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반목, 대치는 언제 어디서나 있기 마련이다. 지금도 우리는 남북분단, 동서갈등, 좌우충돌, 빈부 격차와 같은 커다란 대립 구도에 시달린다. 이 외에도 시급히 풀어야 할 대립과 부조화들이 얼마든지 있지만 앞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을 가장 커다란 갈등은 아마도 세대갈등이 아닐까 한다. 그럴 때마다 음악이 갖는 힘과 가치를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1970년대 중반 TV 프로그램 가운데 <무궁화 인기가요>란 것이 있었다. 기성세대의 기억에 오롯이 남아 향수를 자극하는 이 프로는 당대의 음악경향이 청춘의 포크송이었고 주 시청자층도 젊은이들이었기 때문에 젊은 성향의 노래가 득세했다. 하지만 세대와 장르 측면에서 일방적으로 흐르지는 않았다. 젊은이들이 좋아한 김정호의 ‘하얀 나비’가 1위에 오르는가 하면 어른들이 좋아했던 나훈아의 트로트 ‘고향역’이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그 덕분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어울려 이 프로를 시청하는 가정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그 시절 포크의 담임선생님으로 통했던 평론가 이백천은 언젠가 “포크 음악을 두고 ‘영’ 포크라고 해서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들만 열광한 것으로 알지만 실제로 포크 음악은 어른들도 좋아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쩌면 지금은 가능하지 않은 절묘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트로트와 포크가 한 프로 내에서 공존하고 동거하면서 경험과 감각이 다른 신구 두 세대가 충돌 없이 TV 수상기 앞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1960년대 후반 텔레비전이 개화하던 시기에 연말의 ‘10대 가수 제전’이란 것도 지금 돌이켜보면 그 뒤섞임이 놀라움을 준다. 열 명의 톱 가수 중에는 이미자, 남진, 나훈아와 같은 트로트 가수와 더불어 최희준, 현미, 한명숙 등 다분히 서구적인 스탠더드 팝 계열의 가수들도 비등하게 자리했다. 게다가 가부장제하의 남성 주도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가요제전만큼은 남녀 5 대 5라는 성비를 맞췄다.
트로트와 스탠더드 팝은 성격이 판이하고 소비층도 달랐지만 이러한 조합과 장르소통에 의해 당대의 음악 팬들은 특별한 저항감 없이 두 음악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어느 정도는 세대 동행에도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30~4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음악시장의 덩치가 커지고, 장르 분화와 전문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음악적인 세대 갈등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지금 TV 음악 프로그램은 <음악중심> <뮤직뱅크> 등 청춘 대상의 프로와 <가요무대> <전국노래자랑>과 같은 어른 중심의 프로로 확 갈려 있다. 프로에 등장하는 음악의 스타일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틴에이저들이 보는 프로에 기성세대가 선호하는 가수가 나오기 어렵고, 어른이 즐겨보는 프로에 신세대 가수가 나오면 조금은 생뚱맞다. 2~3년 전 러시를 이뤘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중간의 화합지대를 만들면서 음악적 갈등을 부분적으로 해소했다는 평가가 나오긴 하지만 실감 나지는 않는다.
상큼한 단발머리로 커트한 '트로트 퀸' 장윤정. 어른들의 장르인 트로트를 젊음의 색채로 돋구면서 전연령대에게 사랑을 받았다. (출처 : 경향DB)
지금 50~60대 기성세대들은 걸핏하면 “요즘 노래는 멜로디가 너무 빈약해 우리 때처럼 가슴에 와 닿는 노래들이 없다. 한 달만 지나면 다 사라질 노래들이다!”라며 근래 가요의 단발성과 짧은 유행 절기를 통박한다. 젊은 세대는 그들대로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 흘러간 노래들이 내내 반복해서 들리는 것에 불편함을 호소한다. 나이 든 사람은 ‘정신 사납다’고 불평하고 아이들은 ‘구리다’고 외면한다.
이러한 분리와 대치 구도에서 더 손을 내밀어야 할 측은 어른들이라고 본다. 요즘 음악이 체질에 안 맞는다고 지나간 시절의 향수만 소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게 청춘음악에 대한 외면을 가져오고 그에 따라 참신한 음악을 만들기 위한 젊음의 역동적 실험과 도전은 위축될 것이다. 음악은 늘 젊은이들의 창의가 이끌어가는 ‘청춘 주도’의 판이다. 근래 만약 좋은 음악이 나오지 않고 있다면 그렇게 된 데는 부분적으로 기성세대의 책임도 있다는 생각이다. 조금의 시간을 투자하면 이질적이고 생경한 사운드도 청각에 잡힌다. 들을 만한 젊은 음악은 얼마든지 있다. 음악의 위상이 더 올라가기 위해서는 기성세대의 관심과 포용이 필요하다.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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