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중음악의 대안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1990년대 중반 잉태한 인디음악이 올해로 어느덧 20년의 역사를 쌓았다. 답답하고 척박한 음악풍토에서 20년을 버텼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독립을 의미하는 인디는 자본에 찌든 주류 음악의 획일화에서 벗어나 뮤지션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하는 흐름으로 출발했다. 농사로 치면 ‘자작농’이다. 막 싹이 텄을 때가 마침 기획사 주도의 아이돌 음악이 독과점을 행사하기 시작한 시점이어서 서울 홍대와 신촌 일대의 클럽에서 암약한 자작농 인디에 대한 일각의 기대는 컸다.
포크음악의 대부 이정선도 2002년 근래 어떤 음악에 주목하느냐는 질문에 주저함이 없이 “변화의 샘이라는 의미에서 인디에 기대를 건다”고 답한 바 있다. 주류 음악은 자본이 투하된 만큼 실적에 민감해 상업적일 수밖에 없고 뮤지션들도 맘대로 예술적 도전을 기하기가 어렵다. 어느 정도 개성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음악가라면 누구나 갈망할 독자성의 발화와 스타일의 다양성은 인디에서 찾아야 했다.
1995년 미국 록밴드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추모공연이 홍대 소재의 자그마한 클럽 ‘드럭’에서 열리고 크라잉 넛을 비롯한 몇몇 밴드의 난장(亂場)이 정례적으로 펼쳐지면서 국내 인디음악이 점화한 시기의 사정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록 담론이 유행하면서 인디에 대한 관심은 솟아올랐고 기민한 언론도 미래가능성을 보고 인디 쪽을 주목하면서 인디란 말은 급속도로 다수에 회자됐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 음악적 기본이 부재하다는 부정적 시선과 무시 그리고 주류에 잠식된 대중들의 냉대도 엄존해왔다. 인디밴드가 출연하는 페스티벌에는 관객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인디의 요람이라고 할 클럽 무대는 스타급의 뮤지션이 나오지 않는 한 여전히 한산하다. 클럽이 늘어났어도 클럽 인구가 늘어나지 않은 것이다. 주말이면 홍대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그 넘쳐나는 사람들은 그곳을 인디음악의 메카로 끌어준 게 아니라 질펀한 유흥가로 만들었다.
물론 인디 20년이 새긴 긍정적 궤적도 만만치 않다. 먼저 이전까지 활동이 간헐적이던 밴드들이 집단적으로, 공격적으로 세를 불리면서 밴드문화가 정착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초기 크라잉 넛, 노브레인을 거쳐 2000년대 들어 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 등은 메인스트림에 적절한 충격을 가하는 인디의 존재감을 확실히 했다. 인디밴드들이 구축한 자생성은 음악수요자들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그들은 미디어를 통해 주어진 음악을 막연히 접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은 ‘찾아 듣는 것’이라는 명제를 또래 젊은층에 유통시키면서 인디의 청취층 확산을 도왔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포에버21 홍대점에서 열린 '포에버21(FOREVER21) 홍대점 매장 오픈 기념 패션쇼'에서 인디밴드 랄라스윗(가운데)과 모델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인디음악의 가치가 장르 다양성 확보에 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 못지않게 인디는 음악적 공허함에 시달리는 20~30대 젊은 세대를 위해서도 더 기세를 올려야 한다. 10대는 아이돌 댄스가 있고 40대 이상의 기성세대는 7080음악과 세시봉 그리고 TV의 오디션과 복고지향 프로를 통해 어느 정도 빈혈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20~30대는, 음악역사에서 전통적으로 음악시장의 주인 역할을 해온 그 ‘낀’세대는 정작 들을 음악이 없다. 상대적으로 유행 음악에 귀속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음악과 가장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음악의 질적 상승을 주도해야 할 이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 우리의 음악미래는 어둡다.
근래 들어 인디음악이 너무 유약하고 재미에 빠져 희화화된 것들이 많다는 비판은 그르지 않다. 그래도 그들만의 스타일을 내건 가수와 밴드들은 얼마든지 포착할 수 있다. 20년이 흘렀어도 아직은 그들의 외로운 치열을 응원하고 찾아 들어주는 지지가 있어야 인디의 성장판이 더 열릴 것 같다. 그래야 작지만 위력적인 시장이 생겨난다. 인디가 대안이라는 공감을 창출하면서 정서 지분은 수확했지만 이제는 시장 지분을 가져야 한다. 성인이 된 인디음악이 그 패기와 청춘성으로 판을 돌파해가기를 기대한다.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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