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 초연된 발레 <해적(Le corsaire)>은 영국 시인 바이런의 서사시 ‘해적(海賊)’을 바탕으로 아돌프 아당이 작곡하고 마리우스 프티파가 안무했다. 해적 콘라드가 터키 상인의 노예로 팔린 그리스 소녀 메도라를 구하는 무용담과 러브라인이 기둥 줄거리다. 오스만 할렘의 이국적인 풍경과 전투장면이 인상적인데, 난파·납치·배신·반란·구출 등 역동적인 장면이 많아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가수 조용필 19집 앨범 <헬로>의 불법 복제 음반 (경향DB)
그러나 작품 속 착한 ‘해적’과 달리 진짜 해적은 잔인하다. 통제불가능한 바다에서 그들은 순식간에 약탈 대상인 배에 올라타 모든 것을 앗아간다. 국내에선 반세기 전부터 해적판 음반(일면 빽판)과 해적판 원서가 통용되면서 ‘해적’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 당시 구하기 힘든 원서나 원반은 고가에 거래돼 서민들은 싼값의 해적판을 구입하곤 했다. 음반가게에선 원반과 함께 빛바랜 녹색이나 푸른색으로 복사된 앨범 재킷이 버젓이 진열됐다. 저작권의 개념이 희박할 때였다.
해적판은 우리나라가 1987년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불법복제 후 유통·판매되는 소프트웨어, 서적, 영화, 드라마, 만화, 음반 등이 부지기수다. 영화계는 2009년 영화 <해운대>가 불법 다운로드로 320억원의 피해를 입는 등 2011년 기준 영화산업 피해액이 약 8000억원에 달한다. 소프트웨어의 온라인 불법복제 피해액도 연간 1000억원에 이르지만 실제 규모는 몇 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가왕 조용필(63)의 19집 앨범 <Hello(헬로)>의 해적판이 음반매장에서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이 앨범은 발매 첫날인 지난 23일에 2만장의 첫 주문 물량을 비롯해 총 3만장이 매진됐으며 추가 주문 물량도 7만장에 달해 두 개 공장에서 밤낮없이 앨범을 찍고 있다고 한다. 음반 부족으로 등장한 해적판은 오프라인 가요음반시장의 85%를 장악한 조용필의 폭발적 인기를 입증하는 셈이지만 조용필 신드롬에 딴지를 거는 행위이기도 하다. 실로 오랜만에 등장한 해적판 음반 소식에 빽판의 추억에 잠겨본다. 그러나 음반의 정상적 유통과 창작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선 해적판에 대한 신속한 수사와 처벌이 따라야 한다. ‘음원차트 올 킬’ ‘1분당 1.4개씩 판매’의 조용필 현상으로 되찾은 음반시장의 활력은 지속돼야 한다.
유인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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