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윈폴리오 ‘웨딩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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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블라블라/노래의 탄생

트윈폴리오 ‘웨딩케이크’


송창식과 윤형주가 호흡을 맞춘 트윈폴리오의 앨범은 명반으로 손꼽힌다.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만나 공연과 방송 출연으로 인기몰이를 한 이들은 단 한 장의 앨범을 내놓고 해체됐다.


‘축제의 노래’ ‘하얀 손수건’ ‘사랑의 기쁨’ 등과 함께 이 앨범에 수록된 ‘웨딩 케이크’는 미국의 만능 엔터테이너 코니 프랜시스의 히트곡에 윤형주가 노랫말을 붙였다. 원곡은 맑은 음색의 여가수가 다소 경쾌하게 불렀다면, 번안곡은 화음이 돋보이는 슬로 템포의 곡으로 변신했다.


한국 대중음악의 변곡점에 위치한 이 앨범의 탄생 비화는 여러 가지로 흥미진진하다. 연세대 의대에 다니던 윤형주는 집안도 좋고 인물도 좋았다. 그러나 송창식은 집안 형편 때문에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생계를 위해 무대에 서야 했다. 한마디로 금수저와 흙수저의 결합이었다. 두 사람이 기타를 들고 안경을 쓴 채 노래하는 재킷 사진은 윤형주의 아이디어였다. 눈이 좋았던 송창식은 덩달아 안경을 착용했다. 이들은 트로트가 주도하던 대중음악계에 포크송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이식하면서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랐다. 특히 여대생들의 트윈폴리오에 대한 열광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러나 인기 절정에 있던 1969년 12월 트윈폴리오는 서울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고별 리사이틀을 갖고 해체됐다. 명문가임을 자부하던 윤형주의 집에서 ‘딴따라’로 나선 윤형주를 거둬들인 것이다. 난감한 건 송창식이었다.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사랑치 않는 사람에게로’란 노랫말처럼 하루아침에 외톨이가 됐다. 더군다나 모처럼 얻은 인기로 생계를 해결할 기회를 날렸으니 절망감이 컸다. 게다가 윤형주가 곧바로 컴백하여 솔로앨범을 내는 바람에 두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대중적인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남성 듀오였기에 재결합을 위한 시도가 수십년간 이어졌다. 그러나 세시봉 열풍이 불던 2010년 즈음에 잠시 함께 무대에 올랐던 걸 제외하고 트윈폴리오의 재결합은 불발됐다. 아직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올드팬들은 아쉬움이 크다.


<오광수 부국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