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서도 한참 떨어진 수원에서 작업하고 있는 늦깎이 화가이다. 화가인지라 아무래도 한국에서 돌아가고 있는 화단의 이모저모에 대해 관심이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평소에는 별로 눈여겨보고 있는 편은 아니다. 미술작업이라는 것이 작업에만 몰두해도 시간이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태도가 매우 고루한 이기심의 결과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매우 종종.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요즘 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에 관한 기사를 읽을 때마다 꼭 하고 싶은 얘기가 떠오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기관이다. 2013년 경복궁 옆에 서울관이 개관하면서 국립기관으로서의 상징성도 커졌다. 관객들도 훨씬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제도적으로 아직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국 미술도 나라의 품격에 맞는 변화를 기대하는 마음이 어느 때보다 크다. 때마침 새로운 관장을 선택하기 위한 절차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그동안 언론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신임 관장에게 필요한 자질과 역할을 논하는 의견들이 적지 않게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어찌 보면 문제는 단순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직에 걸맞은 인물을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앞으로 잘할 사람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잘해왔던 사람을 뽑으면 된다. 그게 상식이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다루는 첨병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라도 균형 잡힌 시각과 안정적인 실행력을 필요로 한다. 까다로운 현대미술을 정교하게 연출할 수 있는 능력은 무엇보다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다. 당연히 대형 전시를 몇 개, 비엔날레를 몇 번, 미술관을 몇 년 운영했다는 숫자의 덧셈으로 측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실제로 공공 미술관 운영 경험과 다양한 전시 및 수집 활동을 통해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그래서 우리의 미술 현장을 변화시킨 결과를 가져온 분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 한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기관으로서 나라 안에서의 성과는 밖으로도 통해야 한다. 1980년대 초반부터 민중미술과 페미니즘을 뿌리로 미술활동을 해온 작가로서 나는 특색 없는 국제주의와 순수주의 미학에 커다란 불신을 갖고 있다. 그사이 시대와 사회가 변했고 현대미술의 지형도 많이 바뀌었다. 세계 미술에서 정치적 미술은 이미 보편화되었고, 한국 미술은 이런 국제적인 요청에 응대할 콘텐츠를 벌써부터 확보하고 있었다.
그동안 해외 비엔날레와 국제 전시에 초대된 경험을 돌아보건대, 국립현대미술관의 역할이 아쉬운 적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특히 한국의 새로운 세대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보다는 오히려 작가들이 국립현대미술관을 알리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한국 현대미술의 기세가 남다르다고 느끼는 요즈음, 현대미술의 당대성을 다루어야 하는 현대미술관장에게 국제적인 미술 감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포용적인 분이 오셨으면 좋겠다. 포용력은 인격과 윤리의 차원이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를 가르고 있는 젠더와 계층, 인종 등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과 관계가 깊다. 그렇다고 그저 두루뭉술하게 다 껴안고 간다기보다는 차이를 인식하고 제대로 해석해서 미술의 현대적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실력이야말로 이 포용력에서 제일 중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1982년 마흔이 넘어 첫 전시를 개최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국내외 여러 전시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한국 미술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확실히 미술 분야의 전문역량도 축적됐다고 느낀다.
더 이상 실력과 자격이 있는 사람을 제치고 ‘정치적인’ 인사를 감행하는 방식으로 미술계를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행히 우리 사회문화 전반에 큰 변혁을 불러온 ‘촛불시위’를 거치며 문화체육관광부도 체질 변화가 이뤄졌으리라 믿는다. 이전 정부의 인사상 병폐를 반면교사로 삼아 객관적이고 엄중한 전문가 선임 절차를 밟으리라 기대한다. 부디 이 예상이 맞기를 바란다.
<윤석남 |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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