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관객은 영화를 보고 나는 관객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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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직설]관객은 영화를 보고 나는 관객들을 본다

34분짜리 다큐멘터리영화를 완성했다.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첫 상영될 예정이다. 지난 금요일, 이 영화제에 자기 영화가 상영되는 감독들의 모임이 있었다. 앞으로의 일정을 소개하고, 서로의 작품에 대해 알 수 있도록 마련된 자리였다. 주최 측은 참석자에게 다른 감독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깃거리를 써서 제출하게 했는데, 마침 내게는 꼭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 시간과 노력으로 온라인 플랫폼용 짧은 영상을 만든다면 수십편, 어쩌면 수백편도 가능할 것이다. 영상에 광고를 붙이고, 그것이 많은 이들에게 닿는다면 창작자는 금전적 보상을 얻는다. 반면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수익을 거둘 가능성은 희박하다. 상업 영화가 ‘개봉’이라는 형식으로 관객들과 만난다면 독립 영화는 주로 영화제가 매개하는데, 영화제에 상영돼도 감독은 1원도 못 받는다. 심지어 어떤 영화제는 출품하는 데 일정 비용을 내게끔 한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영화 제작을 선택했다. 그 배경이 궁금했다.

 

내 경우에는 이해받고 싶고, 공감받고 싶다는 욕망이 큰 동력이 됐다. 다큐멘터리는 ‘객관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기록되어진 수많은 영상 중 드러낼 부분을 선별하고, 의도가 잘 전달될 구성을 고심하여 관객에게 건네는 데는 연출자와 편집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내가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과 정서적 맥락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것은 약자가 고통받고 자기 몫을 빼앗기는 일이 만연한 사회는 문제가 있다는 관점이다. 살면서 누군가의 고통이 다른 누군가의 이윤이 되는 사회구조를 실감할 때가 많았다. 예를 들어 전에 살던 단칸방은 방음이 안되고 단열이 엉망이고 심지어 비까지 샜는데, 집주인이 최소 투자로 최대 이윤을 추구한 결과였다. 시장의 요구에 따라 하나였던 집을 서너 가구로 쪼개 부동산에 내놓은 것. 그렇게 증축·개조한 집이 질 좋을 리 없었다. 비가 새어 곰팡이가 피고 실내가 눅눅해져 건강을 해쳤지만 집주인은 희망고문하며 10개월을 질질 끌었고, 결국 계약 만료로 이사할 때까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아니, 자기들이라면 못 살 공간에 세입자를 처박아놓고 적지 않은 돈을 또박또박 받아가는 건 좀 너무한 것 아니냐고.

 

나만 운이 없었다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이, 주변 친구들 역시 크건 작건 공간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세입자와 주인 간 분쟁이 보도될 때, 건물주 입장에서 사건을 지켜본 듯한 시선과 논리가 더 많이, 더 자주 보이는 게 의아할 수밖에. 머릿수로 따지면 국민들 중 건물주보다 세입자가 더 많은데 말이다. 세입자이면서 건물주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약자이면서 강자의 관점과 논리에 익숙한 사람들이 사안을 다르게 보는 경험을 하는 길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고민으로 작품을 기획했고, 평소 나와 같은 입장에 있던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기를 바라며 완성했다. 누적된 시간이 형성한 서사는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라는 믿음이 제작 기간을 지탱했다.

 

공을 들여 만든 만큼, 보는 사람들도 성실하게 봐주길 바라게 된다. 영화관에서 상영되길 욕망하는 이유다. 영화관은 집중을 ‘강요’하는 곳이다. 관객은 어두운 공간에서 오로지 밝은 스크린을 마주하며(합의된 약속을 안 지키는 인간들이 더러 있다. 상영 시간 중 오래도록 휴대폰을 볼 거면 애초에 영화관에 가지 말자. 휴대폰 불빛은 다른 관객의 감상을 방해한다) 쩌렁쩌렁한 소리에 노출된다. 적어도 상영 시간만큼은 치열한 내적 대화를 할 수밖에 없다, 졸지만 않는다면.

 

문제는 요즘같이 안방에서 손끝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일부러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이 얼마나 되겠냐는 거다. 이 점을 주최 측도 의식하고 있었다. 돌파구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경험한 것에 대해 얼굴을 마주하고 뭉근하게 얘기하며 여운을 즐기는, 영화제 고유의 체험을 정성들여 기획하는 것이었다. 사전 감독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도 프로그램 구성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분투가 기대하는 결과를 맺을 수 있게 할지, 직접 확인하게 될 날들이 머지않았다.

 

<최서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