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1990년대 후반부터인가, 단 한해도 음악계가 좋았다는 말이 돌았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음반 중심에서 디지털 음원으로 시장의 축이 이동하는 격변 속에서 음악관계자들은 “음악계에 돈이 돌지 않는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오고 있다. 매출 규모가 상당하다는 굴지의 기획사들조차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다”고 엄살을 피운다.
딱 9년 전인 2006년 신년을 맞아 한 일간지에 ‘가요계 희망을 노래하자’라는 글을 쓴 바 있다. 2005년의 극심한 불황에 허우적거리지 말고 일어나자는 사기진작이 요지였다. 그때 가요계 상황을 이렇게 기술했다. “노래 불러야 할 가수들이 잇달아 드라마에서 연기한 것이나, 수위를 잃은 채 리메이크 앨범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 것이나 모두 음악계의 불황과 관련을 맺는다. 지난해 불어 닥친 ‘섹시 콘셉트’ 범람도 상황이 어려우니 음반 판매량은 둘째 치고 일단 사람들의 시선부터 잡아보자는 의도에서 빚어진 현상이다. 섹시 콘셉트를 동원한 가수들은 제법 빠르게 그들의 존재를 알리는 데 성공했지만 노력에 비해 앨범 판매량은 아주 미미했다는 점에서 조금도 침체상황의 반전을 꾀하지 못했다.”
2014년 음악계에 가장 많이 동원된 키워드의 하나인 섹시 콘셉트가 이미 9년 전인 2005년에도 범람했음을 알 수 있다. 가수들의 드라마와 예능 출연도 새로울 것이 없고, 다만 리메이크 앨범 유행이 협업을 의미하는 콜라보레이션 붐으로 바뀐 게 달라졌다고 할까. 리메이크든 ‘콜라보’든 음악적인 이유, 예술적인 실험보다는 상업적 전략의 요소가 강했다는 점에서 그것도 별 차이는 없다.
음원시장의 시스템이 정착한 것을 변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정작 9년 사이 달라진 것은 ‘글로벌화된 K팝’이라고 할 수 있다. 한류는 존재했어도 중국과 동남아, 일본을 넘어 유럽과 미국을 관통하는 글로벌 센세이션은 구체화되지 않았다. 2005년까지 국제무대에 빅뱅, 슈퍼주니어, 원더걸스, 소녀시대, 투애니원, 2PM, 샤이니 그리고 싸이는 없었다.
K팝의 우렁찬 포효가 그 사이 등장했다면 근래 음악계 전망은 밝아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사정은 그렇지가 않다. 얼핏 대형기획사 SM과 YG 소속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이른바 ‘종합선물세트’ 공연을 보면 여전히 드높은 K팝의 위세를 확인할 수 있지만 그것은 한편으로 가수 개개인의 단독 공연은 잘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실제로 K팝 가수의 단독 공연은 예전 같지 않다는 보고가 여기저기서 날아든다. 대형기획사에 소속되지 않은 가수의 경우, 솔직히 중국에서는 활발하게 공연할 수 있는 가수가 별로 없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이 작년에 발간한 한류심층보고서는 “앞으로도 이런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고 있다.
호주 퍼스에서 열린 ‘2K13 필 코리아’ 콘서트 (출처 : 경향DB)
대형기획사의 종합선물세트 공연은 흥행이 목표라는 점에서 어쩌면 K팝 한류를 지탱하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이러한 공연마저 시들해진다면 대안이 없는 위기의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K팝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는 지적을 줄기차게 받아온 것이다. 그래도 불황의 2005년을 보내고 2006년 새해를 맞아 음악관계자들은 희망을 말하곤 했다. 누군가는 “힘든 것은 2005년이 끝이라고 본다”고 관망했다.
지금 이런 낙관을 피력할 사람이 있을까. 한 공연관계자는 “지금도 세월호 참사에 따른 침체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힘겨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희망은 좀 더 음악적으로, 예술적으로 가는 데서 찾아야 한다. ‘이렇게라도 해야지…’ 하는 자극으로 순간을 돌파할 게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상과 이성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음악콘텐츠의 다양화를 확보해야 한다. 그게 K팝을 살릴 것이고 대중음악에 재미와 감동을 못 느끼는 일반의 관심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업은 시간이 걸린다. 새해 음악계는 ‘느리게’ ‘지나치지 않게’로 흐름을 잡았으면 한다.
임진모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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