난 일 아니겠느냐. 그런데 사실 가혹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신-사실은 자기 성찰이 철저해야 해요. 그래서 글씨 중에 춘풍추상이라는 글씨가 있어요. 다른 사람 대할 때는 춘풍처럼 부드럽게, 자기자신에게는 추상처럼 엄격하게 하자는.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반대로 하지요. 

김-그래야 함께 가는 길이 생기네요. 그래도 스스로를 위로해줘야 할 날도 필요하잖아요. 요즘 같은 때는 선생님 강의 들으면서 소와 양을 바꾸는 이유. 맹자 이야기 말이에요. 
소는 안되고 양은 안되냐, 봤더니 못잡겠다, 아이고 개짖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던데 내가 귀여워하는 그집개더라. 그러니까 그 다음부터 개짖는 소리가 안들리더라는 거죠.

신-요즘 들어 그런 고사가 떠오르는 건 구제역 때문인것 같아요. 지나가는 소를 그냥만 봐도 땅에 묻지 못할 것 같아요. 제물로 쓸 때도 뭔가가 나오는데 다른 건 몰라도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심각한 내상을 입고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집단적 허위의식에 갇혀서 하나하나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어요. 동물 뿐 아니라 사람들까지 그렇게 하고 있잖아요. 전 구제역 걸린 가축이 산채로 매몰되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 사회의 다른 인간적인 가치와 가능성도 매몰되고 있지 않나 하는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김-우리 시대를 짓누르는 것, 빨리 깨야 하는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신-배타적인 자기를 경쟁력있게 만드는 것이죠. 그게 물질적 성과를 획득하는 경쟁력을 키우는 거예요. 현재 그것이 우리 사회의 가본 가치가 돼 있잖아요. 나라도 그런 포맷으로 만들고 있고. 그런데 많은 사람은 살면서 진짜 소중한 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거든요. 바꾸지 못할 뿐이죠. 

김-과연 될까 싶은 두려움에 포기가 되는거죠. 그런데 선생님, 말씀 좀 낮춰주세요.

신-제가 아직도 감옥 모드인게 맞아요. 남한테도 뭘 잘 시키지 못하겠고. 

신-요즘 학생들 보면 너무 힘들잖아요. 그 어느때보다 정말 공부를 많이해요.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하고 단군이래 가장 실력 있는데 제일 힘들게 살고 있잖아요. 학교에 있으면서 느끼는 아픔이... 3월이 되면 참 좋아요. 개나리 필 때 새내기들이 캠퍼스에서 웃으면 개나리도 웃는 것 같은데 그 바탕에 아픔이 깔려 있으니까. 학교에 앉아 있는 것이 힘들어요. 

김-연평도 포격사건 일어나고 얼마 안됐을 거예요. 입시치른 고3 수험생들에게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그날 따
라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모습이 콩 볶는 듯 생명력이 느껴지는데 문득 미안하고 죄책감이 드는 것이... 앞으로 저 아이들을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충분히 이해돼요. 나도 아파트에서 초등학생이나 유치원 어린이들이 뛰어가는 것을 보면서 저 아이들이 부딪혀야 할, 수 없이 많은 힘든상황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요.

김-그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할 사람, 너희들 잘못이 아니다고 이야기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어요. 그게 안타까워요. 

신-맞아요. 책임은 기성세대에 있지요. 어느 역사적 시기를 보더라도 젊은 사람들 버릇 없다, 말세다 이런 이야기가 없는 때가 없었어요. 여하튼 젊은이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때인데 이들이 개인적 대응만 하고 있잖아요. 자기 경쟁력, 실력을 높이는데 매진하는데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의자가 4개밖에 없는데 10명이 경쟁하면 그중 6명은 반드시 못 앉아요. 이럴 경우 개인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방법인가 하는 반문을 해봐요. 

김-기성세대가 함께 노력해서 의자의 숫자를 늘리거나 한 의자에 두세명씩 앉기, 아니면 다 치우고 땅바닥에 앉기 등의 방법이 고민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 어릴 땐 왕따문제 이런게 없었던 것 같아요. 약하고 힘없는 아이들도 깍두기라고 해서 끼워주고 같이 놀았거든요.

