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최고의 막장드라마는 보험사기극이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은 만약 소재난에 시달린다면 보험사기 사례를 취재하거나 연구해봄직하다.
일명 ‘낙지살인’은 뒤집고 뒤집히는 반전이 일품이다.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낙지를 먹다 질식사한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타낸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던 피고는 최근 항소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피고는 3년 전 여자친구와 함께 식당에서 산낙지를 구입해 인천시내 한 모텔에 투숙했다. 사망보험금 2억원을 노리고 여자친구를 죽인 뒤 낙지가 목에 걸린 것으로 위장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고, 낙지가 여자친구 목에 걸려 손으로 빼냈지만 결국 죽었다는 게 피고의 주장이다.
(경향DB)
지난달 발생한 ‘동백섬 추락사고’도 알고보니 보험금을 노린 치밀한 살인극이었다. 김밥집 여주인과 연하의 아르바이트생으로 만나서 결혼한 부부는 끝내 피해자와 살인범이 됐다. 남편이 지인과 짜고 아내가 탄 자동차를 후진시켜 바다에 빠트린 뒤 지인만 빠져나오는 장면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4개월간 계획하고 사고 전날 현장답사까지 했다. 경찰이 도착할 무렵에는 직접 바다로 뛰어들어 아내를 구하는 척도 했다. 보험금은 11억2000만원이었다.
보험사기의 역사는 보험의 역사만큼 오래됐다. 일제시대이던 1923년 12월14일자 동아일보에는 “11월8일 본정 대화재 범인은 보험금이 탐나 자기 집에 불을 놓은 방화범”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그 후 1960년대까지는 경제적 궁핍 때문에 보험 가입이 위축되고 보험사기 역시 관심에서 멀어졌다. 다시 보험사기 기사가 언론에 등장한 건 1970년대다. 1975년 4월12일 밤 서울 명동의 의류상가 클로버센터에서 일어난 화재는 빚에 쪼들리던 여주인의 짓이었다. 그러나 범인은 상가 관리인에게 여러 차례 “불을 질러 보험금을 타 나눠 갖자”고 제안했고, 불이 나기 전 가게 물건을 빼돌릴 만큼 어리숙했다.
우리 사회에서 보험사기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2007년 2045억원에서 2009년 3304억원, 2011년 4237억원, 2012년 4553억원으로 5년 사이에 2배 이상 증가했다. 여기에다 사기수법 역시 스릴러 소설 뺨칠 만큼 기발하고 대담해졌다. 자기 집이나 가게에 불을 놓는 건 옛날이야기가 됐다. 자해를 서슴지 않고 남편이나 아내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을 죽이는 데까지 나갔다. 만약 배우자가 보험을 들라고 권한다면 이는 한번쯤 의심해볼 만한 일이 됐다.
보험사기는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누군가 타갈 돈이라고 생각하니 뺏거나 훔친다는 죄책감이 희미해진다. 오히려 몰라서 못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분위기다. 무슨 삶의 지혜라도 되는 양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보면 집단범죄가 된다. 2011년 강원도의 한 탄광도시에서는 병원장, 사무장, 전·현직 보험설계사, 주민 등 400여명이 연루된 150억원대의 사상 최대 규모 보험사기가 적발됐다. 인구의 1%가 가담한 범죄는 탄광이 폐쇄되면서 가중되는 경제난에다 보험설계사들의 치열한 판촉 경쟁, 탄광에서 반복된 산업재해와 산재보험 처리의 학습효과가 합쳐진 것이었다.
젊은 작가 안보윤씨는 신작 장편소설 <모르는 척>에서 이 도시의 사례를 참고해 보험사기로 살아가는 세 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졸지에 소년가장이 된 장남은 넘어지고 부러뜨리고 뛰어들고 안되면 꾀병이라도 부린다. 가짜진단서와 보험금이 나왔지만 끝내 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작가는 돈 때문에 폭력에 젖어드는 이들, 이를 모르는 척하는 이들이 “슬프고 무섭다”고 했다. 극악무도한 범죄와 함께 생계형 사기도 적지는 않을 테니 갈수록 늘어나는 보험사기가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가리키는 건 아닌가 싶어서 슬프고 무섭다.
한윤정 문화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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