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권력의 미혹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한병태는 서울에서 지방 소도시의 초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그곳에는 엄석대라는 동급생이자 권력자가 버티고 있었다. 담임은 학급 운영의 전권을 엄석대에게 맡긴다. 한병태를 제외한 학우들은 엄석대를 위해 청소, 음식, 학용품, 대리시험에 이르는 상납행위를 반복한다. 그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학급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린다.
1999년 미국 대학교에서 흥미로운 실험결과를 내놓는다.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는 코넬대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독해력, 체스, 테니스 등의 사례 연구를 통해 능력이 떨어지는 인물의 공통적인 특성을 발견한다.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 불리는 이론은 이후 정치세계에서 실정을 거듭하는 권력자를 평가하는 잣대로 쓰인다. 다음은 연구에서 산출한 무능력자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다른 사람의 진정한 능력을 알아보지 못한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곤경을 알아보지 못한다. 훈련을 통해 능력이 매우 나아지고 난 후에야, 이전의 능력 부족을 알아보고 인정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엄석대는 더닝 크루거 효과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학우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건네지도 않았다.
더닝과 크루거는 무능력자의 착오는 자신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한 반면, 능력자의 착오는 다른 사람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다시 말하면 능력자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여 환영적 열등감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의 악순환은 엄석대에게 지속적인 공격과 무시를 당하는 한병태에게서 확인 가능하다. 한병태는 엄석대의 갑질에 저항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를 중단한다.
결국 한병태는 엄석대라는 권력의 그늘로 들어간다. 열매는 달콤했다. 마법처럼 한병태를 괴롭히던 급우가 사라졌다. 엄석대는 자신을 활용하는 노회한 담임선생처럼 한병태를 수하로 이용한다. 이제 엄석대의 비리에 맞서는 한병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병태는 파우스트처럼 자신의 영혼을 엄석대에게 바친다. 불의를 참지 못하던 한병태는 자진해서 불의를 일삼는 인간으로 변해간다.
아쉽게도 더닝 크루거 효과는 물음표를 남긴다. 반복훈련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인정한다는 가설은 무지하고 무능한 권력자에게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자란 항시 평균치보다 높은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생각은 명백한 착각이다. 자신만의 노력과 힘으로 권력의 정상에 올라선 인물은 극히 미미하다. 권력자는 주변인들로부터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이미지를 덫칠한다.
이야기의 반전은 예기치 못한 시점에서 일어난다. 젊고 강단 있는 담임선생이 학급에 나타난다. 그는 소설의 배경이던 자유당 정권에 맞서는 인물로 묘사된다. 엄석대의 비리를 확인한 담임은 모든 학생들에게 잘못이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엄석대 역시 만들어진 영웅에 불과했다. 소설은 공범 없이 존재하는 일그러진 영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엄석대는 무능력한 인물이었을까. 개인적으로는 그렇지만 사회적으로는 권력이라는 능력자의 조건을 갖춘 인물에 해당한다. 그는 자신의 추락을 예견하면서도 끝까지 권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게 바로 권력의 실체이자 속성이다. 수많은 권력자가 능력자라는 가면을 쓰고 독재와 탄압을 반복했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권력이라는 방패로 실정을 거듭했다.
대부분의 장기 독재자는 엄석대와 흡사한 문제점을 공유한다. 그들은 더닝 크루거 효과에 나오는 무능력자의 한계를 정치적으로 역이용한다. 내려가는 순간에야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는 세상의 독재자들. 능력자의 외관을 한 만들어진 영웅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의 일부분이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취향의 발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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