신-그렇죠. 그런데 지금처럼  치열한 경쟁 구조가 있는 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왕따가 없어지기는 힘들어요.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가 그런거죠. 자기가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약자를 왕따시키는데 가담하거든요. 교도소에도 감방마다 교도소말로 버릇없고 싸가지없는 사람이 다 있어요. 그 사람이 출소하는 날만 기다리죠. 그리고 출소하면 앓던 이 빠진 듯 한데 잠시예요. 또 생기는거지. 몇사람의 싸가지를 내보내고 나서 우리가 깨닫는거죠. 그에게 결함이 없진 않지만 이 억압구조가 그런 왕따를 필요로 하는구나. 그래서 우리 방에서는 왕따를 만들지 말자는 논의를 한 적이 있어요. 사회문제의 책임을 모두 그 사람에게 돌리는거죠. 신자유주의적 패권논리가 바탕에 깔린 상태에서 불안함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을 반성해야죠. 

김-피라냐떼엑 먹잇감을 던져줘서 우루루 몰리게 하는 거네요. 그런 먹잇감이 없으면 언제 자기한테 피라냐가 달려들지 모를 불안함 때문에.

신-그렇죠. 물론 우리가 등산할 때 가장 짧은 시간안에 갈 수 있는 코스는 있어요. 그런데 그 길을 가려면 노약자나 어린이는 빼놓고 가야해요. 그러면 물어봐야죠. 오늘 우리의 등산 목표가 뭔가 하고. 빨리 가서 기네스 북에 남기기 위함인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인지, 아니면 이 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이 목적인지. 우리 삶도 마찬가지죠. 

김-전 산에 업히러 간다고 하는데 가장 즐거웠던 등산은 꼭대기 가는 것도 좋지만 중턱에서 계곡에 발 담그고 막거리 한잔 먹는 거예요.

신-다 힘들어요. 힘들지 않은 사람 없어요. 제가 그림으로 자주 보여주는 것 중에 피라미드의 제일 꼭대기만 금빛이고 나머지는 붕괴되어가는 그림이 있어요. 경제성장이든 우리 삶이든 많은 사람이 배제되고 고통받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거든요. 크게 보면 이웃, 함께 동시대를 사는 사람과의 공감. 이게 사회의 본질인데 그 점을 우리가 배제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게 마음이 아픈거죠. 

김-선생님 책을 읽어보면 한편의 동화같아요. 전 어린왕자 읽는 느낌도 들었구요. 특히 천국의 추억 같은 책 말예요. 그런데 다 읽고 책을 덮고나면 섬뜩한 생각도 들어요. 이 시대가 이 예쁜 이야기를 이렇게 섬뜩한 이야기로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죠. 아이들과 어떤 사람의 예쁜 이야기를 간첩이야기로 몰아붙였다는 것 말예요.

신-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이 처음 나왔을 때 통혁당 무기수로 복역하고 나온 사람의 책이라고 하기엔 전투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었어요. 전 오히려 부드럽고 친근한 목소리가 훨씬 설득력있고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렵게 쓰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전 그래서 글쓰는게 참 힘들어요. 단어 하나 고를 때도 이 단어가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이 단어에서 독자들이 어떤 연상세계를 이끌어낼지 생각하고 선택해야 하거든요. 일상 대화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배려가 필요해요. 

김-제가 전에 새내기들 데리고 학교 뒷산에가서 막거리를 6시간 동안 마셨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혼났는데, 그때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서 자유라는게 자기의 이유로 사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제 나름대로 가슴 치는 이유가 있었어요. 그 말씀을 수많은 청춘들에게도 해주세요. 

신-자기 주체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이 근대 문맥에 갇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타의에 의한 포획의 기제는 굉장히 발전해 있어요. 매스컴 영상에 이르기까지 개인을 포획해내는 기제가 말입니다. 이 속에서 자기의 이유를 갖는 것이 어렵습니다. 자기는 자기 이유라 생각했는데 어느날 다른 사람에게 포획돼 있는 자기를 발견하거든요. 반 에덴이 쓴 동화이야기를 자주 예화로 들어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깊숲에 있는 버섯을 가리키며 이게 독버섯이라고 말해요. 그런데 그 독버섯이 충격을 받아 쓰러집니다. 옆에 있던 다른 친구 버섯이 위로하는 말을 들어보세요.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식탁에 오를 수 없다, 먹을 수 없다는 사람들의 논리일 뿐인데 우리가 왜 그 논리를 받아들여야 하는거지? 
우리가 자신의 인간적인 이유를 받아들이는 것은 신자유주의 가치와 질서가 포획하는 이 환경에서 투철한 자기 이유를 갖는 것이 필요하합니다. 

김-자기 이유를 가지면 개인은 어떤게 달라지나요


신-견딜 수 있고 자기 삶을 인간적으로 살 수 있지요. 자기 행위에 의한 선택이라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거죠.

김-선생님 말씀 들으면 부처님 말씀 듣는 것 같아요.

신-그게 문제이긴 해요. 나도 내가 이야기하는 만큼 살고 있지 못하다는 반성이 있습니다. 

