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술에 대해 물으면 넌 온갖 정보를 다 갖다 댈걸? 미켈란젤로를 예로 들어볼까? 너는 그에 대해 잘 알 거야. 그의 걸작품이나 정치적 야심, 교황과의 관계와 성적 취향까지도 말이야. 하지만 시스티나 성당의 냄새가 어떤지는 모를걸? 한 번도 그 성당의 아름다운 천장화를 본 적이 없을 테니까.”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남자. 숀 맥과이어는 윌 헌팅과 대화를 시도한다.
윌 헌팅. 수학, 역사, 법학에 이르기까지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주는 청년의 이름이다. 성장기의 상처와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윌을 치료하려는 숀 맥과이어 교수. 그는 윌 헌팅이 가진 방대한 지식의 한계를 꼬집는다. 이탈리아 미술가를 예로 들면서 경험과 감정과 지식의 차이를 설명하는 숀 맥과이어. 순간 방어적이고 폐쇄적이었던 윌 헌팅의 표정이 달라진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굿 윌 헌팅>은 소통의 의미를 암시하는 영화다. 책에서 얻은 지식으로 자신을 방어하려 드는 윌 헌팅. 숀 맥과이어는 주기적으로 윌 헌팅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네가 뭘 느끼고 어떤 사람인지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만 읽어보면 다 알 수 있을까? 그게 너를 전부 설명할 수 있을까?” 숀 맥과이어의 발언에서 어떤 이론이 떠올랐다.
이름하여 머레이비언의 법칙이다. 심리학자 앨버트 머레이비언 교수는 인간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할 때 말의 의미보다 목소리, 음색, 얼굴표정과 같은 비언어적인 요소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지금처럼 문자 위주의 소통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1971년에 등장한 이론이었다. 머레이비언에 따르면 윌 헌팅이 드러내는 문자정보가 의사소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에 불과하다. 반면 음색과 목소리에 해당하는 청각정보는 38%를 차지하며 눈빛, 몸짓, 표정에 속하는 시각정보의 비중은 무려 55%에 달한다. 문자정보의 8배에 달하는 소통이 시각정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셈이다. 흔히 말하는 첫인상이 과소평가할 부분이 아니라는 이론이다.
개인적으로 1년6개월간 카톡으로만 소통했던 인물이 있다. 2017년에 출간한 책의 교열교정을 담당했던 출판사 직원이었다. 정확하고 빠른 일처리 덕분에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취향에 관한 신간을 준비하면서 그와 대면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예상대로 카톡으로만 주고받던 느낌과는 다른 부분이 적지 않았다. 비언어적 요소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숀 맥과이어는 이미 머레이비언의 법칙을 이해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윌 헌팅과의 첫 만남에서 내면의 공허함을 메우려고 피상적인 지식에 집착하는 타인의 자아를 발견한다. 만일 두 남자가 비대면 방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치료는커녕 오해의 골만 깊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숀은 마지막 상담에서 청년을 끌어안는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위로를 건네는 비언어적 표현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백인이라는 인종자본과 천재라는 지적자본의 소유자다. 여기에 미국인이라는 국적자본까지 장착한 선택받은 인물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주인공은 소통의 비교 우위를 점한 자에 해당한다. 결국 윌은 자신이 포기했던 인연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엘리엇 스미스의 주제곡 ‘Between the bars’가 인상적인 영화 <굿 윌 헌팅>. 머레이비언의 연구결과가 나온 후 약 50년이 흘렀다. 과연 무엇이 변했을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SNS를 활용한 실시간 소통이 일반화되었다. 대면보다 비대면 소통에 익숙한 Z세대가 등장했다. 깊이가 사라진 인간관계가 자리를 잡았다.
비대면 소통에서 발생하는 오해나 착각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그렇다고 바쁘고 복잡한 세상에서 대면 소통만을 반복하기도 쉽지 않다. 머레이비언의 법칙이 여전히 유효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는 편리한 단절보다 불편한 소통을 고려하는 현대인의 마음에 달려 있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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