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질문을 드려 보겠습니다. 혹시 ‘한국 사람의 목소리가 최초로 녹음된 음반’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최초의 가요곡’은 무엇일까요?
쉬울 것 같은 질문이지만, 현재로선 대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저도 때때로 특강 요청을 받고 나가 한국 가요사를 대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치곤 하지만, 최초와 관련된 이 같은 질문은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 합니다. 강사치고는 참 형편없는 경우가 될 것입니다.
다시 질문 하나 해봅니다. 가요나 가수에 관해 궁금한 게 있고, 또 듣고 싶은 음반이 있다고 치겠습니다. 이럴 경우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조용필의 데뷔 앨범, 주옥 같았던 산울림, 들국화의 굵직했던 음반이 듣고 싶다면 말입니다.
너무 먼 음반이라고요? 그렇다면 아직 팬층이 두터운 서태지와 아이들의 정규 1집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1990년대를 가로 질렀던 이 혁신과 같은 음반은 어디를 가야 구경할 수 있겠습니까. HOT, GOD 등과 같은 조금 철 지난 아이돌 그룹들의 음반은 또 어디에서 살펴볼 수 있겠습니까?
아쉽지만 찾을 곳이 마땅히 없습니다. 여러분이 논문을 준비 중이거나, 리포트를 쓰고자 한다면 이 막막한 문제를 체감해보실 수가 있을 겁니다. 방송사에 음반이 좀 정리가 돼있다고 할 테지만, 아시다시피 거긴 직원들을 위한 공간이지 보통 사람들은 엄두를 낼 만한 공간이 아닙니다.
기자들이야 가수나 기획사에 직접 물어볼 수가 있는데, 이 역시 답답하고 난처할 때가 훨씬 많습니다. 정규 앨범이 나온 정확한 연도나, 몇 장의 앨범이 지금까지 나왔는지를 물어보면 이랬다가 저랬다가, 본인들도 헷갈려하며 쩔쩔매기 일쑤입니다.
다시 ‘한국 사람의 목소리가 최초로 녹음된 음반’에 대한 질문으로 되돌아 옵니다. 대답은 그때그때 다릅니다. 뭔가가 발견될 때마다 자꾸 연도수가 앞 당겨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경기 명창 한인오, 관기 최홍매가 1907년 녹음한 음반이 그나마 수년전 발견되면서 질문의 답변은 ‘1907년’까지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글로만 따지자면 앞선 음반은 여러 개가 더 있습니다. 1886년 미국에 있던 한국 유학생 몇 명이 원통형 음반을 녹음했다는, 그에 앞서 1885년 박춘재가 녹음한 민요가 있다는 글도 어느 문헌에 잠시 등장합니다. 그 즈음 미국 영사 알렌이 미국 시카고 박람회에 국악인 10명을 데려가 녹음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역시 ‘음반’이 발견될 때까지는 일종의 설에 그칩니다.
한류니, K팝이니, 싸이니 하며 세계 각국 팬들이 온통 한국 음악을 주목하지만, 막상 우리네에는 그 흔한 음악 박물관 하나가 없습니다. 문화부, 그리고 산하 기관 관계자 중에도 음악 관련 자료를 수집하거나 분류하는 일에 관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할당된 지원금 또한 물론 없습니다.
대중문화계 전체가 그러하냐 하면 또 그러지도 않습니다. 영화 쪽은 한국영상자료원이라는 데가 있어서 영화 <아리랑>과 관련된 많은 사료를 세계 각지에서 추적하고 수집합니다. 그러나 옛 가요 음반의 복각과 수집은 현재 개인의 영역에 머물고 있습니다. 최근 만난 사이트 ‘퐁키’(www.ponki.kr·사진)의 운영자 김광우씨, 그리고 성공회대 외래교수 이준희씨 두 사람이 사비를 털고, 시간을 내서 10년 이상 하나씩을 모아왔죠. 10년째 ‘가요114’를 꾸리다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는데 최근 2년 만에 또 돈을 모아 사이트를 열었습니다.
이씨와 김씨의 짐을 누군가는 좀 덜어주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옛 가요 음반과 오늘날의 음반이 수집되고 함께 보관될 음악박물관, 그것 하나 나올 때가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강수진 기자 kant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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