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찬의 우회도로]‘기생충’은 무엇을 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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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블라블라

[백승찬의 우회도로]‘기생충’은 무엇을 말하나

*영화 <기생충>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계급 투쟁과 혁명에 대한 노골적 은유였던 봉준호의 <설국열차>(2013)는 어렴풋한 희망과 함께 끝났다. 빙하기 생존자들이 탑승한 열차에서 ‘꼬리칸’의 하층민은 반란을 일으킨 뒤, 급기야 열차를 탈선시켜 멈춰세운다. 열차 안에 널리 퍼져있던 지식과는 달리, 열차 바깥에는 생명체가 살아 있었다.    


2년전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옥자>는 동화적인 결말을 냈다.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는 글로벌 식품기업에게 도축당할 뻔한 슈퍼돼지 옥자를 되찾아 고향으로 돌아왔다. 강원도 산골은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평화롭다. “옥자와 미자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자막이라도 넣고 싶을 정도였다. 


두 전작들과 비교하면 봉준호의 신작 <기생충>의 결말은 사실상 파국이다. 10명의 주요 등장인물 중 4명이 칼에 찔리거나 계단에서 굴러 죽는다. 살아남은 6명중 3명은 전과자가 되고, 그중 하나는 살인 혐의로 수배돼 끝없는 도피에 들어간다. 나머지 3명조차 눈 앞에서 벌어진 참극에 남은 생은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친구 민혁(박서준)이 기우(최우식)에게 이 산수경석을 선물로 준다. 기택(송강호) 가족은 이 수석과 함께 많은 일을 겪는다. CJ E&M 제공


영화가 파국이라 한 건 등장인물들이 불행에 빠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종반부 ‘가든 파티’에는 이전 봉준호 영화에서 보지 못한 잔혹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연쇄살인을 다룬 <살인의 추억>(2003)에서조차 살인 장면을 뚜렷하게 보여주지 않았던 봉준호는 <기생충>에선 초등학생 생일 파티에서 벌어진 살인극을 눈앞에서 벌어진 듯 묘사한다. 돌로 사람 머리를 깨고, 칼로 찌르고, 산적용 꼬치로 쑤신다. 백주의 평화로운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욱 충격이다. 


이 결말이 갑작스럽긴 했지만, 영화의 흐름상 비논리적이진 않다. 박 사장(이선균) 저택의 숨겨진 지하공간이 드러나면서 <기생충>의 분위기는 급변한다. <기생충>은 신흥 부유층과 그들에 기생하려는 하층민의 영리한 전략을 그려내던 블랙코미디였다가, 이 지점부터 하층민끼리의 아귀다툼, 상류층과 하층민의 갈등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며 기괴해진다. 박 사장의 부에 기생하기 위해 기택 가족과 문광(이정은) 부부는 목숨을 걸고 싸운다. 박 사장은 기택(송강호)이 ‘선을 넘지 않아 좋다’고 하다가도, 그의 냄새만은 선을 넘는다며 비웃는다. 서사가 이렇게 진행되면 모든 등장인물이 만족할만한 합리적이고 평화로운 결말은 기대하기 어렵다. 


턱시도 입은 영화 엘리트들의 모임인 칸영화제는 이 파국의 계급갈등 드라마에 최고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여했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창동의 <버닝> 역시 계급갈등 드라마였다. <기생충> 속 박 사장네 사람들이 기택 가족에게 친절했듯이, <버닝>의 부유한 벤 역시 가난한 종수를 스스럼없이 대한다. 벤은 친절하고 매너좋은 사람이지만, 종수를 향한 태도 이면엔 묘하게 기분 나쁜 구석이 있다. 벤은 종수를 향해 악의를 드러내거나 해치려 한 적도 없지만, 종수는 결국 벤을 허허벌판에 불러내 살해하고 그의 포르쉐를 불태운다. 


최전선의 한국영화인들이 2년 연속 칸에 보낸 영화에는 양극화, 계급갈등, 빈자의 분노가 담겨 있었다. 이것이 한국의 특수상황이 아니라는 점은 칸에서 <기생충>을 본 외국인들이 한결같이 “우리나라 이야기 같다”고 말했다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 다른 계급에 속한 두 사람이 만나서 갈등하다가 결국 누군가 누군가를 죽이는 결론, 친절이나 호의가 이 아슬아슬한 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결론이 잇따라 나왔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봉준호의 영화는 배우의 연기, 서사의 흐름, 은유의 유효성이 매우 세심하게 조율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기생충>에서 ‘수석’ 은유만큼은 유독 튀었다. 명문대 재학생 민혁(박서준)이 4수생 친구 기우(최우식) 앞에 갑자기 나타나 수석을 준다는 점, 물난리가 난 반지하 집에 들어간 기우가 다른 것은 제치고 물에 둥둥 뜬 수석을 들고 나온다는 점, 지하공간에 감금된 이들을 죽이기 위해 기우가 굳이 수석을 들고 간다는 점이 그렇다. 


지난 토요일 오전 조조로 <기생충>을 보았다. 극장의 주요 관객층이 아닌 40~50대 관객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분명 ‘황금종려상 효과’ 같았다. 하지만 관람후 극장을 나서는 표정들이 썩 밝지만은 않았다. 화창한 주말 오전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한 조각 현실을 얼떨결에 목격해버린 듯한 표정이었다.  


내겐 <기생충>이 깔끔한 거실 한복판에 놓인 기괴한 수석같은 영화로 보였다. 얼떨결에 <기생충>을 본 관객들에게도 그랬을 것 같다. 보고 싶지 않아도 자꾸 눈에 들어오고, 지나쳐 가도 자꾸만 생각이 난다. <기생충>은 훌륭하다. 황금종려상으로 국위를 선양해서가 아니라, 관객에게 분노든 불쾌든 각성이든 어떠한 감정이나 말을 유발하고 그것들이 유래한 사회적 조건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