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칼럼]가창력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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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모칼럼]가창력에 대한 오해

대체 가창력이란 무엇인가. 노래를 어떻게 해야 가창력이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건가. K팝의 결정적 핸디캡이 한류 가수들의 가창력 부재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처럼 가창력은 예나 지금이나 가수능력을 재단하는 무소불위의 조건으로 군림하고 있다. 가창력이 있다는 말에 가수는 웃고 가창력이 부족하다는 핀잔에 좌절한다.

가창력은 대중가수에 관한 한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음정, 박자, 호흡조절, 성량, 가사 전달력 등 노래 부르기의 기본으로 통하는 사항들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들이 무시될 경우 그 가수의 노래는 부자연스럽고 청각이 예민한 사람들의 귀에는 거슬릴 수도 있다. 확실히 오랜 단련 과정을 통해 숙성된 보컬은 시냇물 흘러가듯 유려하게 들린다.

가수의 색깔과 개성을 결정하는 음색은 대중가수에게 필수적이다. 어쩌면 위의 기본사항보다 더 가수의 성패를 가르는 절대적 조건일 수도 있다. 아무리 제대로 노래했어도 평범한 음색은 귀에 꽂히지 않는다. 단발 히트로 끝나거나 성공의 문턱을 못 밟은 가수는 특색 없는 보이스 컬러 때문인 경우가 많다. 가창력은 또한 지극히 주관적인 요소가 강해 사람마다 가창력이 있는 가수들을 대라고 하면 대답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가창력의 핵심이 고음 구사 쪽으로 쏠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높은음으로 무리 없이 잘 솟아오르면, 다시 말해 잘 지르면 가창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특히 수년을 뜨겁게 달군 오디션 프로그램이 사실상 가창력 대결로 전개되면서 더욱 심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사실 출전자의 순위를 매기는 과정에서 고음을 시원스레 질러대 역창(力倡)하면 귀가 쏠리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가창력은 노래와 음악에 있어서 중요한 미덕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곡의 창의성과 가사, 사운드, 편곡과 프로듀싱 등 여러 요소들이 화학적으로 잘 어우러져야, 요즘 말로 ‘케미’가 이뤄져야 대중과의 소통을 창출할 수 있다. 남보다 더 높은음을 빡빡 내질러 우월한 높이를 보였다고 해서 즉 가창력이 뛰어났다고 해서 그 노래가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닌 것이다. 즉 “노래를 잘하네!”와 “노래가 좋네!”는 전혀 다른 얘기다. 가창력은 엄연히 노래의 일부임의 증명이다.


이선희 ‘음원차트 올킬’ (출처 :경향DB)


누가 들어도 발군의 가창력을 인정받는 가수인데 실제로 대중과의 교감에 성공하지 못한, 다른 말로 히트한 곡이 적은 가수들을 본다. 하이 톤으로 폭발하며 지르면 듣는 순간 ‘쾌감’을 느끼지만 길게는 ‘호감’으로 가지 못하는 사례들이다. 김범수는 10년 전에 발표한 ‘가슴이 지는 태양’이 실패하면서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당시 그는 ‘얼굴 없는 가수’였던 자신의 승부수는 우월한 가창력이라고 여겼다. 마치 반음이 올라간 듯 들릴 정도로 그 곡에서 통렬하게 고음을 내뿜었다.

그 는 나중에 비어있는 것을 비워두는 것이 진정한 가창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참고 감정을 절제해 불러야 듣기 좋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적당히 비워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죠. 전 비워두지를 않았어요.” 노래의 신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승철은 “노래 부르기는 강하고 터뜨리는 것보다는 편하고 친근한 쪽이어야 한다!”는 말을 달고 산다. 이승철 가창의 궁극적 지향은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이다. 지난해 ‘마이 러브’가 성공한 이유도 어깨 풀고 편안하게 노래해서였다.

두드림(비트)을 16분음표로 잘게 나눈 16비트 펑크(Funk)음악은 연주하는 사람은 신나지만 듣거나 춤추기에는 쉽지 않다. 좀 더 춤추기 쉽게 8비트로 줄여주면서 1970년대에 엄청난 광풍을 일으킨 것이 펑크 뒤에 나타난 디스코다. 마찬가지로 몇 옥타브 위로 솟구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가수의 자존심이 될지는 몰라도 결코 대중의 시선은 아니다. 가창력은 가수의 절대 조건이라기보다 좋은 대중음악의 한 조건이다. 고음을 능란하게 다루는 가창력이 없다고 가수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경연장에서 우승하는 가창력보다 대중에게 스며드는 가창력이 훌륭한 가창력이다.


임진모 |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