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서 말해지지 않을 것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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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이권우의 책과 세상

말해서 말해지지 않을 것을 찾아서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을까? 화학을 사랑했던 한 청년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고, 거기서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다. 주변 사람이 죽어나갔다. 이제, 운이 다한지도 모른다.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살아남았고, 수용소 생활에 버금가는 고난의 행군을 겪고나서야 귀향했다. 살고자 하는 의지보다 증언해야 한다는 열망이 죽음의 망토를 거둬냈다. 마침내 썼다, 그 짐승의 시대를. 시적 영감으로 가득한 자서전(<주기율표>)도 쓰고, 가혹한 고통을 담담하게 기록한 증언집(<이것이 인간인가> <휴전>)도 펴냈고, 시집(<살아남은 자의 아픔>)도 소설(<지금이 아니면 언제?>)도 썼다. 그런데 그에게 남은 말이 있을까?


프리모 레비와 조반니 테시오가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프리모 레비의 말>을 집어들며 떠오른 단상이다. 어쩌면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일인지도 모른다. 두 사람 다 괴롭지 않았을까 싶었다. 더는 나올 말이 없으니까. 그런데 심상찮은 점이 있었다. 마지막 인터뷰라는 부제가 달려서다. 1987년 1월12일 첫 대담을 하고 1월26일과 2월8일에 대담을 이어갔다. 레비가 수술을 받으면서 대담은 중단되었다. 4월 들어 부활절을 앞두고 레비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다시 일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단다. 그래서 다음주에 만날 약속을 잡기로 했으나, 그 약속은 끝내 잡을 수 없었다. 레비가 자살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어떤 관점에서 <프리모 레비의 말>을 읽어야 할지 뚜렷해졌다. 그의 말을 읽으며 그가 끝내 말하지 않은 말을 읽어내기. 물론, 이 독법은 실패할 터다. 아직 누구도 레비가 자살한 이유를 속 시원히 말해준 사람은 없으니까. 만약 이 책에 그 답이 있다면 눈 밝은 이가 벌써 떠벌렸을 터다. 무모한 독서가 시작되었다. 레비는 이런 독법을 예측했을까? 대담집의 첫 구절이 “전투 계획은 벌써 다 세웠겠지요?”였다. 이런, 실패하겠군. 어찌 그를 능가할 전투력이 있겠는가.


레비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는 호기심이 강해, 책을 엄청나게 읽었다. 기술학교를 나온지라 배경지식이 부족했지만 무차별적으로 책을 읽었다.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쓴 책을 읽었는데,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독일어판 쇼펜하우어 책을 읽는 호기를 부렸다. 앎에만 탐닉한 것이 아니라 삶을 즐길 줄도 알았다. 봉 비방(bon vivant)이라, 친구, 음식, 술을 좋아하는 낭만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었다. 레비에게서 엿볼 수 있는 진지한 독서인의 모습과 삶을 눙치는 유머가 다 아버지에게서 비롯한 듯싶다. 


레비는 반파시즘 유격활동을 하려다 잡혀 수용소로 끌려갔다. 무척 저항심이 강하고 정의로울 듯싶지만,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레비는 자신의 집안을 일러 부르주아라 했다. 아버지는 젊을 적에 외국에 나가 있었는데, 특히 헝가리혁명을 목격하고는 혁명이나 개혁을 마뜩잖게 여겼다. 아버지는 체질적으로 자유주의자인지라 파시즘 또한 못마땅히 여겼지만, 결국에는 파시스트당에 입당했다. 지켜야 할 것이 많아서였을 터다. 레비는 파시즘 교리에 어떤 매력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생명력, 생의 약동 같은 원리가 열다섯 살 소년의 호기심을 끌었던 것이다.


책 곳곳에서 레비가 내성적 인물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을 만난다. 그는 늦되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제일 연약하고 제일 작았다. 유머감각을 발휘해 그 시절 성적은 만년 2등이지만 키 작은 거로는 1등 했노라 회고했다. 기를 못 펴던 소년 시절이었다. 청소년 시절에는 성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또래들의 성적 농담이 그를 괴롭혔다. 주로 “무모할 정도로 과격”한 등산으로 버텼다.


대담자는 레비의 이 부분을 짓궂게 물고 늘어진다. 레비는 사랑을 거부할 여성과 사귀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더라도 어렴풋하게 했을 뿐이며 극도로 순수했노라 토를 달았다. 하지만 여기에도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인종법이 발동하면서 더욱 위축되었던 셈이다. 그런 레비에게 큰 상처를 준 사건이 있었다. 한 여인을 사랑했다. 여성은 당황스러워했다. 그의 소극적인 성격을 잘 알고 있어서다. 둘이 같이 정치적 임무를 수행하다가 체포되었고, 그녀는 끝내 죽었다. 죄책감이 그를 억눌렀다. 수용소에서 풀려난 후에야, 여동생의 친구인 반다 마에스토로와 결혼하면서 비로소 행복과 성취감을 느꼈다. 영혼이 파괴되는 단련을 겪고나서야 성인이 되었다. 누군가는 그의 결혼을 일러 “잔인하게 부정되었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확인하는 행위”라 했다.


글쓰기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본디 글쓰기에 중압감이 없었다 한다. 초기에 펴낸 책은 쓰고 싶어서 “쉽게, 부담감을 전혀 느끼지 않고” 썼단다. “내 살과 피”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전업작가가 아니었던지라 공장에서 여덟 시간을 보내고 밤에 집에 와서 글을 썼다. 레비는 이런 자세에 자부심이 있었다. 두 가지 일을 오랫동안 적절히 해왔고, 그 성과를 이루는 과정에서 자신은 아주 강한 존재였다고 말했다. 왜 아니겠는가. 분명 레비는 샤먼이 되어 공수하듯 글을 썼을 것이다. 그 잔인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은 억울한 영혼을 위한 조사를 쓰지 않고선 배겨낼 수 없었을 테니.


레비의 말을 보면서 어떤 말하지 않은 말을 읽고 싶었을까?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왜 그가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는지 그 징후를 눈치채고 싶었다. 마지막 인터뷰에도 실마리는 없었다. 단지 이 책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인지, 이때까지도 미처 말하지 못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거 때문에 죽었을까, 미래 때문에 저버렸을까? 자꾸 후자에 무게를 두게 된다. 탄압받고 고통을 당했던 이들이 오히려 악행을 저지르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그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성싶다. 레비가 처음인 독자라면 이 책과 함께 <이것이 인간인가>의 부록으로 실린 ‘독자들에게 답한다’를 읽어보길 권한다.


<이권우 도서평론가·경희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