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BTS의 티셔츠 행동과 3·1절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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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세상읽기]BTS의 티셔츠 행동과 3·1절 100주년

3·1절 100주년을 사흘 앞두고 BTS는 제16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악인 등 3관왕을 차지했다. BTS는 수상 소감에서 “사실 이 상이 가지는 권위와 품격에 비해서 저희가 작년에 불참해 너무 죄송하고 한이 컸는데, 올해는 훌륭하신 분들을 직접 뵙고 감사의 말씀을 드릴 수 있어서 좋다”는 말을 남겼다. 한국대중음악상이 비록 화려한 시상식은 아니지만, 그들은 이 상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나이보다 훨씬 오랜 세월 동안 ‘아침이슬’을 노래한 양희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을 듯한 많은 시상자, 수상자들과 함께하면서 BTS는 아마도 자신들의 음악 정체성을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일본 식민지 지배에 맞서 민초들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3·1절 100주년 오늘, 작지만 의미 있는 한국의 한 시상식 무대에 선 BTS의 무게감을 새삼 상기하면서, 광복절 티셔츠 사건을 다시 복기해본다. BTS 멤버 지민은 2017년에 제작한 유튜브 다큐멘터리 ‘번 더 스테이지’ 촬영에 문제의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티셔츠 뒷면에는 광복을 맞아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과 원자폭탄 투하 사진이 프린트되어 있고, 애국심, 우리 역사, 해방, 한국이라는 영문글씨가 쓰여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영상에 노출된 티셔츠는 출시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작년 말에 일본 미디어의 보도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더불어 2013년 리더 알엠이 광복절에 올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쉬는 것도 좋지만 순국하신 독립투사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대한 독립 만세”라는 멘트도 일본 언론의 도마에 올랐다. 일본 상업 매체 및 극우단체들은 BTS의 행동에 대해 “자국 역사에 대한 뿌리 깊은 콤플렉스”로 비난하거나, 도쿄돔 시위 협박에 이어 급기야는 방송출연 저지행동에 나섰다.

 

결국 아사히TV <뮤직스테이션> 방송출연이 무산되었고, 이 사태에 대해 양국 미디어 사이의 감정적인 대응기사가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지민의 경솔한 행동을 비난하는가 하면, 개념 있는 행동으로 옹호되기도 했다. 가장 많은 글로벌 팬덤을 보유한 K팝의 대표주자일수록 특히 민족주의와 식민지 유산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한편으로 일본 극우단체들의 극성 행동으로 전범국 일본의 식민 역사의 만행을 전 세계 아미들이 알게 된 반전의 계기였다고 평하기도 한다. 일부 일본의 양심 있는 언론인은 방송출연 취소를 개탄하는 반면, 일부 한국의 언론은 BTS의 행동을 영웅적 민족주의로 몰고 가기도 했다.

 

유명 음악인들이 민족, 인종, 성차, 자본의 모순에 맞서 벌이는 이른바 티셔츠 행동은 매우 다양하다. 최고의 하드코어 밴드인 RATM의 멤버들은 평소 체게바라 인물이 찍힌 티셔츠를 입고 연주하며 제국의 자본권력을 비판했다. 미국의 래퍼 ‘디디’는 “투표 아니면 죽음”이라는 글귀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흑인 인권을 위해 오바바 대통령의 선거를 도왔다. 음악인의 티셔츠 행동은 자신들의 정치적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BTS의 지민 역시 티셔츠에 새겨진 이미지와 글귀가 의미하는 메시지를 전적으로 몰랐을 리 없으며, 그것이 의도적이든 우발적이든 지민의 티셔츠 행동은 자신의 암묵적인 의견과 태도의 메시지를 내장한다.

 

티셔츠의 원폭 투하 이미지가 가져다줄 수 있는 전쟁과 핵공포의 위협, 그리고 그 원폭 피해자에 대한 배려심 없는 이미지의 잔혹함은 분명 또 다른 타자에 대한 폭력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설령 설익은 민족주의 행동의 결과이자, 민족주의 담론으로의 포획과정이라 해도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티셔츠 행동의 메시지는 정당하다. 나라 잃은 악소국 국민의 후예로서 광복의 해방감은 식민지 착취와 폭력 종식의 열망을 담고, 원폭의 역사 역시 이 착취와 폭력의 반동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유산은 지속되어야 하고, 그런 점에서 식민지 저항과 청산의 기억은 다양한 행동을 통해 재현되어야 한다. 그 행동이 암묵적으로 체화된 무의식적 코드에서 비롯되었건, 사후 학습에 의해 훈육된 민족적 코드에서 비롯되었던, BTS의 티셔츠 행동은 경솔함과 무모함을 상쇄할 만한 역사적 유산에 근거한다.

 

이미지는 애초부터 위험하고 잔혹하다. 언어는 자신이 뿌리내린 토양에서 역사적 유산을 갖는다. 그들의 티셔츠 행동은 전 세계 아미와 연대하여 일본 우익이 주장하는 원폭티셔츠를 해방의 감성을 담은 광복티셔츠로 전도시켰다. 그들의 티셔츠 행동이 비록 항일 독립투사의 운동에 비견할 만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3·1절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는 오늘만큼은 철없는 딴따라보다는 나름 개념 있는 문화청년들의 퍼포먼스로 이해되었으면 한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