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희의 미디어큐비즘] 아이유, 아이돌, 알리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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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정준희의 미디어큐비즘] 아이유, 아이돌, 알리바이

바비킴과 아이유가 3월 21일 MBC플러스미디어 <수요예술무대>녹화현장인 서울 건국대 새천년관 대강당에서 
무대 리허설 중 듀엣곡인 'Lucky'를 함께 부르고 있다. 경향신문/강윤중기자



이른바 대세라는 아이유. 그 자그마한 여성 가수가,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 어떡해라고 노래 부를 때마다, 정작 어찌할 줄 모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건, 그 고백의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 착각해마지않는 오빠들이다
이 착각이 종래의 허위의식적 이데올로기와 다른 점은 그것이 지극히 의식적인 착각으로서 자발적으로 선택된다는 사실일 게다. 언필칭 막강 솔로부대야 더 말할 나위 없거니와, 아내가 있거나 심지어(?) 여자 친구가 있는 오빠들조차 스마트폰 배경 화면으로 아이유를 깔아두고 좋은 날의 삼단고음에 넋을 잃는다.

아이유의 성취와 종횡무진은 실로 눈부시다. 음원 챠트에서 빼어난 성과를 거둔 것은 물론,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1순위 섭외 대상이며, 비록 주인공까지는 아니었다 해도 <드림하이>의 주역으로도 우뚝 섰다. (솔직히 <드림하이>의 승자는 주인공 혜미역의 수지나 그에 대립하는 백희역의 은정이 아니라, 다소 주변적인 캐릭터였던 필숙역의 아이유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이유 스스로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라지만, 문근영에서 김연아를 거쳐 새로운 국민여동생 자리에 등극한 그녀가 얻은 한 해 수입이 무려 50억 원에 달한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이쯤 되면 시기나 질투가 있을 법도 한데, 자기 연봉의 백배를 훌쩍 넘기는 이 여동생에게 오빠들의 마음은 한없이 너그럽다. 아이유와 동성의 언니들이나 아이유보다 어린 아이들조차 그녀의 귀여움과 매력에 수긍한다. 별반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 아이유 지각사태에 이들이 잠시 발끈하거나 안절부절못했던 건 그만큼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이유의 담백한 사과 앞에 맥없이 허물어지는 그들을 보면 역시 그녀는 국민여동생임에 틀림없다.

이런 아이유를 볼 때마다 나는 뜬금없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홍상수 감독(아니, 솔직해 대부분의 진지해 보이는 남성 감독들)의 영화가 대개 그러하듯, 여성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고 그를 통해 구원이나 희망을 찾는 (혹은 그렇지 못한 현실에 좌절하는) 남성 판타지가 읽혀지는 까닭이다, 라고 말하면, 제법 있어 보이지만 실은 어렵고 과잉 해석된 개념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 테다. 그러니, 그냥 좀 쉽게 말해서, 아이유를 통해 모종의 희망 같은 것을 찾는 이들이 꽤 많아 보인다는 이야기다.

아이유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기존 여성 아이돌이나 걸그룹들과의 차별성이 두드러진다
. 그녀는 분명히 귀엽지만 아주 예쁘지만은 않다. 외면적 장점이 상당히 갖추어져 있기는 하나 오빠들의 롤리타 콤플렉스를 너무 대놓고 자극할 만큼 직설적인 섹시함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게다가 그녀는 노래를 잘한다.’ 심지어 통기타를 퉁기며 어쿠스틱한 공연을 할 줄도 알고, 립싱크가 없어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요컨대
, 그녀는 아이돌답지 않는 아이돌이고, 양산된 립싱크 걸그룹에 속해 있지 않은 독립적(?) 소녀이며, 견줄 바 없는 귀여움 속에 충분한 여성적 매력을 감추어둘 줄 아는, 그 연령대에서는 꽤 실력 있는 여성 가수이다. 뛰어난 능력자들과 비교해 보면 사실 그리 놀라울 것도 없는 아이유의 삼단고음이 그렇게도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유에게는 다른 아이돌 걸그룹들에게 없는 무언가가 있고, 그로써 그녀는 대세일 수밖에 없는 거다.

 


이런 점에서
, 작금의 아이유앓이 혹은 아이유홀릭 현상으로부터, 이를테면 <아이유는 아이돌의 미래다>라든가 <아이유는 걸그룹의 희망이다>라는 식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아이유를 좋아하고 아이유에게 환호하는 건, 지금까지의 아이돌과 걸그룹에게 부족했던 무언가를 그녀가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밉살맞게 말하자면, 사람들을 아이유를 좋아함으로써 자신의 팬덤에 정당성을 부여받는다고 생각한다. 소녀시대, 카라, 티아라 등에 대한 팬심은 자칫하면 다분히 저속하고 음험한 판타지로 제한될 수 있지만, 아이유에 대한 흠모는 아슬아슬한 욕망을 넘어 진짜백이에 대한 감상능력까지 포함하게 되는 셈이다.

서태지에 대한 팬덤이 여타의 무수한 팬덤에 비해 뭔가 가치론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가졌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최근 들어 이는, 비록 충분치 않지만, 빅뱅이나 2NE1을 통해 재생산되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은 2NE1에 대한 팬심을 밝힐 때 좀 더 당당하고, 빅뱅이 프로듀싱 능력을 갖춘 실력 있는 아이돌이란 점에 좀 더 안심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빅뱅이 아이돌의 희망이라든가 작금의 아이유가 걸그룹의 미래라는 식의 생각을 곧이곧대로 수긍하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그들은 아티스트로서의 실력과 자립가능성을 충분히 입증할 만큼 성장해 있지 않다. 게다가 빅뱅, 2NE1 그리고 아이유를 통해 사람들이 진정으로 기대하는 바가, 예컨대, 가수로서의 노래 실력에 이왕이면 작사·작곡과 프로듀싱 능력까지 갖춘 완전체의 등장에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탁월한 가창력같은 것이라기보다는, 예쁘고 발랄하고 때로 섹시하기까지 한, 시쳇말로 블링블링한걸그룹이나 보이그룹 그 자체이다. 이들 아이돌에게서 때로 가수로서의 실력과 여타의 아티스트적 자질을 기대하는 이유는, 아이돌의 프로듀싱된 춤과 노래와 외모에 끌리고 있는 자신을 그대로 수긍하는 것이 민망해서다.
솔직히, 아티스트적 역량을 원한다면, <위대한 탄생>의 멘토 이은미나 <나는 가수다>1등 가수 박정현을 찾아 들어도 된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음반/음원 차트에 걸그룹이 더 자주 더 많이 등장하는 것은 그들이 맨발의 디바보다 대중들 자신에게 더 큰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다만 그 자체만으로는 왠지 쑥스럽고 어딘가 불안할 따름인 게다.

이런 와중에, 말 그대로 혜성처럼, 아이유가 등장했다. 윤아의 얼굴에, 가희의 춤 실력에, 구하라의 섹시한 귀여움에, 선화의 백치미에 더해 이은미와 박정현의 아티스트적 역량을 갖춘 누군가가 있다면? 혹은 최소한 그와 같은 싹을 품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 마다할 것 없다. 노래만잘하는 것이 아니고, ‘노래도잘한다는 데야. 

아이유는 아이돌의 알리바이다. 아니, 아이유는 아이돌을 사랑하는 이들의 알리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