김-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은 아니에요. 자기 이유로 사는 것. 그건 각자가 모여 손잡고 사는거죠. 

신-그렇죠. 자기를 배타적 자기로 갖지 말고 자기가 맺고 있는 굉장히 광범한 관계성,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자꾸 비교하는 세상이잖아요. 줄 세우고 아이들을 비교하고. 비교라는 건 부문의 차이를 확대하고 차별성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쓰신 걸 봤는데. 

신-그렇죠. 엄친아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개인을 다른 개인과 비교해서 판단하려는게 사회적 구조죠. 다른 사람과의 관계성. 그래서 우리 학교는 더불어 사는 펠로쉽을 강조하는데 그런 점을 깨닫는 것도 중요합니다. 

김-비교보다는 연대, 관계의 중요성을 말씀하는 거네요.

신-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이죠. 그런 점에서 젊은 사람들이 뛰어넘을 객관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봐요. 트위터, 소셜네트워크, 인터넷이라고 하는 게 온라인의 인간관계가 훨씬 깊이가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광범한 넓이와 속도에서는 사회변화의 유려한 토대가 된다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의 유연성, 과거 우리가 가졌던 공간 공동체, 열연공동체에서 젊은이가 개인주의라고 하지만 오히려 변화된 상황에서 소셜 네트워크는 훨씬 발전하고 자기의 개념을 넓혀주고 다른 사람과의 연대성을 높이고 사회적 역량을 강화하는 객관적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김-젊은 세대, 파릇파릇한 청춘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신-요즘 학생들은 우리세대 보다 훨씬 자유로워요. 스티브잡스와 의상에서 차이가 없고, 소유한 사람에 대해 크게 주눅들지도 않죠. 자기를 자유롭게 오픈하고 여러가지 가능성을 갖고 있어요. 졸업하면 취업이 어렵고 사회적으로 배제되기도 하고 어려움이 많은데 한편으로는 노마드의 정서를 키우라고 하고 싶어요. 파울루 코엘료의 연금술사 이야기를 종종 해요. 가죽 물푸대 하나와 양떼, 그리고 담요한장과 책 한권. 젊은이들의 정서는 상당부분 노마드의 정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 행복한 삶을 꾸려가기 바래요. 모든 방황과 고뇌도 엄청난 교훈이고 그 자체가 황금의 순간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자체를 바탕에 깔고 즐겁게 인생을 헤쳐나가는 것이 필요해요.

김-전에 졸업식때 다른 교수님도 그러셨어요. 가다가 마음껏 넘어지고 마음껏 시도하라고. 등 뒤에 우리가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예요. 

신-제 경우도 20년 감옥살이 힘들잖아요. 그런데 그 시절을 나의 대학시절이라고 술회하듯이 방황과 고뇌도 그 자체로 엄청난 의미가 있어요. 바로 그 점을 깨닫기만 하면 인생은 결코 손해가 아니지요. 


김-선생님이 감옥 독방에 갇혀 계실 때 햇살이 점 하나에서 점점 커져서 신문지만해졌다고 하시면서, 그것, 그 햇살이 없었으면 나도 숨을 끊었을지 모른다고 하셨잖아요. 

신-그래요. 그때 느낀 것은 이 햇볕만으로도, 이 한점의 햇살만으로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게 손해는 아니구나, 나를 기다리는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인생은 선물이다고 생각했어요

김-선생님의 말씀이 제 삶에 햇볕같은 말씀이었어요.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신-길게 봐야죠. 사회변화는 국가 권력을 탈취하면 확실하게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공유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 예로 나치스 독일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러시아가 있는데 그 사회는 변화에 실패했죠. 그건 국가 권력의 탈취나 일회적인 실천에서 사회변혁이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죠. 꾸준히 부단하게 그 사회에 참여해서 소통하고 노력해야죠.

김-창문 밖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땅을 밟는 것이네요. 

전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아요. 인터뷰하러 온건데 계속 뭔가 인생 상담만 늘어놓고 있고. 

신-인생은 공부가 맞아요. 깨닫는거죠. 가져갈 게 뭐가 있겠어요. 

김-저는 선생님 말씀 들으면서 선생님도 죽을 결심을 한 적이 있다고 하신게 가장 위안이 됐어요. 저런 선생님도 저런 생각을 할 수 있구나 하는 것, 나도 내가 말한만큼 못산다고 하신 그런 말씀 말예요. 위로와 위안이 됐어요. 

신-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아주 다양한 수위의 수많은 실천이 모여야해요. 오케스트라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다양한 노력이 결집되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