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박홍민(서울시 중구 황학동)
MBC ‘나는 가수다’에서 탈락한 김건모가 경쟁에 재도전한다는 방송이 나간 후 논란이 일었다. 그에 따라 김영희 담당 피디가 경질되었고, 김건모도 자진 사퇴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나는 가수다’를 즐겁게 보았던 시청자로서 이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
우선 ‘나는 가수다’ 제작진의 결정엔 잘못된 점이 많다. 첫째로 시청자들을 우롱했다는 점이다. 실력 있는 7명의 가수들이 서바이벌 방식에 따라 탈락하고, 곧바로 다른 가수가 투입된다는 구성은 충격과 더불어 신선함을 안겨 주었다. 그러한 감정을 가지고 이 프로그램을 보았던 시청자들은 처음의 프로그램 구성과 일치하지 않는 김건모의 재도전에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MBC가 저지른 더 큰 잘못은 이번주 제작진이 방송에서 밝힌 대로 그들의 결정이 ‘나는 가수다’ 초기 제작 의도에 부합한다는 점을 입증해보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방송이 진행되면서, 제작 계획을 세울 때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건모의 탈락으로 그 문제들을 인식했고 재도전이라는 방향으로 개선하고자 했다면, 그 정당성을 결과물로 보여주고 시청자들에게 인정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제도가 도입된 다음 방송이 방영되고, 그 후에 시청자들의 판단에 맡겨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MBC는 여론의 비판과 언론의 압박에 못 이겨 다음 회라는 결과물이 나오기 앞서 담당 피디를 경질하면서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그 결과 시청자들에게 더 큰 불신을 가져다 주었다.
세 번째 잘못은 제작진의 결정에 지지했던 이들을 외면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우 다중들의 지지 표현은 비판보다 겉으로 드러나기가 어렵다. 언론에서는 비난의 힘이 찬성하는 편보다 강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시청자들의 의견을 피드백삼아 발전해야 하는 방송국으로선, 자신들에게 지지하는 쪽의 의견을 간과하거나 아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재도전이라는 새로운 제도에 만족을 느꼈던 시청자들은, 담당피디가 경질되고 또다시 다른 방식의 프로그램이 구성됨으로써 무시를 당하고 말았다. 나 역시 ‘나는 가수다’의 재도전이라는 새 제도에 찬성하는 사람이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재도전이라는 제도가 서바이벌 형식이 갖는 문제를 보완하기에 적합한 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연마다 가수 한 명이 탈락해야 하는 프로그램의 구성은 애초부터 비현실적이며 잔인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재도전’ 제도는 동료 가수들의 동의와 함께 탈락 위기에 처한 가수 자신의 의지와 양심이 전제된다는 점에서 서바이벌이 갖는 허점들을 보완할 수 있다. 즉 서바이벌이 갖는 장점인 치열한 선의의 경쟁을 보존할 수 있고, 그 경쟁으로 인해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피해자들을 보호해줄 중간 장치가 생긴 것이다. 훌륭한 가수들이 훌륭한 무대에서 하는 훌륭한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제작진의 의도에 합치하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이 새로운 제도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재도전’이라는 제도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전에 충분히 고려되었어야 하며, 방송 도중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프로그램이 갖는 문제들을 자인한 후 그것을 개선하고자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제작진의 겸허와 용기를 볼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은 고지식하게 정해진 틀에 갇혀 문제를 발견하고도 인정하지 않고, 폐쇄적으로 끝까지 진행하고야 마는 과거 방송과 사회의 모습과 대비됐다.
부드러운 것은 단단한 것을 이긴다. ‘나는 가수다’의 담당 피디가 교체되고, 탈락한 가수와 그의 재도전을 적극 지지했던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있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경직된 모습을 다시금 드러내 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가수다’의 융통성 있던 새로운 시도는 조금이나마 우리 사회의 진전을 보여주었다고 믿는다.
날이 갈수록 TV는 우리에게 더욱 더 큰 자극을 전해 주고 있다. 부디 국민들을 자극에 익숙해지도록 부추기는 프로그램이 아닌, 훌륭한 방송인들이 훌륭한 국민들에게 훌륭한 대한민국을 꿈꿀 수 있게 만드는 일상을 접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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