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지상파에선 봄과 가을 프로그램 개편 시즌마다 부산 출장이 많았다 한다. 당시 방송기획 파트 실무자들이 부산 호텔방에 모여 스필오버(spill over)로 일본 방송을 보며 인기 프로그램 포맷을 모방해 개편 아이디어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연예인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게임이나 운동으로 경연했던 ‘청백전’도 일본의 ‘홍백전’ 프로그램의 모방이었다고 하니, 모두 기억할 수 없지만 여러 가지 포맷이 그렇게 국경을 넘나드는 전파를 통해 국내 방송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매년 프랑스 칸에서는 방송 프로그램의 저작권을 상담·판매하는 마켓이 열리는데, 특히 올해 매일 발행되는 소식지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왜 한국은 더 이상 포맷을 구매하지 않는가’라는 내용인데, 매년 평균 수십개의 방송 포맷을 구매하던 한국이 이제는 그 정도 규모의 포맷을 해외 각국에 판매하는 포맷 생산국이 된 사실을 보도한 기사였다. 실제로 올해까지 10개국 이상에 판매된 대표적인 한국산 포맷은 <꽃보다 할배>와 <너의 목소리가 보여>이고, 판매총액으로 평가하면 <복면가왕>이 놀라울 정도의 성장세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구매해 제작한 미국판 <복면가왕>은 우리의 사례처럼 마스크만이 아니라 전체 의상을 완벽하게 디자인해 비싼 기획의상은 1억원 넘는 제작비가 투입될 정도라고 한다. 다만 미국식으로 각색된 포맷은 우리처럼 경연을 통해 몇 주간이라도 우승자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방식이 아니라 매회 경연의 우승자를 선정해 마무리하는 단선식이다. 이는 미국 시청자들이 선호하는 형태로 변형시킨 것이다.
미국판 ‘복면가왕’인 ‘더 마스크드 싱어’
예전부터 중국의 방송들이 국내 인기 프로그램 포맷을 계약도 없이 모방하고 변형시키는 방식을 답습하다가, <나는 가수다>와 <아빠! 어디 가?> 포맷을 수입하면서 포맷 저작권의 중요성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한다. 중국으로 한국의 방송 포맷을 수입해 중국식으로 각색한 후, 그 포맷의 다양한 2·3차 저작권을 발생시키며 얻는 수익이 기대 이상이었기 때문인데, 결국 중국 내에서의 저작권 인정과 확보가 자신들의 추가적 저작권 수익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정식 계약을 하게 된 것이다. 최근에도 치매가 진행되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의 식당 서비스를 주제로 제작된 리얼다큐 <주문을 잊은 음식점>도 중국에 수출되어 <잊지 못하는 식당>으로 방영되었다. 중국식 제목이 나름대로 포맷의 감성을 더 잘 반영한 느낌이다.
세계적인 포맷시장에서 주목받는 세대가 시니어 그룹이다. ‘실버마켓’에서 이제는 ‘골든 에이지’로 불리는 시니어 세대의 방송 포맷이 인기라는 것인데, <꽃보다 할배>에 이어 영국 BBC에서 제작해 판매한 대표적인 최신 포맷 <네 살 유아들을 위한 양로원>도 그렇다. 네 살 유아들을 돌보는 요양시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이야기다. 서툴지만 열심히 아이들을 돌보려는 노인들의 노력과 그들의 진심을 이해하고 어른처럼 행동하는 유아들의 성숙함이 진심어린 사랑과 애틋한 감성으로 시청자들을 매혹한다.
<1박2일> 시즌 1의 실험을 거쳐 타 방송사에 스카우트된 나영석 PD와 방송작가들은 이후 <꽃보다 청춘> 시리즈를 시작으로 <삼시세끼> <신서유기> <강식당> <윤식당> <알쓸신잡> <스페인 하숙>까지 다양한 한국식 예능 포맷을 창작하고, 작품마다 독특한 감성을 풀어낸다. 흥미로운 것은 그러한 포맷을 적용하고 구현해내는 캐스팅의 반복성이 캐릭터의 독특함을 강화시키는 연계효과까지 만들어내니, 포맷 수출이 국내 배우의 글로벌화를 견인하는 효과까지 더해낸다. <강식당 2> 촬영을 위해 경주에 오픈한 식당에는 대기줄이 1만명 넘게 이어졌다고 한다. 한편 <삼시세끼> 포맷을 판매하기 위해 해외 바이어들에게 보여주며 설명하면, 하루 세 끼 밥해 먹는 이야기가 왜 재미있느냐는 반문을 듣는다고도 하니, 인류 모두가 공감하는 포맷 만들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1박2일> 시즌 1에서 출연자와 방송제작 스태프가 게임을 해서 진 스태프들이 야외취침을 했던 사례는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출연자에게 진 스태프 100여명이 빗속에서 텐트를 치고 모두 야외취침을 하던 그 방송의 시청자들은 모두 그곳에 함께 있었다. 결국 한류를 이끌어내는 예능 포맷의 힘은 진정성과 소탈함이다.
<한창완 세종대 융합예술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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