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1965년. 애드리안 크로너는 미 공군 방송의 DJ로 근무하기 위해 베트남 사이공(현 호찌민)으로 향한다. 담당 장교는 크로너와의 첫 만남에서 밥 딜런의 음악은 방송 불가 대상이라고 경고한다. 이후 크로너는 놀라운 입담으로 최고의 인기 방송 DJ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그의 자유분방한 성향은 군 상부층의 불만을 낳는다.
모든 전쟁에는 명분이 필요하다. 자국민과 주변국의 비판 여론하에서 전쟁을 주도하기란 결코 수월하지 않다. 1964년 8월2일 미국 언론은 베트남 연안에서 정찰 중이던 미군 구축함이 북베트남의 어뢰정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보도한다. 미 해군은 1명의 부상자도 없이 북베트남 어뢰정 3척을 파괴한다. 미 행정부는 이틀 뒤 북베트남 연안에서 활동하던 미 구축함에서 공격 신호를 감지했다고 발표한다.
(장면 2) 크로너는 사이공 현지인을 위한 영어학교 선생으로 활동한다. 그는 자신의 수업을 참관하는 베트남 청년과 가까워진다. 어느 날 청년의 도움으로 크로너는 폭탄테러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난다. 얼마 후 그는 동료 군인과 함께 지프를 타고 이동하다 교전지역에서 길을 잃는다. 이번에도 청년의 지원으로 무사히 군부대로 복귀하는 크로너.
통킹만 사건이라 불리는 북베트남군의 선제공격을 핑계로 미국은 기어코 베트남전을 시작한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북베트남은 다시 미국과 전쟁을 치르게 된다. 한국은 1964년 1차 파병을 한다. 1965년 미 공군은 북베트남에 대대적인 폭격을 실시하지만 전황은 여전히 미국에 유리하지 않았다. 같은 해 한국은 사단급의 전투병력을 동원하는 3차 파병을 단행한다.
(장면 3) 미군은 크로너를 도운 청년의 정체가 베트콩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로 인해 크로너는 퇴출명령을 받는다. 베트남전에 관한 비판을 접지 않았던 크로너는 전쟁으로 얼룩진 나라를 떠난다.
위 장면들은 로빈 윌리엄스가 열연한 영화 <굿모닝 베트남>의 줄거리다. 미국 정부는 감춰두었던 통킹만 사건의 진실을 밝힐 문서를 공개한다. 이라크전과 마찬가지로 통킹만 사건은 미국의 조작극으로 밝혀진다.
존슨 대통령은 사석에서 ‘미 해군이 고래를 쏘았을 뿐’이라고, 보복공격의 진상을 실토한다. 미 항공기 조종사의 회고록에서도 북베트남 함정의 공격이 없었다는 증언이 이어진다.
미국은 애초부터 베트남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부패한 남베트남 정부에 항거하는 남베트남인을 과소평가했다. 1972년 베트남에는 미군보다 많은 한국군이 주둔했다. 파월 한국군은 참전 기간 동안 5000여명의 전사자를 낸다. 1975년 미국은 악화된 여론과 재정상황을 이유로 베트남전을 포기한다. 워싱턴의 베트남전 참전용사기념관에는 다음과 같은 편지가 놓여 있다.
‘20년간 나는 지갑에 당신의 사진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마주했던 날 나는 18살이었죠. 당신이 왜 나를 죽이지 않았는지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소총을 겨눈 채 오랫동안 나를 응시했습니다. 당신의 생명을 취한 나를 용서하세요. 나는 훈련대로, 베트콩을, 하찮은 황인종을 사살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어요. (중략) 나의 고통과 죄의식을 벗어던지고 남은 생을 이어나갈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다시 만날 날이 있을까요. 그때까지 영면하기 바랍니다. 101공수여단, 리처드 러트럴.’
<굿모닝 베트남>의 압권은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 ‘왓 어 원더풀 월드’가 흘러나오는 장면이다. 영화는 노래와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치닫는 베트남전을 고발한다. 전쟁의 참상 앞에서 이해보다 냉소로 맞설 수밖에 없었던 크로너. 그는 언제쯤 베트남에 아름다운 이별을 고할 수 있을까.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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