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송사에 기록될 만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4일 밤 케이블채널 tvN의 드라마 <화유기> 2회는 두 차례 방송이 중단된 끝에 단축방송됐다. 9시에 시작한 드라마는 9시40분쯤 중간광고를 내보낸 뒤 다른 프로그램 예고편을 10여분 송출했다. 이후 방송이 재개됐으나 10시20분쯤 중단되고 15분간 예고편만 나왔다. 다시 6분가량 드라마가 방송되는가 싶더니 10시41분 돌연 종료됐다. 정상적으로 방송된 부분조차 ‘정상’은 아니었다. 와이어에 매달린 스턴트맨이 날아다니는 장면이 그대로 노출됐다. 컴퓨터그래픽(CG)을 통해 요괴로 변환시켰어야 하는데 원본을 내보낸 것이다. 충분한 기간·인력을 투입하는 대신 사실상 실시간으로 제작하는 ‘생방송 드라마’의 고질적 병폐가 부른 참사로 봐야 한다.
tvN 측은 “CG 작업 지연으로 인해 미완성 장면 노출 및 장시간 예고로 시청에 불편을 드리게 되었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방송 2회 만에 초대형 사고를 내고 CG 작업 지연을 이유로 대는 건 구차하다. 일반 드라마보다 후반 작업이 더 오래 걸리는 작품이라면 사전제작 또는 반사전제작을 했어야 옳다. 준비가 덜 되었다면 편성 시점을 늦췄어야 한다. tvN은 이런 사고가 처음도 아니다. 2013년 <응답하라 1994> 때도 방송 도중 다른 프로그램이 갑자기 흘러나오고 과거 예고편이 재방되는 사고가 있었다. 제작진은 “편집 지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해에는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이던 이한빛 PD가 외주제작사 직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tvN은 거듭되는 사고와 비극에도 자성은 없는 듯하다. 지상파 못지않은 영향력을 자랑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의식은 부족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화유기 사태’는 물론 특정 방송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상파 방송사의 대다수 드라마도 마치 생방송처럼 제작되고 있다. 신(scene)마다 쪼개서 촬영 현장에 전달되는 ‘쪽대본’이 일상이고, 주요 배역을 맡은 배우가 부상이라도 입으면 곧바로 결방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방송 전파는 공공재다. 시청자에겐 완성도 높은 작품을 볼 권리가 있고, 제작 현장의 노동자들에겐 보호받아야 할 권익이 있다. 더 이상 시청률이나 간접광고(PPL)를 핑계 삼지 말고 드라마 제작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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