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 최대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 옥션 온라인 경매 서울옥션블루에 나온 가수 솔비의 작품 ‘메이즈(Maze)’가 1300만원에 낙찰됐다고 해서 화제다. 최초 시작가 600만원에서 시작된 ‘메이즈’는 무려 15번의 경합을 거쳐 최종 낙찰됐는데 이는 추정가 600만~1000만원을 뛰어넘는 금액이라고 한다. 이번에 경매에 나온 솔비의 작품은 셀프 컬래버레이션 시리즈로 솔비와 화가 권지안, 즉 한 사람 안의 두 개의 자아가 스스로 협업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개념으로 솔비가 직접 붓이 되어 안무를 통해 선과 색으로 캔버스 위에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추상 작업이라고도 전한다.
하여간 서울옥션블루 경매 본부장은 “작가 권지안의 작품은 신진 작가로 국내 경매시장에서 처음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 거울을 캔버스 삼아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보여줬다. 응찰 횟수도 15회로 비교적 높은 비딩(입찰)을 기록했으며, 낙찰 금액 또한 경매 시작가의 2배를 웃돌아 새 주인을 찾았다. 국내 경매에서 보기 드문 응찰 횟수와 가격이다. 신진 작가의 성공적 데뷔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더구나 한 미술관계자는 “솔비의 작품이 국내에서 가장 큰 경매시장에서 최초 시작가 두 배를 웃도는 금액에 낙찰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배우이자 화가인 하정우가 ‘아이옥션’에서 작품이 판매된 이후 미술시장에서 통하는 작가라는 인식이 생긴 것과 마찬가지로 화가 솔비의 작품이 가진 시장성도 명확해졌다”고 말한다.
솔비는 상처와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하며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선생의 학원에서 8년 동안 미술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근자에 부쩍 연예인 중에서 미술 활동을 하는 이들이 꽤나 많아졌다.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한 하정우도 한국의 대표적인 상업화랑의 하나인 표 갤러리에서 11번째 개인전을 열었고 키아프 전시에도 출품했다. 그만큼 높은 가격에 비교적 잘 팔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연예인의 작품 중 좋은 작품을 본 기억이 없다. 하정우의 그림은 실제로 접했고 솔비의 그림은 사진을 통해 보았다. 솔직히 말해 그것은 너무나 초보적인 수준의 작품이라 작품의 질을 논하기가 곤란하다. 솔비의 추상화로 보이는 그림이 옥션에서 600만원의 시작가로 출발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시장에서의 가격이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이루어지기에 원하는 이가 있으면 가격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솔비의 작품이 1300만원에 낙찰된 것은 그 돈을 지불한 이의 안목에 달려있고 그의 자유이고 책임이다. 예술 행위 자체는 개인의 자유이다. 그리고 그걸 소비하고 평가하는 것도 대중의 몫이다. 그래서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것이 예술품의 소비 과정이라며 창작자와 평가자 모두 개인에게 달렸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개인적이라고 하는 것이 실은 사람들에게 그 작품이 꽤나 의미 있는 것으로 인식시키며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순간 그것은 결코 개인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분명 옥션과 화랑의 책임이 거론될 수밖에 없다. 미술작품의 가격은 그 작품이 지닌 예술성, 조형성이다. 그것은 결코 속일 수 없고 가릴 수 없다. 미술은 전적으로 높은 수준의 질적 측면을 둘러싼 안목의 싸움이다. 그리고 그 안목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고 작가·작품의 수준이 결정된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작품 자체가 가진 작품성에 의해서, 그리고 그것을 알아보는 뛰어난 안목에 의해서 가격이 형성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매우 불우하다. 그런 것보다는 그저 작가의 지명도나 유명세에 의존해서 가격이 책정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운 것이다.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고 전시될 수 있다. 그러니 그 평가는 전적으로 작품 자체의 질적 측면에서 냉정하게 판가름되어야 한다. 시장에 내놓고 옥션과 아트페어에서 매매가 되고 소장가들에게 소개된다면 말이다. 그래서 화상과 옥션은 좋은 작품을 분별할 수 있다는 전문적인 안목을 내세우며 고객들에게 신뢰감을 주어야 한다. 미술계라는 것은 이처럼 고도의 안목에 의해 유지되고 전개되어야 하는 곳이고 그 안목이라는 것이 무서운 힘으로 작동되는 장소여야 하며 그 안목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다. 작품의 가격도 그로부터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안목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작품이 아니라 작품 외적인 요소가 작품의 가격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화랑이나 옥션은 오로지 팔릴 수 있는 여건을 지닌 이들을 끌어들여 물건을 판 후 책임지지 않고 내버릴 것이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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