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칼럼]위로를 주지 못하는 K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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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모칼럼]위로를 주지 못하는 K팝

산울림의 김창완은 “대중음악의 기능은 위안에 있다”고 말한다. 전달하는 내용이 흥이든 우울함이든 대중가요의 모든 것은 결국 듣는 대중들에게 위안, 위로 혹은 근래 급부상한 언어로 말하자면 힐링을 주는 데에 맞춰져 있다. 사람들만 위로를 얻는 게 아니라 음악가들도 음악을 만들면서, 그 음악으로 대중의 박수를 받으면서 위로를 경험한다. 자기 위로다. 그래서 뮤지션들에게 자신의 음악이 팬들에게 무엇을 의미했느냐고 물으면 상당수가 위로라는 답을 내놓는다.

대중음악이 위로 그 자체라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대중 전파매체는 국민적 상처를 위무하는 대중가요를 더욱 전면에 배치하는 게 이치상 맞다. 실의, 좌절, 분노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데 음악만한 게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세월호 참사의 애도기간에 TV 음악프로는 예능프로와 함께 줄줄이 결방되었다. 어떤 음악이든 가수의 노래에 박수 치고 즐거워하는 장면을 내보낸다는 건 상상할 수 없게 되면서 음악은 사라졌다. 공연 장면은 아예 불가능했다.

같은 기간에 라디오는 어땠을까. 라디오 오락프로들은 기존의 구성을 버리고 톤이 낮고 느린 템포의 노래들, 특히 흘러간 노래들로 대체해 긴급 편성했다. 잇단 위로의 노래들 덕분에 갑자기 ‘뜨악’한 제목이 돼버린 <싱글벙글쇼>, <재미있는 라디오>, <즐거운 오후 2시>, <상쾌한 아침입니다> 등의 프로가 텔레비전과는 다르게 결방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키득키득거리는 잡담 위주의 라디오 예능프로들도 방송이 중단되지 않았다.

나라 전체가 슬픔에 잠긴 지난 5월 초 한 라디오 PD는 “처음에는 어떻게 방송 2시간을 채울지 감감했는데 노래로 대체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막상 뒤져보니 위로 메시지의 노래가 부지기수였다”며 선곡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했다. 텔레비전에선 노래가 죽은 반면 라디오는 음악이 넘쳐난 것이다. 이 대조적인 양상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 초유의 국민적 비극을 맞이한 상황에서 TV의 ‘보는 음악’은 어떻게 표현해도 위로는커녕 반감을 부를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가수 김창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점령한 우리의 현 대중음악 즉 ‘K팝’도 문제가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아이돌 음악으로 등식화된 K팝은 거의가 격렬하게 흔들어대며 춤추고, 감각을 극대화한 노래들이 대부분이다. 차분하고 애처로운 기조의 노래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돌 음악만 보면 우리는 신 나는 세상, 즐거운 인생이다.

요란한 감각과 쾌락적 아우성에 쏠려 위축되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숨결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니 TV 프로에서 대중가요의 현장을 담아낼 수 없는 노릇이다. 대중음악의 본령이 위로인데 위로의 메시지가 절대 부재한 까닭에 어쩔 수 없이 홀대를 당하게 된 것이다. “이 판국에 아이돌 댄스의 무대를 화면에 내보내는 것은 미친 짓 아닌가”라는 한 방송관계자의 말은 처량하다.

대중가요의 정서가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그간 우리 K팝이 즐거움과 비통함의 정서를 고루 표현해왔더라면, 세월호 참사 기간에 위로를 줄 수 있는 분위기와 메시지 쪽의 노래를 골라 충분히 방송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카메라로 얼마든지 국민들의 쓰라린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노래 장면을 포착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오랫동안 일방적인 감각의 댄스음악만으로 덮어놓다 보니 정작 애도의 순간을 맞아 어울림을 갖는 노래와 위로 제공의 가수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만큼 주류의 대중음악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 결코 편치 않은 삶인데도 고단함을 다독여줄 힐링 송이 적어도 TV 가요프로에서는 ‘행불’이다. 대중가요 본연의 위로 기능이 아쉽다. 이런 노래들에도 카메라를 비춰준다면 상투적 후크 만들기에 묶여 신음하는 작곡가들이 먼저 환영하지 않을까. 위로의 톤과 메시지의 노래가 K팝에 태부족인 현실이 뼈아프다.



임진모 |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