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인인지심의 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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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이권우의 책과 세상

불인인지심의 건축학

일본인 건축가 반 시게루는 불러야 비로소 가지 않았다.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즉 못 본 척할 수 없어 먼저 달려갔다. 1994년 르완다의 후투족과 투치족이 일으킨 민족분쟁으로 난민이 발생했다. 한여름, 텔레비전 뉴스에 비참한 난민의 모습이 나왔다. 그는 그런가보다 했다. 그러다 담요를 두른 난민이 떠는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았다. 가을에 들어서면서 우기가 닥쳐 온도가 떨어져 벌어진 일이었다. 여름에는 콜레라로 시달리더니 이제는 폐렴이 돌았단다. 난민용 쉼터가 플라스틱 시트라 비바람을 막지 못한다는 것 을 알고 그는 단열 효과가 있는 종이 파이프 쉼터를 제안했다. 도쿄 소재 유엔난민기구 사무소에 직접 찾아가 한 일인데, 제네바에 있는 본부에 연락해 보라 했다. 편지에다 자료를 덧붙여 보냈는데 답신이 없자 아예 담당자를 찾아 제네바로 갔다.


가서 보니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유엔난민기구가 플라스틱 시트만 나눠준 탓에 나무를 함부로 베어 시트를 보강하는 틀을 마련했다. 당시 난민이 200만명이었으니, 아주 적게 잡아도 200만그루가 한꺼번에 잘려나간 셈이다. 과거에 알루미늄 파이프를 나눠준 적이 있는데, 돈이 된다고 내다 팔고 나무를 베었다고 한다. PVC파이프는 나중에 공해를 일으키는지라 참고 대상이 아니었다. 반은 이미 이 문제로 고민한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 건축 공부를 마치고 일본에 돌아온 다음, 전시기획 일을 맡았다. 마침 핀란드의 건축가 알바 알토의 가구전을 기획하면서 이모저모 궁리했다. 반은 그의 작품세계를 살리려면 나무를 많이 써야 하는데, 예산 문제도 있고 전시회가 끝나고 나무를 버리는 것이 아까웠다.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자원이 낭비되고, 환경이 파괴되고, 생태계가 무너지는 것을. 나라 전체에 돈이 넘쳐나 소비와 발전, 그리고 건설이라는 미망에 사로잡혔을 적에 그는 ‘재생지’ ‘재활용’ ‘친환경’이라는 열쇳말을 두고 고민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지구는 전대미문의 커다란 문제, 즉 ‘환경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궁즉통이라, 마침내 새로운 소재를 발견했다. 재생지로 만든 종이 튜브.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 두루마리 휴지의 심을 떠올리면 된다. 그걸로 어떻게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싶겠지만, 첨단기술로 나무보다 더 강한 종이 튜브를 만들 수 있고, 강도가 약한 재료로 외려 튼튼한 구조물을 세울 수 있다고 한다. 종이 튜브를 다닥다닥 붙여 벽면을 만들거나 고대 그리스풍의 건물처럼 줄기둥을 잔뜩 세우면 된다. 큰 지진이 나면 콘크리트건물은 무너지지만 목조건물은 멀쩡한 일이 잦았다. 건물이 가벼우면 지진에 잘 견디는 면이 있다. 종이집이 여러모로 맞춤하다는 말이다. 1995년 고베지역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다른 무엇보다 건축물에 깔려 목숨을 잃은 일이 아주 많았다. 직업과 관계없이 숱한 사람이 자원봉사하러 갔는데, 정작 건축가는 없었다. 이게 무슨 경우인가 싶었다. 반은 모른 척할 수 없어 베트남 출신 난민이 모인 다카토리성당으로 갔다. 성당도 큰 피해를 보았지만 지역 재건을 위한 자원봉사자의 활동기지 역할을 도맡았다. 신부님에게 예의 종이로 가설건물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신부님은 성당보다 지역민이 더 중요하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재건사업을 더 잘하려면 성당이 구심점이 돼야 했다. 좋은 일 하기도 쉽지 않은 법이다. 반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커뮤니티 홀인 종이성당을 지었다. 신도나 지역민이나 이 건물을 아낀지라 성당을 재건축하더라도 헐지 말자 했는데, 1999년 대만 푸리지역에서 지진이 일어나자 같은 용도로 쓰고 싶다며 보내달라 했다. ‘과부 설움은 동무 과부가 안다’고 기꺼이 보내주었다. 본디 조립용인지라 해체해 배편으로 대만에 보냈고 현지에서 재조립해 커뮤니티센터 겸 콘서트홀로 쓰였다.


반은 종이성당을 지으며 베트남 출신 난민도 도왔다. 공원에 천막을 설치해 버티고 있는데, 여론이 심상치 않았다. 퇴거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싸고 쉽게 조립하고 단열도 되고 외관도 좋은 가설주택인 종이 로그하우스를 짓기로 했다. 맥주상자를 바닥으로 삼고 종이 튜브로 벽면을 세우고 지붕에 천막을 덧씌웠다. 선진국에는 가설주택으로, 개발도상국에는 주택으로 적합한 본보기가 완성된 셈이다. 그의 건축철학이 꽃피운 것은 독일 하노버 엑스포 일본관이었다. 박람회가 끝난 후 파빌리온 해체 과정에서 산업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것을 설계이념으로 삼았다. 기초는 강철 프레임과 비계용 판자로 구성한 상자에 모래를 채워 넣는 것으로 했다. 해체한 다음에 재사용하기 위해서다. 종이 튜브로 돔의 골격을 세웠으니, 종이건축의 새 장을 열었다. 


남들은 그야말로 기념비적 건축물 짓기에 급급한 현실에서 이 건축가는 도대체 왜 인도주의적이며 환경친화적 건축에 매달릴까 나는 궁금했다. 그는 스스로 물었단다. 우리 건축가는 과연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라고. 그러고는 “세계 곳곳에서 민족분쟁, 지역분쟁이 발발하여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 규모의 노숙인 문제, 빈발하는 재난 피해자 등 소수 계층 사람들이 대량으로 발생하고” 있는 바, “앞으로 건축가는 어떻게 사회와 소수자를 위해서 일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름하여 불인인지심의 건축학이라 할 만하다.


내가 사는 동네 근방에 신도시가 들어선다고 한다. 돈 있는 사람이 투기하는 크고 넓은 아파트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임대주택이나 청년을 위한 주거시설이 더 많아지길 소망하리라 여겼다. 착각이었다. 벌써 집값 내려갔다며 집단시위를 했다. 보금자리를 오직 환금가치로만 평가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우리에게 없는 것은 무엇인지 되새김질해 보려면 반 시게루의 <행동하는 종이 건축>을 읽어볼 일이다.


<이권우 | 도서평론가·경희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