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이 된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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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이 된 음악

사람의 생명은 그 자체로 존귀한 것이고 그 어떤 것도 살인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층간소음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황당한 뉴스를 들을 때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것이었다. 소음이 주는 고통은 당하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다. 특히 반복적인 소음인 경우, 들릴 때는 들려서 괴롭고 들리지 않을 때는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몰라 불안하다. 소음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신경성 노이로제를 호소하는 것이 때문이리라.



층간소음뿐이랴. 어디를 가도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없다. 도심 한복판이 시끄러운 것은 그렇다고 해도, 머리를 식히려고 찾은 등산로에서조차 소음이 넘쳐난다. 대형 스피커가 쏟아내는 노랫소리를 듣자면 음악이 이토록 사람을 괴롭힐 수도 있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층간소음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 윗집 형제를 숨지게 한 용의자 (경향DB)



이제 음악도 소음이 돼버렸다. 이웃집 아이가 두드려대는 피아노 소리나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휴대폰 벨소리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에서 옆 사람의 이어폰 속 노래는 음악이 아니라 신경을 찌르는 날카로운 바늘이다. 전화를 걸어 상대방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우리는 음악을 빙자한 소음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음악이라는 것이 본시 인간이 듣기 좋으라고 노력해서 만들어낸 소리가 아니던가? 어떻게 음악이 우리를 이토록 괴롭히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음악은 하모니에 기초한다. 서로 다른 소리가 조화롭게 어울리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순치하고 감동을 주는 것이다. 동양은 질서라는 이데올로기에 기초해서 음악을 통치 수단으로 보았고, 서양은 음악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중시했지만, 음악이 소리들의 어울림이라는 점은 어느 문화에서나 공통적이다. 그러나 이제 음악은 사람들을 화합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갈등과 분쟁을 야기하는 또 다른 불씨가 되고 말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늘 지나친 것이 문제다. 음악에 관한 한 현재의 우리들 모두는 과거 어떤 왕도 누리지 못했던 호사와 풍요를 누리고 있다. 음악가를 고용해서 숙식과 보수를 제공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세계 최고 수준의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모든 음악이 생음악이었던 시절,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과 그것을 듣는 사람은 모두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녹음과 재생기술 덕분에 우리는 음악을 듣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이제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세상의 모든 음악을 불러 올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그것이 음악에는 축복이자 저주다. 아무도 예전처럼 음악에 집중하고 감동하기 어려워졌으니까. 베토벤이 한 소녀를 향한 깊은 사랑을 담아 작곡했던 ‘엘리제를 위하여’는 아파트 인터폰과 후진하는 트럭이 쉼 없이 울려대는 소음일 뿐이다. 시작 부분만 무한 반복되는 엘리제 앞에서는 베토벤조차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 얼마 전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에 갔다가,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흘러나와 꽤 당황했던 적이 있다. 알록달록하게 차려입은 상춘객들의 들뜬 고함 소리들과 섞여서 들리는 죽은 영혼을 위한 비감한 진혼곡이라니.



음악도 우리에게 소중한 삶의 일부이자 환경이다. 음악이 없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있을 때 소중히 여기고 망가트리지 말아야 한다. 공기나 산, 강처럼 말이다. 무분별한 개발은 환경을 파괴하고 우리의 심성까지 병들게 만든다. 음악을 소음으로 전락시키고 나면, 정작 우리를 위로하고 힘을 줄 음악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인간의 욕심이 화근이다. 어설프게 자연을 건드리는 것이 얼마나 큰 재앙인지 4대강에서 충분히 배우지 않았는가? 산림에만 휴식제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음악에도 절제와 조절이 필요하다. 소음처럼 듣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듣지 말자. 침묵도 음악이다.



민은기 | 서울대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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