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쪽한 콘텐츠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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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한창완의 문화로 내일만들기

뾰쪽한 콘텐츠 만들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연인끼리 대화한 내용을 캡처해 보내주면 두 사람의 현재 연애 진행 수준을 알려주고, 앞으로의 연애 방법에 대해 자문해주는 앱이 있단다. 그 앱을 운영하는 실무자에 따르면, 이별을 경험하고 잊지 못하는 여성들의 많은 사례 중, 실제 가장 잊지 못하는 남성의 유형은 이렇다. 외모나 경제조건, 학벌, 집안 등 조건보다 자신을 가장 많이 웃겨준 유머러스한 남자. 대체하기 어려운 사람일수록 더 이별이 힘들다는 것! 유머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코드도 있지만, 자신에게만 쉽게 이해되는 코드가 있기 마련이다. 더 잘생기고 더 조건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지만, 자신에게 맞춤형으로 즐거움을 주던 그 유머러스함을 다시 만나기는 어렵다는 게 이유다.  

 

미국에서 인기있는 여배우 A와 B의 비교 사례다. A는 모든 세대에서 균형감있게 좋아하는 팬덤을 지니고, B는 세대마다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뉘는 표준편차가 큰 팬덤을 지녔다. 그런데, 두 여배우가 등장하는 유료 콘텐츠 결제 결과를 보면 여배우 B가 상대적으로 높은 매출을 보인단다. 결국 모두가 좋아하는 배우는 호감을 가질 뿐 유료 결제라는 적극적 소비로 연결되기가 쉽지 않고, 호불호가 명확한 팬덤은 마니아층의 적극적인 팬덤이 유료 결제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뾰쪽한 콘텐츠를 만들자!’ 올해로 4번째인, 미디어오늘이 주관한 ‘저널리즘의 미래 콘퍼런스: 도전과 혁신, 저널리즘 딥 다이브’ 3일 동안 56가지 강의에서 얻은 여러 가지 유익한 팁 중의 하나다. 표준편차가 큰, 그래서 좋아하면 진짜 좋아하는 소비자들을 만들어야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된다는 이러한 가설은 요즘처럼 인구절벽이 실제 체험되는 현실에서 더 유용한 가이드가 된다.

 

버티컬 미디어로 표방되는 실험들이 신기하다. 물론 아직 유효한 수익모델 검증은 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더 섬세한 마케팅과 비즈니스 모델의 구축이 필요하겠지만, 나름대로 신선한 시장 세분화 기획과 맞춤형 콘텐츠로 특화시키려는 노력들을 하는 콘텐츠 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20대 이상 여성 회사원을 위한 자산관리 콘텐츠 뉴스레터, 월 1만원에 매일 아침 에세이를 보내주는 읽을거리 제공 서비스, 마시는 음료수와 주류의 정보만을 특화해서 시작한 지역특화 콘텐츠 서비스, 국내 정치계 최고 의사결정권자 500명만을 대상으로 실시간 해외뉴스 요약 서비스 제공 및 의제 설정 자문 미디어, 골목과 동네의 자잘한 정보와 소소한 이야기로 특화한 로컬저널리즘과 소셜커뮤니케이션, 아예 처음부터 B급 콘텐츠로 포지셔닝을 지정하고 돌격하는 사이다 미디어 서비스, 가짜뉴스를 실시간으로 점검해주는 팩트체크 서비스, 인공지능 스피커에 맞춤형 제공 오디오 콘텐츠의 실험 등 콘텐츠의 고정관념과 익숙해진 관성에 밀려 살아가는 일상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시도들이다.

 

항상 새 학기가 되면 필자와 같이 콘텐츠 관련 전공교수들은 강의 준비가 어렵다. 콘텐츠 비즈니스의 사례와 전략들이 빛의 속도로 진화하고 융합되기 때문에,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학생들이 모두 익히 알고 있는 현상을 자신만 신기하게 설명하는 학문의 미라가 되기 쉽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사례를 공부하고 탐구한다. 이번 콘퍼런스의 다양한 시도들은 이제 연간 신생아 30만명 선까지 위협당하는 국내 인구절벽 시대에 콘텐츠가 어떠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제4차 산업혁명은 첨단기술과 다양한 플랫폼 기기들이 등장해서 어려운 것이 아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새로운 상상력으로 대체해야 하고,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응용력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주위의 다양한 실험을 고양시키고, 그들에게 규제를 재조정하고 SOC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희망의 정책이 함께 가야 한다. 뾰쪽한 콘텐츠는 섬세한 정책에서 더 빛의 속도로 진화할 수 있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