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계약의 상황에서는 의외로 다양한 문제가 소소하게 발생한다. 대개 그러한 문제들은 상황에 따라 협의하거나 합의해서 진행하는데, 대개 프로젝트의 성과가 소소하거나 일반적일 때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성과가 기대 이상이거나 스타 프로젝트로서의 연속성이 보장되어 2차, 3차 저작권으로 확대되면 실제 상호 간의 합의로 진행될 수 일조차도 법정까지 가게 된다. 국내 콘텐츠업계에서 대표적인 저작권 소송은 ‘리니지’와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이다.
리니지는 본래 신일숙 작가의 순정만화가 원작이다. 1997년과 1999년 엔씨소프트는 원작 사용에 대해 작가와 저작권 계약을 했다. 이후 엔씨소프트는 리니지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2000년 대형로펌에서 신일숙 작가를 대행하여 리니지의 해외 진출 및 캐릭터 사업은 계약서에 합의되지 않았다면서 이의를 제기했다. 양측은 법정 대리인을 내세워 물밑 협상을 진행하다 결국 결렬돼 본격적인 소송으로 갈 상황이었으나, 극적으로 합의했다. 엔씨소프트가 만화 리니지의 2차 저작권을 받는 대신 신일숙 작가 측에 일시불로 추가 원작료를 지급하고, 신일숙 작가를 고문으로 위촉해 매월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고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조건이었다.
이후 리니지는 MMORPG 게임의 최대 강자로 리니지2를 성공시켰으며, 2017년 출시된 모바일 버전 리니지M이 구글 플레이스토어 1위에 올라 누적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2019년 PC 온라인게임 리니지 20주년을 맞아 새로운 버전인 리니지: 리마스터와 모바일 리니지2M을 출시했다. 리니지는 엔씨소프트의 엔진이 되었다. 1998년 출시돼 2007년 단일 게임 최초로 누적 매출 1조원을 달성했고 2016년 누적 매출 3조원을 돌파했다.
2000년 출간되어 1000만권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인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오랜 시간 법적 분쟁을 겪었다. 기획과 출판을 담당한 가나출판사와 제작을 맡았던 그림작가 간의 저작권 분쟁이었다. 학습만화로 선보여 돌풍을 일으켰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TV시리즈 애니메이션 <올림포스 가디언>과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면서 만화 캐릭터 사용의 저작권 협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미 인세 지급에서부터 신뢰에 상처받은 작가와 전체 기획을 주관했던 출판사 간의 자존심 대결이 시간과 비용을 잃으며 최종심까지 진행되어 작가의 승소로 재판은 마무리되었고, 해당 책자는 출판사와 작가 따로따로 다시 출간하기 시작했다. 이후 학습만화와 애니메이션 모두 기존의 스타성을 회복하지 못했다.
월트 디즈니는 생전 자신의 회사에 몇 가지 불문율을 정했고, 그러한 원칙을 고수했다. 자신이 제작하는 모든 콘텐츠에는 흡연 및 음주, 폭행 등의 영상을 금지했고, 프로젝트 진행 중 법적 분쟁은 시작하지 않거나 초기 합의로 마무리할 것을 지시했다. 그래서 1930~1960년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는 그러한 사안이 잘 지켜졌다.
월트 디즈니 사후 어려워진 회사가 1980년대 새로운 경영진을 영입하며, 야심차게 시도한 작품들에는 흡연, 음주, 싸움 등의 장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장단과 퇴임한 임원 간의 법적 분쟁도 일어났다. 그러나 이 모든 사안들은 모두 합의와 타협으로 조기에 일단락되었다. “월트디즈니사는 우리가 만든 콘텐츠를 보는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콘텐츠의 판타지가 깨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책임 또한 있다”는 설립자 월트 디즈니의 초심이 유지되었던 것이다.
콘텐츠업계는 법률상 리스크가 발생하면 회사가치에도 즉시 영향을 받는다. 최근 YG가 가수 승리와 관련되어 주식가치가 하락한 상황도 이와 같다.
콘텐츠는 공개되는 순간부터 일종의 판타지화된 준공공재가 된다. 그렇게 추억과 환상으로 소비자에게 기억되는 콘텐츠는 제작사 및 구성원들의 경영, 계약, 일탈, 불만으로 시작된 법적 리스크에 의해 손상되고 깨지면 복구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 이전에 합의와 타협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에 대한 진정한 사과가 있어야 하고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출구전략이 합의되어야 한다. 이는 곧 콘텐츠 소비자를 위한 상생의 길이며, 사회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한창완 세종대 융합예술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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