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행정안전부는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작성 주체는 서울청사관리소 관리과장. 제목은 “2030 직통령 펭수, 외교부 행사 출입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출입한 것임”. 다소 코미디 같은 이 사건의 발단은 조선일보의 기사였다. 기사는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 제공 자료에 근거, ‘펭수’가 6일 인형탈을 쓰고 외교부 청사에 들어가면서 별도의 확인과정 없이 보안검색대를 통과했다고 했다. 서울청사 보안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었고, 서울청사관리소는 미리 단체 방문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해명한 것이었다. 이 해프닝은 JTBC 뉴스에서 손석희 앵커가 기자와 관련 대담을 나눌 만큼 관심을 모았다.
외교부와 행정안전부와 조선일보와 국회의원과 방송뉴스까지 시끌벅적하게 만든 펭수는 누구인가? 교육방송(EBS)이 만든 펭귄 캐릭터이다. <자이언트 펭티브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고, 남극에서 ‘우주 대스타’가 되겠다며 한국까지 수영해서 건너온 10살짜리 펭귄이라고 소개된다. 만들어진 지 7개월 남짓 되지만 벌써 유튜브 구독자는 50만을 기록하고 있고, 아이들보다는 20, 30대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아 ‘직통령(직장인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엉뚱하지만 할 말 다하고 권위도 무시하는 거침없는 펭귄이다.
‘우주대스타’가 머지않은 EBS ‘자이언트 펭TV’ 캐릭터 펭수.
펭수의 외교부 청사 출입 논란이 웃픈(웃기지만 슬픈) 해프닝이라면, 태평양 건너 미국의 백악관에서 벌어졌던 ‘아기상어’ 해프닝은 유쾌하면서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해 올해 미국 야구의 최고 팀이 된 워싱턴 내셔널스 선수단이 지난 5일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미 해병대 군악대가 환영 음악으로 ‘아기상어(Baby Shark)’를 연주한 것이다. 올해 내셔널스의 비공식 응원가로 쓰인 이 노래는 우리나라의 스타트업인 스마트스터디가 미국 구전동요를 편곡하여 유아용 콘텐츠 ‘핑크퐁’을 통해 출시한 어린이 노래이다.
아기상어 유튜브 조회수는 이미 34억5000만을 넘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나 방탄소년단의 ‘DNA’보다도 많은 수치다. 아기상어의 인기에 힘입어 <핑크퐁>의 유튜브 구독자는 거의 800만을 바라보고 있다. 세계적인 어린이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니켈로디언은 ‘아기상어’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제작하기로 했고, 켈로그는 ‘베이비샤크 시리얼’을 출시했다. 캐릭터 상품과 코스튬도 큰 인기를 얻어, 내셔널스 야구장에는 상어 복장의 관객들이 양팔을 크게 벌려 상어 손뼉을 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곤 했다.
펭수와 아기상어의 인기가 얼마나 오래 갈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몇 년 지나면 시들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상관없다. 하나의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그 캐릭터가 무럭무럭 성장하면서 문화적·경제적 성공을 거두는 모습이야말로 산업사회 이후의 전형적인 성공 모델이다. 영화, 드라마와 K팝은 물론, 게임, 웹툰, 캐릭터 산업은 자동차나 반도체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반응이 좋으면 수십 년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신형 자동차나 폴더블 스마트폰의 출시는 우수한 과학기술의 성과로 평가하면서 펭수나 아기상어의 성공은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운 좋게 노래 하나 “터져서”, 혹은 그림 하나가 우연히 “대박나서” 떼부자가 됐다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창작자(들)의 오랜 고뇌와 낙담, 수많은 시행착오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펭수와 아기상어가 이미 다가온 근미래 문화산업의 단면을 보여준다면, <프로듀스X101> 투표 결과 조작사태는 ‘탈산업’ 사회가 아닌 ‘전근대’ 시대의 폐습을 생생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엠넷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제작진이 특정 출연자의 생존이나 탈락을 위해 시청자들의 투표 결과를 조작한 것이다. 소속 연습생을 쉽게 스타로 만들려는 기획사의 과욕과 어떻게든 화제를 만들어서 시청률을 높이려는 방송사의 무모함은 결국 팬들의 배신감과 분노만 유발했고, 우리나라 방송사의 가장 지저분한 해프닝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창의성이 대접받는 시대이다. 기발함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창의성은 쉽게 생기지 않는다. 펭수나 아기상어 같은 아이디어는 없는데 얼렁뚱땅 성공은 하고 싶을 때 <프로듀스> 사태가 생긴다. 펭수의 거침없음은 지금 보통의 시청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연구하고 고민한 끝에 나온 ‘콘셉트’지만, <프로듀스>의 투표결과 조작은 시청자들이 가장 기대했던 ‘콘셉트’, 즉 ‘공정함’을 도구처럼 생각한 안이함의 결과이다. 이 바닥도 스마트폰 만드는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민하고 연구하고 노력하는 자에게 로또가 터진다. 하긴 방송·문화산업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모자란데 욕심을 내면 지저분해진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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