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기자
ㆍ‘이문원·묵계월·박윤정의 경기 송서’
‘한 노인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 사라지는 것과 같다.’ 아프리카 소말리족에게 내려오는 속담이다. 우리 국악계도 이 속담은 유효한 듯하다. 날로 피전승자들의 관심이 식어가면서 국악계의 소중한 자산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국악 음반 <이문원·묵계월·박윤정의 경기 송서>는 입으로 전해지는 구비전승(口碑傳承)의 묘미를 일깨우는 작품이다. 전승자와 피전승자 간의 남다른 열정과 노력에 대한 고민거리도 함께 부여하기에, 음반은 제법 묵직한 무게감을 갖는다. 용어 자체가 생소한 ‘송서(誦書)’는 액면 그대로 ‘글을 소리 내어 읽는다’는 뜻을 지닌다.
조선시대 말 사대부들이 글을 읽을 때 소리를 붙인 행위가 어느새 음악 장르가 됐다. 송나라의 시인인 소동파의 시 ‘적벽부’, 당나라 왕발이 지은 산문 ‘등왕각서’ 등 다양한 문학작품에 특유의 멜로디가 붙어 있다.
조선시대 말 사대부들이 글을 읽을 때 소리를 붙인 행위가 어느새 음악 장르가 됐다. 송나라의 시인인 소동파의 시 ‘적벽부’, 당나라 왕발이 지은 산문 ‘등왕각서’ 등 다양한 문학작품에 특유의 멜로디가 붙어 있다.
대가 끊길 뻔했던 송서는 1930년대 경기민요 명창 고 이문원이 수집하고 체득해 수제자 묵계월(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사진 왼쪽)에게 사사했다. 다시 소리꾼 박윤정(오른쪽)은 묵계월로부터 송서를 익혔다. <이문원·묵계월·박윤정의 경기 송서>는 경기 지역에 유행했던 송서가 3대에 걸쳐 어떻게 전승됐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고 이문원이 생전 녹음 테이프에 담았던 ‘삼설기’ ‘등왕각서’ ‘짝타령’ 세 곡이 복원돼 실렸다. 지난해 구순을 맞은 묵계월과 25년째 경기소리를 익혀온 애제자 박윤정은 ‘삼설기’와 ‘등왕각서’ ‘짝타령’ ‘적벽부’ 등 네 작품을 이른바 ‘듀엣’으로 불러 음반에 수록했다.
그 어떤 악기의 반주 도움없이 3대의 목소리만 흘러나오는 음반은 몇 대째 대물림된 낡은 식당에 들어선 듯한 환상을 불러낸다. 투박하고 흠집 가득한 질그릇에 담았지만 진하게 우려낸 맛이 일품이다. 따분한 공부에 지친 나머지 몸을 좌우로 흔들며 ‘송서’를 부르고 있을 조선시대 사대부들을 잠깐 동안만이라도 떠올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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