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TV에선]‘청춘시대’, 벽을 두드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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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TV에선]‘청춘시대’, 벽을 두드린다는 것

스무 살 은재(박혜수)는 대학 첫 학기를 맞아 지방에서 상경한다. 소심한 성격 탓에 새로운 환경을 유독 두려워하는 그에게 서울의 모든 것은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다. 그중에서도 최고난도 과제는 낯선 이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셰어하우스 생활이다.

 

 

JTBC 새 금토드라마 <청춘시대>

 

 

설상가상으로 입주자들은 하나같이 이상하고 불친절하다. 며칠이 지나도록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은재의 룸메이트는 인사는커녕 포스트잇으로 경고나 남긴다.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는 다섯 여성이 거주하는 셰어하우스 벨 에포크이야기를 통해 현대인들의 소통 문제를 돌아보는 작품이다. 특히 이곳에 새로 입주한 은재의 시점으로 전개된 첫 회는 극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이 집에는 서로 얼굴을 모르는 다섯 여자가 산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소설가 김애란의 2002년 등단작 <노크하지 않는 집>을 연상시키는 소통 단절의 적나라한 풍경이 이 첫 회에서 그대로 펼쳐진다.

 

김애란 작품에서도 인상적으로 묘사되었듯, 이 단절의 풍경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입주자들의 포스트잇 의사 전달이다.

 

은재는 잘 때 전등을 끌 것부터 벨소리는 진동으로 해놓을 것등 구체적인 생활수칙을 적시한 룸메이트 진명(한예리)의 포스트잇을 볼 때마다 소외감을 느낀다.

 

감정 소모를 최소화하고 의사 전달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최적화된 이 메모는 은재가 대학 곳곳에서 마주치는 공고문의 성격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지금 이곳은 갈등과 협의를 통해 상호이해에 이르는 소통은 사라지고, 갈등 자체를 차단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만 남은 세계다.

 

<청춘시대>에서 이 공고한 불통의 벽은 은재가 억눌린 불만을 폭발시키면서 비로소 흔들린다. 어리고 어리숙한 은재를 만만하게 보던 예은(한승연), 촌스럽고 순박한 아이로만 생각했던 이나(류화영), 철저하게 무심했던 진명도, 은재의 터져 나온 분노에 그를 새롭게 이해한다. 은재가 말하기 전에는 아무도 그의 상처와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들 너희들처럼 익숙한 건 아니니까 나는 죽을 것처럼 힘든데라는 은재의 말처럼, 규칙의 세계란 거기에 익숙해진 구성원에게는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은재의 외침은 벨 에포크의 기존 구성원들이 이방인과 주변인의 시점에서 자신들의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물론 이러한 소통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드라마 기획의도에도 밝혔듯 소통은 상대가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가능해진다”. 벨 에포크의 그들은 모두 동등한 존재임을 이해했기에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소통할 수 있었다. 은재 역시 그러한 변화 위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불편한 존재일 수 있다는 반성적 거리다.

 

가령 은재가 휴지통에서 발견한 포스트잇은 그의 시점에서는 보이지 않던 진명의 또 다른 모습을 이해하게 해준다. 진명이 포스트잇 문구를 몇 번이나 고쳐 쓴 흔적은 그 역시 은재를 신경 쓰고 있었다는 증거다.

 

지금 이 시대의 소통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은 이처럼 타인의 시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청춘시대>는 그럴수록 갈등을 더 적극적으로 수면 위로 끌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적어도 그 불편함을 소리 내어 이야기한 순간 은재는 변화했다. 벽을 세차게 두드린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듣는다.

 

김선영 | TV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