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백진희(21)는 데뷔 이래 가장 뜨겁다. 영화 <반두비>에서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와 우정을 나누는 여고생 역을 맡아 영화제 스타가 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대중적이지는 않았다. 그녀가 뜨거운 주목을 받는 건 MBC 시트콤 <하이킥!짧은 다리의 역습> 때문이고, ‘88만원 세대’를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으로 묘사한 덕분이다.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백진희
백진희는 취업준비생이다. 취업은 안 되는데 학자금 대출금은 어김없이 갚아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하니 ‘88만원 세대’가 됐다. 항문이 찢어진 상처 때문에 걷지도 못하지만 아르바이트는 가야 한다. 하루라도 안 가면 ‘잘리니까’. 젊은 시청자들은 표리부동(表裏不同)하는 기성세대(안내상)에게 “너나 잘하세요”라고 일갈하는 백진희에게 열광했다. 그들의 마음을 대변했으므로….
최근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청년 실업은 드라마의 중요한 소재다. 9월 29일 종영한 SBS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에서는 최강희가 연기한 노은설이 그랬다. 백번에 가까운 면접을 봤지만 삼류대 출신에다 별다른 ‘스펙’이 없어 번번이 낙방한다. 올 여름 방송한 KBS2 <동안미녀>의 이소영은 나이(34살)가 많아 취업에 실패했다. ‘동안’을 무기로, 동생의 주민등록증을 도용해 겨우 취업에 성공한다.
두 작품 모두 배우들의 호연과 현실적인 소재로 사회적 공감을 샀다. 15%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성공한 드라마로 꼽힌다.
‘88만원 세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는 앞으로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11월 7일부터 방송되는 KBS1 새 저녁일일극 <당신뿐이야>는 주인공 이름을 아예 ‘기운찬’으로 지었다. 이 드라마는 고졸 출신 88만원 세대의 남자 주인공과 남부러울 것 없는 부잣집 외동딸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기운찬(서준영)은 가진 것이라곤 건강한 몸과 정신상태밖에 없는 임전무퇴, 칠전팔기의 정신을 가진 ‘88만원 세대’.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꿈을 향해 전진한다.
SBS ‘보스를 지켜라’ 최강희(왼쪽), KBS ‘동안미녀’ 장나라
12월부터 방송되는 MBC 새 일일드라마 <오늘만 같아라>는 삶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부모 세대와 취업과 등록금 등의 고민을 안고 사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가족드라마다. 아나운서를 꿈꾸지만 사투리 때문에 포기하고 경찰시험을 준비 중인 공무원 준비생,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 등 비정규직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드라마 속 ‘88만원 세대’는 고단한 상황에 있으면서도 씩씩하다. 이들의 ‘해피엔딩’도 희망적인 메시지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성공은 일의 그것으로만 완성되지는 않았다. <동안미녀>의 이소영도, <보스를 지켜라>의 노은설도 재벌가의 ‘키다리 아저씨’를 만나고 나서야 해피엔딩을 맞았다.
<하이킥!…>의 백진희가 고시원 이웃인 고영욱과 장조림 때문에 티격태격할 때는 불안하지 않았는데, 의사인 윤계상과 자주 마주치는 건 왠지 못 미덥다. <당신 뿐이야> 기운찬의 상대역이 부잣집 외동딸이라는 것도 스포일러 같아 불안하다. 윤계상이라는 키다리 아저씨가 백조 생활로 고군분투하는 백진희를 감싸주는 건 여성시청자로서는 바라는 일이다. 하지만 경제여건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가 있는데 ‘취집(취업+시집)’을 논하는 건 ‘88만원 세대’에 대한 배반 아닐까.
<박은경 경향신문 엔터테인먼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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