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주전장’과 ‘영화 김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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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블라블라

[정동칼럼]‘주전장’과 ‘영화 김복동’

일본 아베 정권의 대(對)한국 수출규제로 촉발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한창인 가운데 <주전장(主戰場)>과 <영화 김복동>, 두 다큐멘터리영화가 화제다. 지난 7월25일 개봉한 <주전장>은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 감독의 작품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일본 우익의 민낯을 낱낱이 들춰낸다. 감독이 지난 3년여간 한국과 미국, 일본을 넘나들며 직접 진행한 30여명의 활동가·정치인·연구자들의 인터뷰와 수집 문서자료를 바탕으로, 위안부 문제의 쟁점을 둘러싼 진보·보수 양측의 논거를 교차 편집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감독의 문제의식은 일본의 인종주의에서 출발한다. 일본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던 당시 일본의 인종주의와 차별을 지적하는 유튜브 동영상을 올린 후 극우 민족주의자에 시달리던 감독은, 같은 집단에 시달리던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에게 주목한다. 그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일본에 최초로 보도하며 위안부 문제를 일본 사회에 던진 인물이다. 일본의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실체는 무엇인가. 주요 쟁점은 무엇인가. 감독은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 하나하나에 문제풀이를 시도한다. 병렬적 구조로 답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단단한 과일껍질 벗기듯 동심원 구조로 문제의 핵심에 깊숙이 들어간다. 


‘일본 불매 운동’ 상징 로고와 개봉을 앞둔 항일 관련 다큐멘터리와 영화 포스터. 개봉 앞둔 항일 관련 영화들.


영화는 “위안부는 매춘부였다”라는 익숙한 주장에서부터 난징 대학살 ‘날조설’을 거쳐 “(소녀상 옆에서) 이 추악한 대형 쓰레기에는 종이봉투가 딱이다” “한국은 시끄럽게 구는, 버릇없는 꼬마처럼 귀여운 나라다”라는 등의 일본 우익들 발언을 전달하고, 이를 반박하는 다른 활동가와 연구자들의 주장과 자료를 통해 관객의 판단을 유도한다. 한 걸음 물러난 듯 보이는 감독의 위치는 일본 우익의 수상한 로비와 역사왜곡의 체계적 과정을 정면으로 직시하면서 화면 위로 튀어 오른다. 역사적인 것, 외교적인 것, 정치적인 것은 무엇인가. 인종차별, 성차별, 제국주의, 식민주의는 어떻게 교차하며 재생산되는가. ‘2015 한·일 합의’에 항의하며 외교부 고위 공무원에게 호통치는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으로 시작해 김학순 할머니의 1991년 공개 기자회견장의 발언으로 영화가 마무리되는 이유다. 


8월8일 개봉할 <영화 김복동>은 올해 초 세상을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에 대한 영화다. 1992년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 이후 27년간, 할머니가 어떻게 살아오고 싸워왔는지 일상과 공적활동을 담담하게 포착해낸 다큐멘터리다. 감독인 ‘뉴스타파’의 송원근 프로듀서는 자신이 직접 찍은 영상 이외에 음성파일, 사진, 다른 사람이 찍은 비디오 등으로 할머니의 삶을 조명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책임을 우회적으로 건드린다. 미디어 몽구와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정의기억연대 측과 함께한 사실상의 공동 작업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할머니의 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들이 배우 한지민씨의 내레이션과 가수 윤미래씨의 노래에 덧입혀져 풍부하되 절제된 감정구조를 구축한다. 


“저는 서울에서 온 피해자, 나이는 90세, 이름은 김복동.” 세계를 누비며 증언했던 할머니, 재일조선인 학교 청소년들과 만나고 이들에게 남은 전 재산을 기부하는 할머니, 암과 싸우는 와중에도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위해 1인시위를 감행하는 할머니, “우리는 용서해 줄 준비가 되어 있는데”라며 당당하게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할머니. 생전의 할머니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은, 역사 속에서 아무런 이름도 없던 존재, 아니 지워져야만 했던 한 여성이 어떻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집단 정체성을 획득하고, 인권운동가로 살아가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외로운 피해자가 활동가들과 만나고, 이들이 손잡고 공감하는 대중들을 확장시켜가는 과정 속에 무심했거나 무지했던 나는 어디에 있었는지 질문하게 되고, 그들이 좌절하고 아파하는 장에 혹시나 작용했을지 모를 나의 역할을 성찰하게 된다. 


<주전장>이 정지된 머리를 흔들어 이성적 판단을 이끌어 낸다면, <영화 김복동>은 딱딱한 심장을 공략해 정치적 판단을 중지시킨다. <주전장>이 문제 발생과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원인을 찌른다면, <영화 김복동>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넌지시 던진다. <주전장>의 크고 날카로운 칼날이 외부를 겨누고 있다면, <영화 김복동>의 작은 비수들은 아프게 내부를 향하고 있다. 그래서 두 영화는 반드시 한 쌍으로 묶어서 봐야 한다. 


오는 8월14일은 1992년 1월부터 진행된 수요시위가 1400차를 맞이하는 날이다. 그 자리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지켜낸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하면서, 일본을 향한 우리의 분노가 어떻게 가야 할지 두 영화를 통해 가늠해 보시길 진심으로 권한다.


<이나영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