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편집국 문화부의 가장 큰 연례행사인 신춘문예가 ‘거의’ 끝났다. 혹시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설명드리면 신춘문예는 신문사가 주최하는 문학 작가 등단제도다. 경향신문은 올해 시와 단편소설, 평론 부문을 공모해 1월1일자 신문 지면에 당선자를 발표하고 1~2일 이틀에 걸쳐 당선작을 실었다. 자격증 같은 것을 발급해주지는 않아도 당선된 사람들은 관례적으로 ‘등단작가’가 된다.
아직 공식 시상식이 남아 있으나 작품 심사와 당선 통보, 당선작 게재까지의 절차를 모두 마쳤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큰 숙제를 마친 느낌이다. 이렇게 쓰고 있자니 마치 내가 신춘문예 업무에서 큰일을 한 것 같다. 아니다. 담당기자는 따로 있다. 문학을 취재하는 동료가 이번 신춘문예의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맡아 진행했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것 역시 아니다. 나름 중요한 업무를 맡았다. 문의전화 응대였다. 신춘문예 응모를 위해 1년 동안 기다려온 수많은 분들과 통화하고, 그들의 온갖 질문에 답했다.
물론 자발적으로 그 일을 떠맡지는 않았다. 신춘문예 공지에 문화부 전화번호가 함께 나가는데, 내 자리 번호가 가장 앞에 쓰여 있어 가장 많은 전화를 받았을 뿐이었다. 그 공지를 누가 작성했는지는 굳이 찾아보지 않겠다.
비슷비슷한 질문에 비슷한 대답을 반복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이런 것들도 궁금하실까’ 싶은 문의에도 성실하게 답하려 노력했다. 내가 듣기에는 수많은 신춘문예 응모자 중 한 명의 사소한 질문일지 몰라도, 수화기 저편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절박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10여년 전 취업준비생 시절을 되짚어보면 입장 바꿔보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응모 마감일이 지나면서 문의전화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지난달 심사를 거쳐 당선작이 결정된 뒤 당선자들에게 개별통보를 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은 신춘문예 기간 중 가장 많은 일을 한 문학담당 동료가 맡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공식적으로 신춘문예 심사 종료를 알리지 않았는데도 이미 알음알음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다시 내 자리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경향신문 문화부죠?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전화드렸는데요. 혹시 신춘문예 당선자 개별통보 했나요?”
“네. 당선작이 선정돼서 이미 당선자들께는 연락드렸습니다.”
“아, 네……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휴~”
전화를 받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은 아니었다. 당선되지 않은 응모자의 한숨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건너올 때 어떤 말로 응대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빨리 수긍하고 끊어주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뒤에는 다시 힘을 내서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랐다.
누구나 쉽게 ‘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시대다. 서점들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한국문학 작품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많은 이들이 작가의 꿈을 품고 경향신문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려주었다. 시 786건(1건당 평균 5편), 소설 642편, 문학평론 18편이 마감일에 맞춰 도착했다. 미국, 프랑스, 인도네시아, 가나 등 해외 곳곳에서도 원고를 보내왔다. 응모작의 수준은 제각각이었겠지만, 자신의 글로써 타인들과 고민을 함께하고 사회와 호흡하겠다는 열망의 크기는 같았을 것이다.
낙선한 사람들에게 당분간은 어떤 위로도 소용이 없음을 잘 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경향신문과 심사위원들의 밝지 못한 눈을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신춘문예 작업에 ‘관여’했던 사람으로서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좀처럼 시도, 소설도 읽지 않는 시대에도 당신 같은 분들이 있어 다행입니다. 언젠가 당신의 글이 세상에 나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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