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설립 초기에 만화를 학문으로 대학에서 가르친다는 발상에 모든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질 때, 이를 맞춤형 도제식으로 바꾼 이두호, 이현세 교수의 실전강의가 지금의 웹툰작가를 양성해냈다. 그렇게 젊은 작가들과 호흡을 함께해온 이현세 교수가 지난주부터 유화공부를 시작했다. 학부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와서 지난 학기 우리 학과 박사학위를 받은 새내기 강사에게 먼저 다가가 유화그리기 개인지도를 부탁하면서 유럽의 유화를 모사하는 첫 단계 스터디를 시작했다. 은퇴를 앞둔 원로만화가는 올해 초까지도 포털사이트 웹툰 앱에 여전히 매주 2차례 연재를 하고, 학습만화 시리즈를 기획 제작하는 등 지치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었는데, 이제는 연재를 마감하자마자 유화를 시작한다. 새로운 표현과 재료에 대한 그의 호기심은 또 다른 목표를 향하고 있다.
몇 주 전 서울대학교 공대에서 바이오테크놀로지(BT)를 연구하는 은퇴를 앞둔 저명한 교수님이 진지하게 부탁을 해왔다.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거다. 자신이 공부하고 대중들에게 강의하며 전달하고 싶었던 다양한 BT의 지식들이 보다 쉽게 이해되도록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적 표현을 직접 해보겠다며, 평생 그림 한번 시도하지 못했던 본인의 삶에 새로운 도전이라고 했다.
작금의 시니어들은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한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자신의 일들을 업그레이드시키려는 창의적 발상에 주목한다. 그리고 다시 지금을 돌아본다.
갑자기 면담을 요청한 우리 학과 1학년 새내기 여학생이 자신의 고민을 풀어놓는다. 자신이 정말 배우고 싶었던 학과에 입학해서 제대로 만화를 공부하려고 하는데 1학년 과목들이 기대하던 수준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2학년과 3학년 수업을 청강하기도 하고, 외부 전문기관들의 특강도 챙겨 듣는다고 한다. 동기들과 이러한 고민을 나누는데 답답하단다. 열심히 뭔가를 해보려는 열정이 놀랍기도 하지만, 이제 대학공부를 시작한 새내기가 자신의 실습과목 강사와 교수들의 강의방식까지 조목조목 비판하며 강의의 실효성과 평가까지도 재단하는 모습에 몹시 당황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를 두고 순간 멈칫한 나는 30년 전 내가 대학 새내기였을 때를 회상했다. 당시 나도 그랬다. 교양과목 위주의 1학년 수업이 맘에 들지 않았고, 당장 영화촬영을 하고 드라마를 제작해야 하는 실무수업에 뛰어들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답답해 동기들과 스터디를 하고, 프랑스문화원에서 하는 영화특강을 듣고, 컴퓨터학원에서 코딩언어를 혼자 공부하고, 독일문화원의 독일어코스를 등록하며, 연극동아리에서 연기에 뛰어들던 그런 열정이 있었다. 지나 보니 배움은 때가 있었고, 열정은 그 과정의 갈증이었다.
넷플릭스에는 드라마와 영화 외에도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있다. <익스플레인, 세계를 해설하다>는 의제로 떠오르는 문화적 개념과 진화하는 인류사의 새로운 모습들을 다양하게 소개한다. 그중 반갑게 찾아본 주제가 <케이팝의 모든 것>이었다. 비틀스를 능가하는 BTS의 세계적 팬덤현상을 90년대 초반 ‘서태지와 아이들’의 혁신으로부터 찾아내며, 체계화된 한국 대형 기획사의 모험적인 시행착오가 오늘의 케이팝이라는 성과를 이루어냈다고 해석한다. 케이팝은 한국이 지니고 있는 역동성과 목표를 향한 강한 추진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는 성취감의 문화적 융합이란다.
우리에게는 주니어와 시니어 모두 타고난 열정이 존재한다. 그래서 문화는 늘 호기심과 도전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지난한 여름을 함께 이기며 동지애가 생겨버린 사람들과 다시 새로운 일을 열정으로 만들어야 할 가을이다. 내 안에 열정이 있는데도 모른 체하면 안 되는 그런 계절이 시작된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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