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사 기자
ㆍ세련되진 않지만 영혼을 울린다
“구루물과의 리허설은 끔찍했다. 그가 하는 음악은 사랑노래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스팅은 구루물의 팬이 되길 주저하지 않았지만, 그와의 합동공연이 불편했음을 고백했다. 유튜브에선 구루물이 스팅, 엘튼 존 등 기존의 기성 가수들과 공연한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것을 보면 스팅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노래는 분명 영혼을 울리지만, 잘 세공된 물질사회 속에 잘못 도착한 듯 둥둥 떠있다. 6만년 동안 구전돼온 조상, 삶, 자연 이야기를 노래하는 그가 스팅의 ‘에브리 브레스 유 테이크’를 부른다? 감동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다.
구루물은 호주 원주민이며 선천적 시각장애인이다. 그의 고향은 호주 북부의 작은 섬 엘코. 세상에 이 섬이 알려진 것은 불과 200년 전이지만, 이 섬에 구루물의 조상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6만년 전부터다. 여전히 씨족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는 이곳의 아이들은 네 아이 내 아이의 구분없이 공동양육된다. 구루물은 호주의 음악 감독 마이클 호넨을 만나면서 2008년 이 음반을 제작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음반은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에 100만장이 팔렸고, 구루물은 영국의 월드뮤직 전문지 ‘송라인스’의 2009년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음반은 12곡의 아름다운 노래로 채워져 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노래가 인간도 언어도 있기 전부터 존재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구루물이 속한 구마티부족민들은 구루물의 노래를 모두 자신의 노래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단출한 기타 반주와 그의 귀기어린 목소리만으로 이뤄지는 노래들은 언뜻 모던 포크를 떠올리게 하지만, 영적인 분위기를 띈다. ‘주황발 무덤새’ ‘무지개’ ‘아버지’ ‘천둥’ ‘Galupa라고 불리는 땅’ 등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이 살아온 땅과 조상과 자연에 대한 이야기다.
Geoffrey Gurrumul Yunupingu - Wiyathul (주황발 무덤새)
구루물은 수년간 유럽과 미국 등지를 돌며 공연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다 지난 2010년 7월 돌연 유럽 투어를 모두 취소하고 엘코섬으로 돌아갔다. 그는 다시 섬 밖으로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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