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박꾼의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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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두 도박꾼의 ‘죄와 벌’

강수진 기자
 
상습도박혐의로 외국에서 체류해오던 방송인 신정환이 19일 떠들썩하게 입국했다. 같은 날 감사원은 근무시간에 상습적으로 도박을 해온 공직자 370명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공무원 중에는 공정거래위의 차관보급 고위 간부도 포함돼 있고, 지난 3년10개월간 누적 베팅금이 100억원대에 이르는 공공기관의 본부장급 간부도 있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이번에 적발된 공무원들은 평일 강원랜드 출입횟수가 60회 이상인 자들로, 이들 중 10여명은 현금 3000만원을 소지해야 출입이 가능한 VIP룸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죄의 무게로 따지면 필리핀 세부의 카지노에서 도박빚 1억8000여만원을 갚지 못해 현지에 억류됐던 신정환보다 근무시간에 강원도까지 가서 버젓이 고액도박을 한 고위공무원의 죄가 더 엄중하다.
신정환에게 적용될 혐의는 외환관리법 및 여권법 위반 정도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들의 도박으로 인한 근무태만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더군다나 한 고위공무원은 봉급생활자가 엄두도 못낼 100억원대의 베팅을 했다니 이는 뇌물로 받은 블랙머니일 가능성이 크다.

경향신문DB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스컴의 시선은 신정환에게만 집중됐다. 엉뚱하게도 5개월간의 도피 끝에 그가 입고 들어온 시가 300만원 가량의 명품옷까지 도마에 올랐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이에 대해 “남이 뭘 입든 왜 자기들이 기분 나쁜지. 도박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범죄’가 아니라 자기에게 해를 끼치는 ‘질병’이죠. 신정환이 ‘사과’를 해야 한다면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한다”고 트위터에 의견을 올리기도 했다.

물론 신정환의 죄가 가벼우니 용서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정작 분노해야 할 대상은 신정환의 ‘명품의상’이 아니라, 국민 세금을 갉아먹은 ‘좀비공무원’이 아닐까.
미디어 역시 신정환을 취재하러 공항으로 몰려갈게 아니라 감사원으로 몰려가서 고위공무원 명단을 입수해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한다. 또 감사원은 감사가 끝나는 대로 이들 공무원들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여 한 치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철저하게 파헤쳐야 할 것이다.
진중권의 말처럼 신정환의 도박은 ‘자신에게 해를 끼친 질병’이지만 공무원들의 그것은 ‘국민에게 해를 끼친 범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