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경 기자
‘밤 너무 많이 새운다. 언제 누가 먼저 쓰러지나 내기하는 것 같다. 처음으로 공항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SBS 수목드라마 <싸인>의 주인공 박신양이 일본 촬영 중 부상을 입고 돌아오면서 18일 오전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문구다. 그의 짧은 글에서 늘 밤을 새우는 드라마 촬영현장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드라마 촬영현장의 열악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연말 KBS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배우 문근영은 “한 작품이 단순히 시청률만으로 평가받을 수는 없다.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나 열악하다”고 발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SBS드라마 <대물>로 이 방송사의 연기대상을 받은 고현정도 촬영현장의 열악한 환경이 개선돼야 ‘한류 드라마’ 열풍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한 적도 있다.
경향신문DB
큰 인기를 얻으며 종영한 <시크릿 가든>의 하지원은 최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0분 자고, 30분 운동하고, 30분 샤워하고 (촬영장에) 나왔다”고 했다. 이 드라마는 마지막회 촬영분을 방송 당일 오후 5시나 돼서 끝낼 수 있었다고 했다. 촬영을 끝내고 편집까지 마쳐서 밤 10시 방영시간에 맞추기 위해 배우와 스태프들의 조바심은 극에 달했을 것이다. 결국 그 여파로 스태프의 목소리가 드라마에 삽입되는 방송사고가 나기도 했다.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강추위 때문에 다른 드라마 촬영현장도 그야말로 전쟁터라는 전언이다. 얇은 블라우스나 셔츠를 입고 추워도 춥지 않은 척 연기해야 하는 배우는 물론이고, 단 한 장면을 위해 하루종일 대기하는 단역들의 고충도 배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졸음’ ‘추위’와 싸우는 시베리아 벌판의 난민 신세라는 게 현장의 전언이다.
우리 드라마 촬영현장이 이처럼 열악한 것은 우선 드라마를 둘러싼 방송의 대내외적 환경에서 기인한다. 현재 드라마 제작은 드라마 프로덕션이 방송3사와의 계약에 의해 납품하는 형태다. 방송사는 한 푼이라도 적게 주고 싶어하고, 드라마 외주제작사들은 한 푼이라도 절약해서 이윤을 남겨야 한다. 또 방송날짜에 임박해 방송사와 드라마 제작사가 계약을 체결하기에 사전 제작은 꿈도 못꾸는 형편이다.
피말리는 시청률 전쟁, 시간과의 전쟁, 날씨와의 싸움, 방송사와의 제작비 다툼. 그런 환경 속에서 용케도 ‘한류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제작진과 배우들은 한 마디로 초인이 아닐 수 없다.
한 개그맨의 개그멘트를 빌려 얘기하자면 “이러다가 현빈이 과로로 쓰러져서 입원을 하고, 소녀팬들이 방송사 앞에서 피켓시위를 해야, 하 이런 게 아니었구나, 하면서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겠다고 난리부르스를 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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