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미화된 드라마 속 ‘재벌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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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너무 미화된 드라마 속 ‘재벌 2세’

박주연 기자

SBS 주말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25% 안팎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백화점 사장이자 재벌 2세인 김주원(현빈)과 이틀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난한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의 티격태격 사랑을 그린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이다.
MBC 월화드라마 <역전의 여왕>에도 맞벌이 기혼여성을 응원하고 사랑하는 재벌2세 구용식(박시후)이 남자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오는 5일 첫 방송되는 MBC 새 수목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의 남자주인공 역시 재벌3세 박해영(송승헌)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역전의 여왕’, ‘마이 프린세스’, ‘시크릿 가든’.


재벌2세나 3세가 드라마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래전부터 그들은 ‘백마탄 왕자님’으로 등장했다. 그렇다고 해도 요즘 일련의 트렌디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재벌 2, 3세에 대한 묘사는 미화의 정도가 지나치다. 돈 많고 외모가 잘생긴 것은 기본인 데다 착하고 능력까지 겸비한 ‘완벽남’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크릿 가든>의 현빈은 여자의 마음을 얻으려고 액션스쿨까지 다니는 등 놀것 다 노는 인물이다. <역전의 여왕> 박시후는 군 제대후 이제 막 구조본 본부장으로 온 사회 초년병이다. 그럼에도 30대 초반인 이들의 아이디어와 경영능력은 공통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천부적’이다. 회사에서 잘릴 위기에 처한 동료를 보며 마음 아파하는 등 따뜻한 심성과 호탕한 성격까지 지녔다.

반면 <시크릿 가든>의 박봉호(이병준), <역전의 여왕>의 한송이(하유미) 등 수십년간 회사에 투신하며 임원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뒤로 꼼수나 쓰는 형편없는 인물로 그리고 있다. 그 결과 마치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영권을 이어받는 것은 정의이고, 핏줄이 아닌 타인이 경영권에 대한 야심을 품는 것은 범죄인 것처럼 암시한다.

그러나 이 같은 설정은 그동안 한국의 재벌2세들이 보여준 실상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 불과 한달 전 재벌2세인 SK가의 최철원씨는 ‘맷값폭행’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고, 잇따라 금호가의 박모씨도 직원을 폭행해 전치 5주의 상처를 입힌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외에도 재벌2세들이 망나니 같은 짓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은 상당수에 이른다.
대를 이어 경영권을 쥔 재벌2세나 3세들이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이 탁월한 경영능력을 입증한 사례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2000년대 들어 우리 사회의 ‘부자 만능’ 인식은 더 강화됐다. 부자는 곧 착한 것이고 능력있는 것이며 부자와 결혼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왜곡된 가치관에 TV드라마가 더욱 기름을 붓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