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학기 말 중국 유학생들 면담 때 일이다. 서투르지만 꽤 열심히 공부한 흔적의 한국말로 중국 학생들은 학부 졸업 후에도 계속 대학원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석·박사를 마치고 중국에 돌아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해 가르치고 싶단다. 이렇듯 절반의 학생들은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고 했고, 절반은 중국에서 창업하고 싶다고 했다. 흥미롭게도 그들 모두의 공통된 답변은 한국 스타일의 즐거움과 한국 문화에 대한 동경이 유학의 이유였다고 했다.
세종대학교에서 공부하는 중국 유학생이 전체 재학생의 10%를 상회한다. 중국 정부가 사드 때문에 1년 이상 우리를 힘들게 하는 한한령에도 유학생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그들을 한국 대학으로 불러오는 것은 한국 드라마와 K팝이다.
학생들과 함께 워크숍이나 MT 장소로 자주 찾는 곳이 남이섬이다. 남이섬은 ‘남이공화국’이라는 스토리텔링으로 채워진 동화적 판타지의 북한강 작은 섬이다. 본래 소규모 골프장이었던 곳이 상권을 잃은 유흥단지로 퇴색되다 문화예술인들의 레지던스로 활용되던 중 제기된 동화작가의 아이디어가 현실이 된 곳이다.
몇 년 전 1박2일 워크숍을 마치고 새벽에 먼저 섬을 빠져나오던 필자는 새벽 6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북한강 첫 배를 타고 놀라운 장관을 보게 되었다. 혼자 타고 나가던 첫 배에서 가평선착장에 가득한 관광버스와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젊은 여성팬들이 서울에서 새벽 4시부터 출발해 대거 도착해 있는 장면을 목도하게 된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대표적 장면이 남이섬 데이트인데, 그 배경이 새벽 물안개 피어오르는 북한강가 남이섬 산책길이었다. 그 시간에 그 장소를 가고 싶은 아시아의 팬들은 새벽길을 달려 활짝 웃는 얼굴로 첫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정권의 문화정책 브랜드 중에 ‘한류’는 확장시켜야 할 ‘문화영토’로 규정되었다. 본래 한류는 국내에서 제기된 개념이 아니다.
한국 드라마의 대가족제도가 따뜻한 정서로 스토리에 반영된 것을 부러워하며 중국 관객이 한국 드라마에 빠져드는 현상을 중국 기자가 표현한 데서 회자된 단어라고 한다. 한국 드라마와 K팝이 전 세계의 팬덤을 불러일으키며 드라마에 등장하는 의류, 화장품, 음식, 캐릭터, 자동차, 전자제품 등도 함께 매출신장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현상이 문화영토를 확장하는 단편적 개념으로 정책화될 때 나타날 반대급부이다. 일본의 혐한류와 중국의 한한령으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 대상의 감정적 반발은 결국 항상 우리만을 생각하는 일방향적 정서와 정책에 그 원인이 있음을 우선 이해해야 한다. 한류는 문화영토로 규정하고 공격적인 정책으로 확장시켜야 할 지도가 아니다. 한류는 전 세계 인류에게 제시할 창의적 이야기의 방향이다.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드라마, 영화, 만화, 게임으로 만들고 관객은 환호와 동경의 팬덤으로 화답하며, 그 힘으로 스타가 생기고 더 흥미로운 기획들이 우리의 여가를 채워갈 때 삶은 문화로 풍요로워진다.
한류는 이렇게 우리가 문화로 향유하는 이야기와 과정을 인류가 공유하며, 세계 곳곳의 자유로운 문화적 발상이 한류와 같은 과정으로 만들어지고 향유되는 경험을 함께 누리게 해주는 방향이어야 한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우리의 자유로움과 공정한 문화만들기의 한류를 배우고 그로부터 인류의 여가를 채워주는 풍요로움으로 그들의 창의적인 문화 또한 우리와 공유해 갈 때 한류는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기억될 수 있다. 자랑스러워할 문화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어야 한다. 함께할 수 있는 공유의 자신감이 모두를 자랑스러움으로 불러들인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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