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은 사랑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무릇 신분이 높고 돈이 많은 남자는 오만하기 십상이다. 이 오만은 지적이고 예민한 감수성의 여성에게 편견을 심어주기 마련이다. 당연히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의 감정이 싹터 오르기보다 견원지간이 될 공산이 크다. 사랑의 방정식이 오묘한 것은, 어떤 계기로 우호적인 감정이 갈마들다보면 오만의 정도는 옅어지고 그만큼 편견도 줄어들어, 해(解)가 보인다는 점이다. 사랑은 무엇인가? 제인 오스틴은 말하고 싶었다. 오만과 편견이 해소되는 과정이라고.
진화심리학을 둘러싼 소란은 결국 오만과 편견이 충돌한 결과이다. 과학의 이름으로 인간과 사회의 모든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양 설레발쳤다. 복잡미묘한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것 치고 사이비 아닌 바가 없는 법이다. 맹공이 펼쳐졌다. 이 과정에서 진화심리학은 인간세계에 퍼져 있는 불평등 구조를 옹호하는, 지극히 수구적인 학문으로 알려졌다. 무릇 오만과 편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데는 오만한 쪽에 문제가 있게 마련이다. 더 자세히 설명하고 더 많은 근거로 설득하고 더 열린 태도로 반론에 대답해야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전중환은 국내에서 진화심리학을 둘러싼 논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다윈의 진화론도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에서 “인간의 ‘모든’ 심리현상을 진화적으로 설명”하려는 태도를 곱게 바라볼 리 없다. 진화의 결과로서 몸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마음마저 “인류가 진화한 먼 과거의 환경에서 조상들이 직면했던 적응적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심리기제들의 묶음”이라 여기기 난감할 터다. 전도사로서 전중환은 곤란을 겪었겠지만, 그동안의 논쟁을 바탕으로 진화심리학에 관한 백과사전 격인 <진화한 마음>이 나온 것은, 책 읽는 사람 처지에서는 무척 반가운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책의 앞부분은 진화심리학을 위한 변론으로 가득하다. 진화심리학의 기원과 그 핵심 내용을 설명했다. 진화심리학의 ‘공리’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현대인의 두개골 안에는 석기시대의 마음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다음을 이은 ‘흔한 오해들’ 편이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첫 번째 오해는 어떤 행동이든 수렵-채집 시기에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면 다 설명한 양 한다는 것. 이에 가설, 예측, 연구를 통한 검증을 거쳐 결과가 예측과 부합할 때만 진화적 가설로 받아들인다고 해명한다. 두 번째는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비난에 대한 변호. 심리기제는 특정한 환경에 걸맞은 적응적 행동의 설계라며 유전자 결정론이 아니라 선택론을 옹호할 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세 번째는 잘못된 행동을 자연적이라며 정당화했다는 비판에 대한 반론. 설명은 정당화가 아니라며 진화심리학의 인과적 설명이 오히려 이런 행동을 없애거나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자신했다. 마지막은 번식만이 인간의 유일한 목표인 듯 내세운다는 비판. 이에 대해서는 생명현상을 설명하는 수준에는 ‘어떻게’에 해당하는 근접설명과 ‘왜’에 해당하는 궁극설명이 있는데, 진화심리학은 후자라고 말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확인해보자. 먼저, 혐오감은 왜 발생할까? 한 공중보건학자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목록과 병원체를 옮기는 요인이 겹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콧물은 결핵, 인플루엔자, 홍역, 폐렴을 옮긴다. 쥐는 유행성 출혈열이나 라사열을 일으키는 병원체를 옮긴다. 고름이나 딱지에는 우리 몸을 해칠 병원체가 숨어 있다. “혐오가 병원체 감염을 예방하는 심리적 적응”이라 할 만한 이유다. 이 관점에 서면 자기집단 중심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을 다른 차원에서 보게 된다. <총, 균, 쇠>를 통해 널리 알려졌듯 잉카제국의 전사는 스페인의 총보다 병균 때문에 패배했다. 총알보다 전염병이 더 빠른 법이다, 외부인의 병원체는 내가 속한 집단에게는 치명타를 입힌다. 그러니, 혐오 정서가 발동해 외부인을 기피하게끔 진화했을 터다. 여기서 논쟁이 비롯된다. 진화심리학은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나 다른 민족에 대한 혐오를 옹호하는 것이냐고. 전중환은 아니라고 말한다. “현상을 설명할 뿐,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잊지 말자. 사려 깊은 이성적 추론 능력도 진화된 인간 본성이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진화심리학은 이 말이 얼마나 과학적인지 밝혀낸다. 인간 아기는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으로 나온다. 여성의 산도는 좁아지고 인간의 두뇌는 커진 적응적 결과다. 뭇 인간은 다 조산아인 셈이다. 가족의 사랑과 배려라는 인큐베이터에서 양육되어야 훗날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다. 육아에 품이 많이 드는지라 대행어미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엄마의 아기, 아빠의 아마도(mother’s baby, father’s maybe)”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다른 누구보다 외할머니가 손주 보는 데 시간과 품을 기꺼이 투자했다. 이 사실은 한부모 가정에 대한 지원정책에 시사점을 준다. 미국의 사례이지만 10대 미혼모의 아이가 외할머니와 함께 살거나 자주 만났을 적에 엄마와 더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다른 연구에서는 숙련된 간호사가 첫 아기를 낳은 엄마의 집을 한두 달에 한 번 방문해서 고민을 들어준 것만으로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밝혔다. 금전적 혜택보다 정서적 지원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성싶다.
전중환은 책에서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진화된 본성을 잘 이해할 뿐만 아니라, 과학과 합리적 추론을 통해 어떤 본성은 강화하고 어떤 본성은 억제할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그것이 사회적 맥락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주목했더라면 소모적인 논쟁은 피하지 않았을까 싶다.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이 해소돼 사랑에 이르면 오만은 자긍심이 된다고 했다. 이번 책을 기점으로 진화심리학이 과학적 사유의 자긍심이 되길 바란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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