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고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이론이 있다. 미국 경제사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바누아투나 방글라데시처럼 경제적으로 가난한 국가의 행복지수가 미국, 프랑스보다 높게 나타나는 상황에서 ‘이스털린의 이론’을 발견한다.
관련 이론은 미술계에서도 적용한 사례가 있다. 네덜란드 예술가이자 사회경제학자인 한스 애빙은 소득수준이 낮음에도 예술가를 희망하는 예술경제의 패러독스에 의문을 가진다. 그는 작품활동보다 돈, 명성, 인지도와 같은 외적 보상을 추구하는 상업예술가와 작품활동 자체에 몰두하는 순수예술가를 주목한다. 전자는 앤디 워홀, 후자는 반 고흐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한편 현대미술시장에서 반 고흐의 사례는 더 이상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존재한다. 요점은 상당수의 예술가에게 외적 보상이란 작품활동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라는 인식이다. 이는 무한수익을 추구하는 경제이론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모든 기업은 사라지지만 모든 예술작품은 존재감을 남긴다. 한스 애빙은 현대예술의 복잡다단한 측면과 이중성에 집중한다.
중국 미술의 사대천왕이라 불리는 웨민쥔은 어떨까. 냉소적 사실주의 예술가로 불리는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내 작품 속 인물은 모두 바보 같다. 그들의 웃음에는 강요된 부자유스러움과 어색함이 내재한다. 나는 이들을 통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며 행복해하는 현실을 묘사한다. 이들은 나의 초상이자 친구들의 모습이며,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중국 사회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작품으로 표현한 웨민쥔. 그는 ‘웃음 시리즈’를 통해 천문학적인 재산을 축적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 역시 한스 애빙이 주장한 예술한계효용의 법칙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예술활동을 통해 중국 미술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 잡은 웨민쥔. 하지만 그는 전업예술가로서 변화가 절실했다. 결국 돈벌이가 되는 ‘웃음 시리즈’를 접고 다른 형태의 예술작업을 시도한다.
문제는 미술시장에서 웨민쥔의 새로운 화풍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고심 끝에 부와 명예를 확보해준 본래 작품의 세계로 회귀한다. 앞으로 웨민쥔의 행보는 예상할 수 없다. 참고할 점은 웨민쥔이 이스털린의 법칙에 근접할 만한 경제적 반사이익을 확보한 선택받은 예술가라는 것이다. 모든 예술가가 웨민쥔의 사례를 흉내내기란 불가능하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맹주를 노리는 중국의 현실을 비판한 작품은 다음과 같다. 팡리준의 ‘대머리 시리즈’, 쩡판즈의 ‘가면 시리즈’, 장샤오강의 ‘혈통 시리즈’가 그것이다. 이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오가는 권력자와 이들의 철권통치 속에서 허덕이는 민중의 혼란을 작품으로 담아낸다. 사회의 급속한 변화는 늘 정신적인 영양실조를 부르기 마련이다.
갤럽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1950년대 이후 꾸준히 늘어났지만 행복도는 오히려 추락하는 현상을 보였다. 하지만 부자의 행복은 환상일 뿐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이스털린의 역설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경제적 만족이라는 계량수치를 도입할 경우 도대체 어디까지가 만족선인가를 평가하는 기준이 지역, 연령, 직업, 소득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2018년 유엔 자문기구에서 조사한 세계 행복지수에서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가 차례로 1·2·3위를 차지했다. 세계 경제 10위권이라는 한국은 57위를 기록하여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보다 하위에 머물렀다.
예술가의 생을 위해 젊음을 바친 고흐의 삶을 단지 경제력이라는 잣대만으로 재단할 수는 없다. 행복의 조건이란 생각처럼 단순하거나 직선적이지 않다. 이스털린의 역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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